박지성의 다이빙 헤딩슛, 리버풀 격침

By |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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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넣은 후 엔드라인을 따라 질주하며 표효하는 박지성, 사진 예술이다

같은 한 골이지만 그 가치와 무게가 다른 골이 있다. 1년간의 농사를 마무리 짓는 골, 꺼져가는 희망속에서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골, 불구대천의 원수를 나락으로 완전히 떨어뜨려 버리는 골…
어제 박지성이 플레쳐의 기가막힌 크로스를 다이빙 헤딩으로 정확하게 왼쪽으로 꽃아넣은 그 골이 그랬다.  맨유의 99년 트레블 달성당시 뮌헨전에서 기록한 솔샤르의 역전 결승골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되듯이 수년간 리버풀에 밀리다가 그들에게 복수를 함과 동시에 빅4의 절벽에서 밀어내고 맨유를 1위로 등극시킨 어제의 골도 오래동안 기억될 듯 하다.
크로스와 다이빙헤딩으로 짧게 이어졌던 그 순간 골이 터지자 일제히 일어나 미친듯이 환호성을 올리던 올드 트래포드의 미치광이 8만 관중들의 집단적인 행위는 볼때마다 가슴이 저미는 장면이다.
제라드와 토레스, 아퀼라니, 바벨, 베나윤까지 모든 공격옵션을 쏟아부었던 리버풀은 맨유의 홈에서 그렇게 2:1로 침몰했다.

어제의 박지성은 밀란전과 마찬가지로 좌우에 나니-발렌시아를 두고 중앙 미드필더로 출격했다.  그러나 상대편엔 피를로가 없었다. 루니의 뒤를 받치는 쉐도우 스트라이커 역할… 전반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그의 정체성에 의문부호를 달았던 축구팬이 몇몇 있었으리라. (나 역시..뭘하나 했었다)
확실히 어제의 박지성은 예전의 그 역할과는 달랐다. 선발멤버에 나니-발렌시아-박지성이 나란히 오르는 모습은 보기가 흔치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측면자원으로 활약할 때도 약간은 중앙지향적인 플레이를 해왔다. 이 때문에 박지성이 측면에서 수비수들을 벗겨내고 엔드라인까지 달려가 크로스를 올리는 광경이 일반적인 윙어들에 비해 적었다. 
전반전과는 달리 후반전들어 박지성은 공격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정확히 센터써클 부근을 배회하고 있었다. 볼을 받고 배급을 하러 후방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이 시점부터 리버풀은 중앙에서 짧게 좌우로 볼을 배급하거나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박지성과 약간 후방에서 캐릭에 의해 길게 앞으로 날아오는 침투패스, 그리고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플레쳐에게 서서히 말리기 시작했다.

박지성과 루니는 번갈아가면서 상대 중앙수비들을 달고 다니면서 자신이 직접, 혹은 제 3의 선수들에게 공간을 내주면서 공격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후반 15분경 오른쪽으로 이동한 플레쳐와 원래 거기에 있던 발렌시아, 때마침 오른쪽 사이드라인을 따라 뛰어들던 게리 네빌을 동시에 감당해 내지 못한채 발렌시아가 수비를 끌고 중앙으로 이동한 틈을 타 플레쳐에게 완벽한 크로스를 올릴 찬스를 선사하게 되었다.
플레처의 크로스는 중앙 수비들로서는 곤혹스러운 방향으로 정확하게 배달되었다. 수비수들이 골키퍼를 보면서 수비해야 하는 난처한 방향, 자신들의 머리 약간 뒤쪽으로 빠르고 낮게 날아왔기 때문이다. 루니는 오른쪽에서 수비를 달고 있었고 왼쪽의 글렌존슨은 위치선정에서 박지성에 한발 내주게 되면서  송곳같은 크로스는 달려드는 박지성의 머리에 정확하게 맞아 빨랫줄 같은 골이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꽃아 넣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듯.

박지성은 결정적인 가로채기, 슈팅과 같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결과 보다는 바이러스와 같이 상대편에 침투해 팀 전체를 좀 불편하게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패스가 수월하게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약간 부정확하게 나가도록 방해하는 것, 편안하게 패스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 공격의 속도를 저하시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평소의 리버풀을 고려해 볼 때 어제의 리버풀이 정확히 그러한 상황이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중앙으로 내보내면서 그를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쓰려는 심산인지, 상대방의 게임메이킹을 분쇄하는 목적인지, 박지성 스스로를 게임메이커로 만드려는 심산인지는 알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기존의 선수로 새로운 쓰임새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며 현재까지 감독의 복안대로 거의 완벽하게 난적들을 제압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밀란전과 리버풀 전에서 박지성이 골을 터뜨리지 못했고 그래도 경기에 승리했다면 그의 역할은 그리 주목을 못받았을 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년시즌 챔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샤에 패배했을 때 선발로 출장했던 박지성에 대한  비난여론이 만만찮았던 것을 기억해보면 말이다.

그건 그렇고~ 저 맨 위의 사진…정말 멋지다…클릭해서 크게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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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박지성의 다이빙 헤딩슛, 리버풀 격침

    1. demitrio

      ^^ 실로 엄청났습니다~ 다시봐도 짜릿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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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늙은여우

    아 저도 골장면,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두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슛 타이밍을 잡는 순간에도,

    유독 왼발에 강한 박지성이기에 상당한 기대를 했는데, 멀티골이 너무 아쉽기도 했구요 (헤딩슛 역시도….그래서 비슷한 장면의 토레스는 정말 매력적인 공격수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진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엠블런을 때리며 달려가는 박지성의 세레머니.

    의미있는 골이었기에 세레머니 파괴자 플래처도 그냥 둔게 아니었을까요?

    것보단 거리가 너무 멀어서 세레머니를 막을 수 없던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더 큽니다만. ㅎㅎ
    (박지성도 플래처 반대방향으로 뛴거 또한 의도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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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친구들과도 우스개 소리로 플레처 얘기를 했었습니다. 일단 박지성이 플레처가 두려워 반대방향으로 잽싸게 뛰어갔고 플레처도 자신이 직접 크로스를 날렸고 거리가 멀어서 결국 박지성을 잡는걸 포기했다고 말이죠 ^^
      말씀하신 왼발슛때도 저 역시 주먹을 불끈 쥐어봤습니다만…
      그런면에서 볼때 루니의 슛은 안좋은 자세에서도 하나같이 강력하고 날카롭더군요.
      막판 1분을 남겨놓고 제라드의 크로스를 토레스가 무인지경에서 잡아서 슛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토레스도 그걸 다 놓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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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늙은여우

    저도 그 토레스의 슛에 놀랐습니다. 반면 아쉽기도 했구요.

    개인적으로 토레스를 좋아해서,,,ㅎㅎ

    GF1은 아직 안사고 참고 계신가요?

    파나소닉에 아시는 분이 계셔서 (4월에 대표가 되시네요) 후속모델이 5월에 나온다는걸 일찍 알아서 참았는데,

    언론에 공개된 후에는 그 열기가 식을 줄 알았는데,

    파나소닉 프라자(압구정 위치)의 오프라인 매장에까지 예약이 줄을 설 정도로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그 인기가 여전하다고 하네요.

    저도 그 후속을 살까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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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저도 그말씀을 듣고 계속 기다리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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