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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전 직후. 궤도를 찾은 인공위성 같았다 이제 우리선수들의 하드웨어도 어느팀에 뒤지지 않는다. (사진출처: 대한축구협회)


지난 카메룬전을 보고 키보드를 잡았다가 예선 3경기를 모두 보고나서 얘기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대표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고 박주영-신영록으로 이어지는 전 대회의 황금세대보다 돋 보이는 인물이 없었던 만큼 한경기로 모든을 판단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회 직전 홍명보 감독의 출사표를 듣고 이번엔 뭔가 또 일을 낼 준비가 되었구나 하는 감이 왔었다. 스타 플레이어가 딱히 없고 각종 대회에서 언론의 주목을 극성스럽게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내 생각엔 홍명보 감독에겐 착실하게 자신만의 팀을 준비시킬 수 있는 여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동안 세계대회에 출전하기 전에는 언론과 나와 같은 축구팬의 입방아가 극에 달해 코칭 스탭과 선수들이 느끼는 중압감도 컸을 텐데 이번엔 다행히도 예전에 비해 매우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의 16강 진출은 전적으로 시스템의 승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어느 대회때보다 어린 선수들의 하드웨어가 메이저급에 근접했음을 느낀다. 지난 20여년간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체력과 신장의 열세’란 수식어가 이번 대회 중계진의 입에서는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업그레이드 된 하드웨어

먼저 21명의 대표팀의 면면을 살펴보자. 21명의 선수들 중 180cm이상의 선수가 14명, 평균신장이 183.3cm이다. 독일과 미국전 스타팅멤버들의 평균신장이 181.9cm였다.  중앙수비수인 김영권과 홍정호는 EPL 급의 높이를 가졌으며 타겟맨인 박희성과 김동섭은 190에 육박한다.

위치 번호 이름 생년월일 체격(cm/kg) 소속
GK 12 김승규 1990.09.30 191 /81 울산 현대
GK 21 김다솔 1989.01.04 187 /78 연세대
GK 1 이범영 1989.04.02 199 /94 부산 아이파크
DF 17 윤석영 1990.02.13 183 /76 전남 드래곤즈
DF 5 김영권 1990.02.27 187 /74 전주대
DF 6 홍정호 1989.08.12 188 /77 조선대
DF 2 오재석 1990.01.04 178 /73 경희대
DF 4 임종은 1990.06.18 194 /83 울산 현대
DF 16 장석원 1989.08.11 186 /78 단국대
DF 13 정동호 1990.03.07 175 /68 요코하마 마리노스
MF 11 서정진 1989.09.06 175 /65 전북 현대
MF 15 최성근 1991.07.28 181 /61 언남고
MF 19 김보경 1989.10.06 178 /73 홍익대
MF 7 구자철 1989.02.27 184 /72 제주 유나이티드
MF 14 문기한 1989.03.17 176 /71 FC서울
MF 8 서용덕 1989.09.10 176 /68 오미야 아르디쟈
MF 3 김민우 1990.02.25 172 /69 연세대
FW 20 박희성 1990.04.07 188 /79 고려대
FW 18 이승렬 1989.03.06 183 /73 FC서울
FW 9 김동섭 1989.03.29 189 /79 도쿠시마 보르티스
FW 10 조영철 1989.05.31 180 /74 알비렉스 니가타

(출처: 대한축구협회)


예선 세경기를 보면 수비에서나 공격에서 제공권 경쟁에서 상대방에 결코 우위를 내주지 않았었다. 오히려 코너킥이나 세트피스시 185cm전후의 선수들이 5명정도 경합할 수 있는 상황이라 상대방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었다.  우리가 만들어 낸 골이나 많은 찬스들이 코너킥이나 세트피스에서 비롯된 것도 이때문이었고 홍명보 감독이 이를 십분 활용하여 여러가지 부분전술을 가지고 대회에 나온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하드웨어는 더이상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뒤바뀌게 된 것이었다. 스피드와 지구력 등도 문제없어 보였다.


간격유지가 관건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홍명보 감독이 기본적으로 들고나온 전형은 4-3-3을 기반으로 상대에 따라 미드필더진을 정삼각, 역삼각으로 변화시키고 최전방의 장신 스트라이커를 겨냥한 좌우 날개와 윙백들을 이용한 측면돌파가 일단 기본메뉴였다.

첫경기인 카메룬전을 보면서 적잖게 당황했던 것은 잔디의 상태가 TV를 보고 있는 내 눈에도 양탄자 같이 푹신해서 공의 속도를 대폭 줄여버리는 특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측면공격을 일삼는 빠른 팀들에게는 독약과도 같은 상태여서 고전하겠구나 싶었다. 큰 경기의 첫게임에서 느끼는 중압감과 부담을 감안해보면 선수들의 패스는 어쩔 수 없이 평소보다 느리고 약하기 마련이어서 패싱게임중에 인터셉트를 당하기라도 하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나올만한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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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전의 패배는 수십년간 되풀이되어온 국제대회 첫경기에서 발이 얼어붙는 징크스와 패배의 기억으로 더욱 짜증나는 일전이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문제였던 것은  공수간의 간격이 계속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선수들과 홍명보 감독이 간격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강하게 압박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긴장한 선수들은 그것을 신경쓰다가 후방에서 침투하는 상대방 공격수에 오프사이드 트랩이 무너지며 골키퍼와 1:1상황을 몇번이나 내주었고 골키퍼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고 난 후에는 그러한 공황이 더욱 가중되면서 간격유지와 압박이 모두 실패하여 상대방에 공간을 내주면서 추가골을 먹고 말았다.

좀 더 공격적인 역삼각형 형태의 미드필드 진형이었음에도 볼점유율은 카메룬에 밀렸고 패스는 도중차단 당하고 있었다. 확실히 긴장감때문에 발이 얼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독일전에서 극복할 수 있을까 ?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분위기가 한번 죽으면 살아나기 힘든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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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은 첫 번째 시험무대는 무난히 통과한 셈이다 (사진출처:아시아투데이)


홍명보 감독의 처방은 정삼각형 형태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명 세우면서 5명의 스타팅멤버를 바꾼 것이었다. 이 포메인션과 멤버변동때문에 좋은 경기를 했다기 보다는 선수들의 긴장감이 조금 완화되면서 공수간의 간격유지가 전후반내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좁은 간격은 공격이 차단되었을 때에도 세컨볼을 따낼 여지가 많고 압박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며 공수내내 숫자적인 우위를 항상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 베켄바우어가 이태리 웝드컵에서 본격적으로 들고나온 이 압박축구가 공교롭게도 독일전에서 제대로 펼쳐지기 시작했고 한국팀은 이전과 완전히 딴팀이 되어 있었다.
우승후보라는 독일이 카메룬에게 완패한 한국에게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하자 독일 감독도 성질이 났을만 하다.  독일감독에게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게 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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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전 동점골의 주인공 김민우, 그의 멀티 능력때문에 팀전체가 편해졌다.


독일전에서의 압박은 미국전에서도 그대로 펼쳐졌는데 미국은 초반부터 압박을 전혀 견디지 못했다. 미국의 수비라인은 공격의 시발점으로서의 패스보다는 사이드라인으로 걷어내기에 바빴고 좁아진 간격으로 인해 공격진에서 흘러나온 볼은 거의 한국팀이 잡아냈다.
만약 카메룬대신 미국을 1차전에서 만났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은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특유의 공격본능을 버리고 수비와 미들진을 약간 후퇴시킨채 경기를 시작했는데 이 점이 미국 최대의 실수였던 것 같다. 독일전을 봤었더라면 더더욱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만약 2002 월드컵에서 미국팀을 맡았던 브루스 아레나 감독 같은 사람이었다면 공격적인 사이드라인 돌파로 한국팀을 엄청 괴롭혔을 텐데 말이다. 미국팀의 측면 스피드와 쇄도하는 공격수의 파괴력은 미국축구를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어쨋든 미국은 카운터 어택을 전혀 염두해 두지 않았음에 분명했다. 발이 느리고 키가 큰 타겟맨에게 최전방 공격을 일임하다 시피 했기 때문이다.

미국팀의 또 하나의 단점은 중앙수비와 골키퍼에게 있었다. 전통적으로 골키퍼가 강한 팀이었는데 이번대회에서 만큼은 전반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을 정도로 순발력, 골캐칭능력, 판단력 등이 모두 떨어졌다.  두명의 중앙수비수도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국팀이 기록한 세골 모두 특급 중앙수비수 였더라면 막아냈을 법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첫골은 흘러나온 것을 오른발로 트래핑하고 왼발로 감아찰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줬고 두번째 골은 자신의 키를 넘기는 크로스에 대한 판단력이 없었으며 세번째 페널티는 구자철을 계속 사이드로 몰아냈어야 했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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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전 첫골을 넣고 한가위 큰절을 하다. 이번 대표팀은 세트피스에서 위력을 발휘하고있다.


미국팀에게는 당황스럽게도 한국팀은 특정 몇몇 선수로 공격을 진행하는 팀이 아니었던게 문제였다. 전체적으로 압박해 들어오고, 침투하고, 공중볼을 따내는 선수 하나하나가 정말 짜증스러울 정도였고 스타플레이어 한두명에게 골을 허용해서 진것 보다 전체 포메이션이 상대방에 의해 짓뭉게진 것 때문에 더 아프게 져버렸다. 홍명보호에 추가적인 기대를 갖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런점 때문이다.  

16강에서 만날 파라과이는 언제 들어도 짜증나는 팀이다.  예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라과이 같은 팀은 웬지 만만해 보이는 네임밸류를 가지고 있지만 브라질이나 독일같은 1급팀을 상대로도 항상 끈끈한 경기력을 보여온 팀이라 이태리, 아르헨티나와 같은 전통적인 강호들 보다도 더 껄끄러운 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예선 세경기에서 우리 포백진의 약속된 일자수비가 무너지는 장면이 몇번이나 있었기에 개인기와 후방침투에 능력을 가진 파라과이가 꺼림칙 한 것이다. 9아마 감독 자신이 더 고민하고 있겠지) 허나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홍명보 감독의 시스템을 감안한다면 어떤팀과 맞불을 놓아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솔직히 이런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몇몇 고비가 넘어가고 행운이 따라준다면 우승권에 근접한 전력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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