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좌파 지식인이 쓴

축구에세이

●  저자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유왕무 옮김)

  ● 출판사 : 예림기획

내가 책을 구입하는 프로세스는 매우 명료하다.  눈에 띄면 그냥 사는거다.   쟝르를 가리지 않고 돈에도 솔직히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

예전엔 동네 책대여점에서 몇번 빌려보다가 성격상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직접 사서 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게다가 음악이든 책이든 창작물에는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그들이 계속해서 좋은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내가 책을 보는 방식은 여러권을 한꺼번에 시작하는 것이다.   대게 2-3권에서 많게는 4-5권까지 한꺼번에 책읽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어떤 책은 화장실에서만 읽고 어떤책은 출퇴근 시간에만 읽으며 또한 어떤 책은 침대 머리맡에서만 읽는다.   또한 책을 사놓고 빨리 봐야 한다는 조바심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읽고 싶은 책들은 주욱 사놓고 한두달, 또는 길게는 6개월 이상 숙성시키다 이윽고 책을 잡기 시작한다.

어느날 우연히 소나에 이 책이 걸리게 되었다.  신문에서 본건지 잡지에서 본건지, 인터넷에서 알게되었는지는 상관없었다.   이 책을 사기전 그 내용이 축구에 대한 역사나 기술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기술해 놓은 것은 아니란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이 책은 배달이 되자마자 별도의 숙성과정없이 읽어내려갔다.  

책을 읽기 전에 맨 먼저 하는 일은 겉표지 안쪽쯤에 있기 마련인 저자소개…이 책의 저자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었다.   그는 우루과이의 좌파 지식인으로 남미의 정치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망명생활을 하며 입바른 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명망있는 작가이다.  (난 이런 세3세계의 좌파 지식인들의 얘기가 태생적으로 마음에 든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함께 남미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으로서 월드컵을 재패한 경험이 있는 우루과이 출신인 그가 축구를 싫어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런 그가 152개의 짧막짧막한 에세이로 축구를 말하고 있다.   그 역시 축구에는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지만 그의 시선은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 다르다.  책의 제목처럼 그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말하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말하는 것은 책제목의 순서와 같은 그림자이다.

그는 아주 간결한 언어로 해당 주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수필도 아니고 운율을 맞춘 시도 아니면서 역사,소설,시,자서전을 모두 읽는 듯한 독특한 문체로 되어 있다.   그를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 모두 그를 ‘언어의 마술사’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에 120%동의한다.

그는 최소한의 적절한 단어로서 나같은 단순한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큰 잘 내용을 전달하는 것 같다.

그의 152개의 에세이는 사실 백과사전에 가깝다.  즉, 어떤 축구용어의 ‘정의서’라 할만한데 정말 맞장구를 치지 않을수 없는 구절도 많지만 까맣게 모르고 있던 뒷이야기들도 알려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축구의 뒤안길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하지만 한편으로 자신 역시에게도 역시 축구가 마약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ㅎㅎ 이건 요즘 월드컵 분위기와 비슷하네요…)

오랜만에 좋은 책 하나를 만난 느낌이다…직접적인 단어로 펼치는 주장보다 읽고 느껴야 하는 책들이 좋다 ^^

맘에 드는 몇개의 에세이를 읽어보도록 하자…

주심

주심은 그라운드의 독재자이다.  어떠한 반대도 용납하지 않는 고약하고 밉살스런 존재다.

마치 오페라를 하는 듯한 몸짓으로 권한을 수행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지독한 냉혈한이다.  골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무효를 선언하기도 한다.  손에는 카드를 든 채, 벌칙에 따라 다른 색깔의 카드를 들어올린다.  옐로카드는 반칙자에게 후회를 하도록 만들며, 레드카드는 퇴장을 시켜버린다.

…(중략)

주심이 하는일은 사람들의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에서 유일하게 전원 만장일치로 찬성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주심을 증오한다는 사실이다.

…(중략)

주심도 당연히 그 공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축복이 허용되지 않는다.  만일 실수로라도 공이 그의 몸에 맞는다면,  관중들은 아무 죄도 없는 그의 어머니까지 두고두고 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 공이 굴러다니고 날아다니는 그 성스러운 녹색의 그라운드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온갖 모욕과 욕설, 돌팔매와 야유를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패자는 주심때문에 진것이고, 승자는 주심과 상관없이, 주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긴것이다.  만일 주심이 없었다면 팬들은 선수들의 실수에 대한 알리바이와 불운의 핑계를 머리를 쥐어짜며 고안해 내야 할것이다…(후략)

깃발이 된 축구공

축구와 조국은 항상 함께있다.그래서 정치가들과 독재자들은 이런 동일성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이탈리아팀은 34년 월드컵과 38년 월드컵에서 조국과 무솔리니의 이름으로 우승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경기시작때와 종료시에는 항상 “이탈리아 만세!”를 부르며 손을 쭉 뻗어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나치에게 있어서도 축구는 역시 국가의 문제였다.  우크라이나에는 키예프 선수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 1942년 독이리 점령시에 그들은 히틀러의 대표팀을 격파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았었다.

‘만약에 너희들이 이기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키예프 선수들은 공포와 허기에 떨면서 져 줄것을 약속하고서 경기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해지고 싶은 열망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경기가 끝나자,  열한명의 선수들은 벼랑 꼭대기에서 유니폼을 입은 채로 사형당했다…(후략)

책의 서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도 항상 이걸 추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안된다..

아마 작가도 그럴거다

이글을 수년 전 칼레야 데 라 코스타에서

나와 마주쳤던 적이 있는 그 꼬마들에게 바친다.

그들은 축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었다.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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