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만들기의 키워드

지난 연재까지 설명한 ‘판단력’은 ‘이야기 만들기’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수학문제를 예로 들자면 ‘1+1의 해답은 무엇인가 ?’에 대한 결론으로 내가 자신있게 ‘2’를 들고 나오는 것만으로는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이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획자의 보고서는 ‘2’라는 해답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1+1=2임을 증명하는 수학문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2’라는 해답이 판단력에 대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증명’과정은 ‘이야기 만들기’이다. 이 두가지는 그렇게 성격이 다른것이다.
이런 성향때문에 옳은 결론을 말하고 있는 보고서가 가끔씩 경영진을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원작을 가지고 다른 감독, 다른 시나리오, 다른 시대에 다르게 제작된 영화를 떠올려보자. 같은 원작을 가진 영화라 하더라도 관객이 느끼는 재미는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다.

현실의 예를 들어보자. 애플은 수년전 Apple Remote라는 제품을 출시하였는데 이는 컴퓨터의 동영상, 음악 등을 리모트 컨트롤로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애플이 내린 결론은 작고, 간단한 리모트 컨트롤러 였고 그 결과는 아래 그림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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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Remote : 결론 - 작고 간단한 리모트 컨트롤러

위의 그림은 결론만 있을 뿐 아무런 이야기도 담기지 않은 것이다. 융통성없는 기획자라면 자신의 결론만 믿고 경영자와 고객에게 저 그림을 그대로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은 너무 밋밋해 거절당할 수도 있다. 거절당한 기획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경영자와 고객이 알아보지 못한다고 원망할수도 있겠지만 그 책임은 제대로 설득해내지 못한 기획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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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 약간의 이야기가 있다. 손안에 숨길 수 있을만큼 작은 리모트.

그림1은 약간 진보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손이라는 조연을 출연시켜 작다는 점을 인식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임팩트를 주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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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 경쟁사의 크고 복잡한 리모콘과 비교하여 작고 간단하다는 이야기를 완벽 만들었다.

그림 2는 진일보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경쟁사의 리모트 컨트롤러와 비교함으로써 작고 간단하다는 이야기를 제대로 만들어 낸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에서 발표된 아래의 슬라이드에는 위와 같은 스토리보드를 훌륭하게 각색한 훌륭한 결과물이 나와있다. 위의 숫자들은 각 리모트의 버튼의 갯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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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의 키노트에는 훌륭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맥북 에어를 설명하는 아래의 슬라이드 역시 감탄할만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얇고 가볍다는 것을 이토록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어디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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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봉투에 들어갈 수 있는 노트북은 도대체 얼마나 얇고 가벼울 것인가 ?

아래 슬라이드는 맥북에어의 메인보드를 연필과 비교해 놓은 슬라이드인데 여기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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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작아 연필보다 조금 큰 정도인 맥북에어의 메인보드.

지금까지 간단하게나마 예를 들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였다. 또한 최적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판단력과 다시 그것을 설명해야 하는 이야기 만들기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사실 현실은 스티브 잡스의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저렇게 한두장의 슬라이드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 연재에서 ‘판단력’을 위한 키워드로 편집증, 상상력, 적극성, 오픈마인드, 스피드를 제시하였는데 ‘이야기 만들기’에서는 상상력이란 키워드를 제외하고는 이야기 만들기와 직접적으로 크게 영향을 주는 키워드는 없는것 같다.
그러나 상상력이란 단어 하나만큼은 새로운 이야기를 설계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다. 길을 걷다가, 혹은 전혀 다른 일을 하다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야 말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결정적인 단초이니 말이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다양한 활동과 경험, 넓게 읽고 보고, 느끼고 즐기는 행위들이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직장 후배나 팀원들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할 때 마다 나가서 마음이 불안해질 때까지 놀다 오거나 전혀 다른곳으로 눈을 돌려보라고 권한다.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말이다.

세가지 스킬과 트레이닝

읽기와 쓰기, 스토리텔링, 논리적인 사고는 이야기 만들기의 세가지 스킬들이다.  첫번째 스킬인 읽기와 쓰기는 방금까지 말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위한 것이다. 읽기는 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는 것도 포함된다. 예를들어 난 청중들이 스포츠에 문외한이 아니라면 야구와 축구에 메시지를 얹어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야구선수의 타율, 타점 등을 관리하는 것 처럼 각각의 고객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를 만들어서 야구선수 처럼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처럼 말이다. 자신이 본것과 느낀 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해 보는 연습을 늘 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첫번째 스킬인 읽기와 쓰기는 다양한 것을 더 많이 체험하는 쪽이 승리한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라. 스포츠, 영화, 공연, 여행, 음악, 문학 등의 주제가 바로 그런것 들이다.

첫번째 스킬인 읽기와 쓰기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단서와 대략적인 구조물만 제공할 뿐이다. 나의 경우에서 처럼 ‘그래, 이건 야구 이야기로 풀어가면 되겠네’라는 생각이 떠올랐으면 그것으로 첫번째 스킬의 임무는 끝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어느 시점에서 등장 시키고 어떻게 결말을 맺을 것인지에 대한 것은 두번째 스킬인 스토리텔링의 몫이다. 이것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입장과 똑같은 것이며 실제 프레젠테이션의 진행과정도 그와 비슷하다.  스토리텔링은 최근 기업 마케팅과 맞물려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로 많은 서적들이 물밀듯이 출간되고 있는 분야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아직 기획자에게 적합한 스토리텔링 서적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마케팅분야에 치중한 약간 어설픈 스토리텔링 책을 읽기 보다는 차라리 영화와 관련된 스토리텔링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약간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영화편집’에 대한 책도 도움이 된다. (영화제에서 편집상을 수상한 영화들은 봐도 후회할 일이 적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편집상이라는 것이 결국 영화의 짜임새에 대해 주는 상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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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스토리텔링은 다분히 감성적인 측면이 있지만 세번째 스킬인 논리적인 사고는 이들과는 또 다른 냉정함을 지니고 있다. 스토리텔링이 영화만들기에 가깝다면 논리적인 사고는 배심원을 설득해야하는 변호사나 검사의 입장이니까 말이다. 영화는 뚜렷한 결론을 내지 않은채 청중의 상상에 맡기는 것을 허용하지만 ‘논리’란 단어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행히 논리를 시각화하거나 글로 펼쳐내는 것에 대한 유용한 참고서들이 몇가지가 있다.

로지컬 라이팅과 논리적 글쓰기는 지난 연재에서 추천한 로지컬 씽킹과 논리의 기술에 대한 연장선상에 있는 책들이며 이미 지난 연재에서 설명한바 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두 책 모두 약간은 지루하고 딱딱하다라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결국 이 책들이 강조하는 기본기들이 모두 옳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One Page Proposal 역시 지난 연재들을 통해 등장했던 책이다. 이 책에서는 함축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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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로암, 21세기북스, 2009.3

‘생각을 Show하라’는 아이디어를 시각화 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매우 드문 책이다. 실제 업무에서도 가장 골치아픈 부분이 글이 아니라 도형이나 그림으로 문제를 추상화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시각화에 대한 모든 영역을 커버해 주지는 않지만 저자가 고민했던 부분과 노우하우를 보여줌으로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우리의 영감을 자극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부분전술과 아이디어가 있는 좋은 참고서이다.
시각화, 추상화란 측면에서는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는 첫번째 스킬, 읽기와 쓰기와도 관련이 있으며 세번째 스킬인 논리적 사고를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Skill Level

이야기의 구성 스킬셋에 대한 발전레벨에 대해 얘기해보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보고서나 프레젠테이션에 그나마 이야기가 없다면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친듯이 졸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없는 보고서는 얘기하고 싶은 사실들을 순서와 상관없이 늘어놓을 수 밖에 없는데 이래서는 전체 문서의 구조가 머리속에 들어오지도 않을뿐 더러 빨리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기만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초반이 지나가면 이미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애초에 이야기의 소재가 없는 탓으로 여기에 스토리를 입히는 스토리텔링은 의미가 없어진다. 100% 맞는 결론이라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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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레벨은 스토리는 있으되 재미가 없거나 관객들과 핀트가 어긋난 경우이다. 이는 재미없는 영화를 한편 본것과 같은 기분이다. 끈질긴 관객이라면 스토리는 모두 제쳐두고 자기가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겠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내 포기하고 말것이다.
관객들이 잘 모르는 비유의 소재를 택했거나 대중적인 소재이지만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노력한 경우에 그런일이 발생할 수 있다. 어차피 잘 모르는 소재라면 스토리가 좋아도 결국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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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예로든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 소재를 보면 참으로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 연필이나, 서류봉투 같은 소재들을 생전 처음본다고 말할 관객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 흔하고 단순한 재료에서 놀라운 반응을 끌어내고 있으니 이런 경우 스티브 잡스를 마법사라 부를만 하다.  잡스는 친절하게도 관객들이 자신이 소개하는 제품을 살만한 명분(논리)까지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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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야기의 구성 스킬이 Wizard 단계에 항상 머물러있는 기획자나 프리젠터는 세상에서 몇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면 레벨 1의 수준은 간신히 벗어났지만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어쩌다 한번씩 대박을 터뜨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1차적인 목표는 적어도 수면제는 되지 않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언제나 이야기의 소재를 고민하고 있어라. 우연한 기회에 대박을 터뜨릴 기회가 찾아오면 ‘이야기의 구성’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감이 올 것이다.

다음 시간엔 다음 스킬셋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야기의 구성에 대한 이해를 증폭시키기 위해 예제 슬라이드를 가지고  ‘이야기의 구성 워크샵’ 시간을 가지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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