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가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

By | 2009-12-29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은영전 극장판 3부, 동맹군의 양웬리(가운데)

20여년전 누군가 ‘은하영웅전설'(이하 은영전)이라는 책을 추천하기에 그 제목 자체도 촌스럽고 허무맹랑한 내용이겠거니 해서 한동안 빌려준 책을 한켠에 쌓아놓기만 하고 읽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말 할일이 없어 읽기 시작하였는데 밥도 거른채 일사천리로 외전까지 집어 삼켜버렸다.  그 책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고 양 웬리라는 극중인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생겨 무의식중에 그가 나의 롤모델로 자리잡았던 듯 하다. 그 후 지금까지 그 책을 다시 읽을 일이 없었는데 최근에 또 누군가가 은영전을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보았더니 정말 감동적이더라는 얘기를 듣고나서 20여년전의 그 감흥이 되살아나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게 되었다.
장장 150여편에 이르는 대 장정이었는데 한번 시작하니 놓을수가 없어 결국 12월이 모두 가기전에 다 보고말았다.  한달 내내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보니 모든 사고가 양 웬리와 라인하르트로 흐르고 있는 중이다. 마침 불어닥치고 있는 아이폰 열풍과 언론의 태도 등을 보니 딱 은영전의 한대목이 생각이 나 글의 시작을 은영전 이야기로 하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애플에서 아이팟을 내놓은지 벌써 10여년가까이가 흐르고 있다. 아이폰은 2007년에 등장했으니 올해로 3년이 되었다.  2001년 아이팟 쇼크이후 2007년 다시금 애플이 아이폰으로 쇼크를 일으키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언론들이 아이폰이나 아이팟을 기사거리에 올려두고 꺼내는 신물나도록 지겨운 단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바로 아이폰(혹은 아이팟) 대항마, 킬러라는 단어들이다. 물론 그 어마어마한 수의 대항마와 킬러들은 지금까지 깨끗하게 전멸하거나 몰락하는 중이다.  닌자 어새신에서 주인공 ‘비’를 없애러 간 닌자 집단이 죽어나가듯이 몇 년간 그렇게 괴멸되어 버린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국군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오른쪽)

한달전 드디어 국내에 아이폰이 런칭되려하려는 찰나에도 그 대항마들과 언론들은 자신감에 넘쳐 애써 상대방을 폄하하거나 말도되지 않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나자 소위 애플빠들이 예상했던 것 보다도 더 그 대항마란 것들이 역부족인것이 드러나고있다. 대항마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싸게파는 것 밖에는 없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정상적인 대결구도가 아닌 일방적인 학살 수준이다.  이 형국은 은영전 초반의 아스타테 성역회전을 생각나게 한다.  동맹군은 2배에 달하는 병력으로 자신감에 찬 나머지  3개 함대를 분산하여  라인하르트가 이끄는 제국군을 포위 섬멸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전술은 라인하르트에게 역이용 당하여 3개 함대가 각개격파되며 전멸의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양 웬리의 절묘한 용병술로 가까스로 전멸을 면하게 된다.
이 전투에서 동맹군 제독들은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라인하르트에게 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물론 이 아스타테 성역의 대패 이후에도 동맹군 지도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애플,KT가 삼성/SKT와 벌이는 전투는 은영전 초반부와 비슷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이렇게되면 스티브 잡스가 라인하르트이고 제국군이 되는 것인가? ㅎㅎ)

그런데 이 아이폰 대항마 진영의 친구들은 이렇게 초반에 얻어맞고 있는 와중에서도 근거없는 와신상담을 벼르고 있다.  그것도 자신들의 능력으로 복수전을 펼치겠다기 보다는 용병을 들여와서 대리전을 펼쳐보겠다는 것이다. 그 용병은 구글의 안드로이드이다. 안드로이드는 동맹군의 양웬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안드로이드 자체는 매우 빼어난 제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전혀 없으나 이를 아이폰 대항마로 삼아 아이폰을 꺾겠다는 것은 억지스러운 발상이라 여겨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드로이드, 대항군이 생각하는 구세주일까 ?

이들이 안드로이드를 아이폰의 대항마로 삼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윈도우모바일로는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다. MS는 스마트폰 OS분야에서 독자적인 아성을 구축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날려버린채 오히려 후발주자인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 눌려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MS는 언제나 저력을 발휘해 왔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개방적인 플랫폼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이건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통신사(또는 제조사) 마음대로 OS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을 거라는 이유때문인데 이를 통해 사용자들을 끈으로 묶어두고 자신들의 서비스를 어느정도 강요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이폰은 통신사의 취향에 맞을 수가 없는 OS다.
세번째 이유는 구글이기 때문이다. 심비안이나 바다와 같은 플랫폼이 더 있기는 하나 경쟁력 측면에서는 역시 구글의 브랜드를 내세우는 것이 좀 더 마음이 편해 보인다. 웬지 손안대고 코를 풀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

통신사나 제조사가 꼽을 수 있는 위의 세가지 조건은 타당하고 완벽한 대항마의 조건을 갖춘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모든게 공짜라니 말이다~ !!
그럼 구글은 어째서 수많은 핸드폰 제조사, 통신사를 구원하는 자선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아이폰 대항마라는 고난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고 하는걸까. 
그건…. 구글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를 채용하는 모든 제조사와 통신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댓가를 지불해야 하며 그건 결코 적은것이 아니다 !!

구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거대한 클라우드 서비스내로 모든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고 광고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다. 구글은 자신들의 전략을 2개방면으로 전개시켰는데 하나는 데스크탑-랩탑 방면이고 또하나는 모바일 방면이다. 각각의 방면을 책임지게될 핵심적인 플랫폼은 크롬OS와 안드로이드이다.
안드로이드 사용을 위해 제조사, 통신사가 지불해야 할 댓가는 구글의 서비스를 기본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구글은 자사의 서비스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앱이나 통신사 고유의 서비스는 허용할테지만 안드로이드에 기본적으로 심어놓은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제거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내가 구글의 임원이라면 아이폰은 경쟁자가 아니라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아이폰의 존재로 인해 안드로이드가 각광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폰만 아니었다면 윈도우모바일이나 여타 다른 플랫폼과의 힘겨운 경쟁을 벌일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지금은 성문을 활짝 열어놓은채 꽃잎까지 뿌려놓은 제조사들의 대대적인 환영의 길로 당당하게 걸어들어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드로이드는 대항마보다는 트로이의 목마에 더 가깝지 않을까 ?

삼성과 같은 대형 제조사와 통신사들이 안드로이드를 도입해 준다면 구글로서는 그걸로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안드로이드를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윈도모바일에서는 ActiveSync가 있었고 애플에는 iTunes가 존재한다. 그런데 안드로이드는 ? … 인터페이스만 있을 뿐 나머지는 제조사와 통신사 몫이다. 얼마전 출시된 모토롤라의 드로이드만 하더라도 모토롤라의 표준 싱크 프로그램이나 화일을 부어 넣는 방식으로 드로이드와 싱크하도록 되어있다.

처음부터 구글은 싱크 분야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PC에 데이타를 부어내리고 올리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이 바라는 방식은 클라우드와 싱크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정이든 연락처든, 메시지나 일반 화일이 되었든 간에 모든것을 클라우드로 빨아들이길 원할 것이다. 심지어는 사진이나 음악(굳이 화일이 아니라 스트리밍형태의 서비스)도 그렇게 되길 원하는 것 같다. 제조사가 싱크 문제를 방관한다면 사용자들은 구글의 서비스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iTunes만큼 음악과 영상, 연락처, 사진, 일정 등을 통합적으로 싱크하는 앱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건 제조사에 있어 부담이다. 내년부터 안드로이드를 본격적으로 국내에 끌어들인다면 그건 아이폰의 대항마로 작용하기 보다는 닫혀져 있는 국내 IT환경을 바꾸게 될 트로이 목마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제조사가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지 않고 방치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개방된 인터페이스로 인해 여러 개발자들이 다양한 싱크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밥그릇을 의식한  통신사가 어떻게든 사용자들을 어떤 틀안에 가두길 바랄것이다.  벨소리, 음악, 앱스토어에 대한 접근 등등을 모두 통신사의 서비스를 바라보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구글의 서비스는 남아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사용자는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의미를 잃게될 것이고 이건 윈도우모바일에서의 경험과 별로 다르지 않을이라 생각한다.
통신사, 제조사가 애플에 느꼈던 불만이 이런 부분이었고 반대로 안드로이드에 느끼는 매력도 이 부분이었으므로 국내에 출시되는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봐야 판단할 수 있을것 같다.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건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  이에 대한 가능성이 낮지 않기 때문에 안드로이드가 대항마와 구세주로서 부족하다는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스마트폰은 초보자에겐 무조건 어렵다.(적어도 처음엔 말이다) PC와 연결하여 음악과 동영상, 사진, 연락처, 일정, 메일 등등을 동기화해야 하는데 이건 보통작업이 아니다.
가장 사용하기 쉽고 편리하다는 아이폰 조차 스마트폰에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고 그건  며칠전 포스팅된 전설의 에로팬더님의 글에 잘 나와있다.

애플은 처음부터 iTunes를 아이폰과 함께 들고나왔다. 그나마 국내 사용자들은 아이팟, 아이팟터치를 통해 iTunes에 대한 경험이 어느정도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안드로이드보다  일반유저들에게 어필하기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파워유저들이라면 안드로이드를 정밀하게 핸들링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겠지만 초보자들에겐 아이폰 보다 더욱 고역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기존의 스마트폰 시장이 그러했듯이 파워유저들에게 한정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적어도 우리시장에서는 말이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다.

자 그럼 종합해보자. 난 안드로이드의 상륙을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갈라파고스와 같은 우리 생태계에 있어 아이폰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길 기대한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발매되는 기기의 스펙다운, 통신사에 맞춘 서비스체계 등등 지금까지 해왔던 제조사와 통신사의  경험으로 미루어볼때 안드로이드를 안드로이드 답게 출시 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게다가 사용자들을 더욱 편하게 해줄 각종 편의/보완장치(주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줄지도 의문이다. 만약에 이렇게 된다면 안드로이드는 통신사에 있어서는 구세주 같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또하나의 악몽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상업적인 성공 역시 기대하기 힘들것이다.
이건 처음에 예를 들었던 은영전의 무능한 동맹군 지도자들이 보이던 작태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욥 트류니히트 (은영전에서 동맹군 국방위원장을 역임 : 필자주) 정도가 되지 않을까 ?

아마도 머지 않아서 안드로이드의 도입은 결국 동맹에 있어 도움이 되기 보다는 안드로이드와 구글 자체를 도와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통신사도 인정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에 대한 불만도 쌓여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안드로이드와 구글은 양웬리가 아니라 페잔(은영전에서 동맹과 제국사이에서 경제적인 이득을 쌓아가는 중립적인 집단 : 필자주)에 가깝다고 할수 있겠다.  제조사나 통신사가 생각하는 대항마로서의 용도가 아닌 구글의 한국내 교두보 확보를 도와주는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트로이 목마로 표현했다)

아직도 단순하게 안드로이드를 애플의 대항마로 굳게 믿고 욥 트류니히트와 같은 언론과 제조, 통신사에 선동되어 무리한 승부를 걸고 있는 이 현실이 씁쓸하다.

Facebook Comments

10 thoughts on “안드로이드가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

  1. 인라이너

    이런 명쾌한 안목이라니…역시 대단하시네요…^^
    그 분석력은 전방위적인 효과를 보내요…트로이 목마에 한표! ^^

    Reply
    1. demitrio

      ^^ 할말은 엄청 많았는데 그냥 무턱대고 쓰다보니 내용이 조금 얽혀있는 감이 있네요 ~ 어쨋든 키워드는 트로이 목마라는 것과 괜히 남좋은일 시켜주고 말거 같다는 거였습니다 ㅎㅎ

      Reply
  2. clotho

    제가 국내 생산 폰이 아닌 HTC를 기다리는 것과도 같은 맥락 같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eply
    1. demitrio

      HTC 기기들도 참 매력적인것 같습니다. 나오는 기종마다 지름신을 울컥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할까요~ 그런면에서는 삼성보다 나은듯 싶네요

      Reply
  3. 재능세공사

    잘 읽었다.. 생각해 보니 은하영웅전설로 논하지 못할 이슈가 거의 없다는 사실.. 나도 현재의 정치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논하는데 은영을 활용해 보고자 한다.. 기대하시라..^^

    Reply
    1. demitrio

      ㅎㅎ 무능한 인간들을 비유하는데는 은영전 만한것이 없지…무능한 사파 역시 마찬가지지만 말이유

      Reply
  4. 순모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은영전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Reply
    1. demitrio

      안드로이드 얘기에 은영전이라니 지나고 나서 보니 좀 생뚱맞기도 하더군요 ㅎㅎ

      Reply

demitrio 에 응답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