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의 함정

By | 2010-02-16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래 나열된 다섯개의 문장을 보라. 사실은 저보다 두배는 더 많은 문장들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보고서나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저 많은 문장들을 한두문장 또는 단어 몇개로 요약할 필요성이 생기는 것은 기획자에게 흔한 일이다. 보고서를 쓰는 사람들이 가장 고민하는 일 중 하나가 ‘좋은문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나 역시 머리속이 실타래 같이 얽혀있을 때 지나가는 동료를 붙잡고 ‘뭐 좋은 말 좀 없겠냐’고 쓰다만 보고서를 보여주며 사정을 하곤 한다.

  • 일마감시간을 현재 오후10시에서 2시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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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모든 내용을 아우르기에 좋은 단어는 무엇일까. 언뜻 생각나는 그럴듯한 단어로는 ‘업무 생산성 증대’, ‘비용절감’이 있겠다. 아마 수년전의 나였으면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저 두개의 단어로 모든 문장을 대신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런 상황에서 ‘업무 효율성’, ‘생산성’, ‘비용효과’, ‘운영효율’, ‘고객만족 증대’와 같은 단어로 아무렇지도 않게 요약하곤 했다.

그 결과는 대체적으로 참담했다. 보고서를 읽는 상사들은 하나같이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고 나를 나무랐고 나는 변명의 기회도 변변히 가질 수 없었다. 혹시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는가 ?
그때의 내 생각으로는 저 다섯개의 문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생산성’과 ‘비용절감’같은 단어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단어야 말로 지금까지 수많은 자료를 읽고 현상과 문제점, 해결방안과 기대효과를 하나하나 추출해냈던 나의 노력을 일거에 뭉게버리는 단어였다.  그런 단어들은 긍정적인 뜻을 담고 있지만 구체성은 전혀없어서 슬라이드내에 테두리를 둘러서 덩그러니 내버려두면 가장 먼저 공격을 받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더 다섯문장은 도대체 뜬구름 잡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요약할 수 있단 말인가 ?

간단하다. 저 다섯가지중 가장 임팩트가 있는 한두개 문장만 골라서 모든걸 대표하게 하라. 만약 회사가 일마감 시간 단축을 가장 심각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것을 요약본의 대표값으로 사용하라. 그리고 문장의 끝에 ‘…외 4건’ 등으로 다른 개선효과도 숨어있음을 알려라. 누군가 그것을 질문한다면 그것은 발표하는 사람에게는 내용을 좀 더 심층적으로 말할 수 있는 찬스가 된다.
숨겨져있는 4개의 문장이 사장되는것을 아까워하지 말아라. 그렇다고 저 모두를 보고서에 싣는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오늘 예제에서야 다섯문장이었지만 실전에서는 열개 스무개도 넘을지 모른다.
–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를 보고있어도 그 역시 같은 방법을 애용한다. 수백가지가 넘는 기능을 가진 기기에서 그는 단 몇개의 포인트만 집어내어 보여준다.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소위 ‘뜬구름잡는 단어’는 보고서에서 추방되어야 하는가 ? 아니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뜬구름 단어’는 혼자 놔둬서는 안된다. 꼭 구체적인 사실들이 따라붙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자 그럼 저 다섯개의 문장을 두개로 압축해보자

  • 생산성 측면 : 일마감 2시간 단축(외 2개 이슈)
  • 비용절감 측면 : 초기교육 시간 하루, 1/3로 단축 (외 1개 이슈)

이제 남은 일은 내가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법들이 과연 뭉게구름과 같은 것인가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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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thoughts on “요약의 함정

    1. demitrio

      요약도 요약이지만 뭉뚱한 단어 사용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요약 역시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죠. 답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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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늙은여우

    정말 PT를 하다보면 허전하고, 두리뭉실했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던 경우가 참 많았던거 같습니다.

    정말 어휘 선택과 더불어 이런 요약의 기술, 전 아직도 멀었다고 느껴지네요.

    5개의 문장…. 고민해보겠지만 어떻게 압축하게 될지 매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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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아마 자신이 속한 산업이나 환경에 따라 자주 사용하는 두리뭉실한 용어들도 다를겁니다. 작업을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단어를 생각해내는 일인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것 같은 이 일로 시간을 엄청나게 허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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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재능세공사

    예전에 나도 참 많이하던 고민이었고 그 모든게 아까워서 낑낑 대다가 너한테 글자수가 너무 많다고 쿠사리 먹곤 했지..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가 필요한 단어나 아이디어는 인문 및 사회과학의 컨텐츠 속에 있더라구.. 그래서 아주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는 영역에서도 점점 인문 및 사회과학 컨텐츠의 잠재가치를 활용하는 케이스가 많아지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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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백종현

    오랜만에 댓글 다는군요.

    요약, 정말 어려웠죠. 요즘은 대놓고 그림만 뿌리고, 설명한 다음 프리젠테이션 끝나고 유인물을 배포하니 해결되더군요.

    파워포인트블루스와 프리젠테이션젠에서 보고 무식하게 시도했봤던 초기에는 각자의 자리에 유인물을 미리 안깔아두니, PT준비도 안됐다는 듯이 말하더군요.

    하지만, 몇번 하다보면 오히려 효과는 더 좋았습니다.

    대신, 유인물에서는 너무 길어지고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보기좋게 도서, 잡지, 신문 등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읽기 편한 유인물을 만드는 스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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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아~ 사후에 설명 유인물을 배포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제 생각엔 뭐 그에 대한 고정화된 원칙은 없을것 같습니다. 효과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게 맞는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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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drama

    요약하는게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상상을 뛰어넘게 잘하시네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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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제가 이 글을 포스팅했지만 요약을 잘하는 것과 뜬구름잡는 단어를 되도록 자제하는 것은언제나 어렵더군요. 저도 계속 지적당하는 부분중 하나랍니다. ^^ 답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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