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야 거의 빼먹지 않고 박찬호의 경기 전체를 봤었지만  텍사스로 넘어가고 난 뒤로부터는 오히려 복장터질일만 많아져서 많은 팬들이 심드렁하게 경기를 보는둥 마는둥 했었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죠.

전 솔직히 WBC에서의 박찬호의 투구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 버리기 까지 했었습니다.

(기대가 커서 받는 상처가 시즌내내 만만치 않았거든요)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박찬호가 시즌초반에 부진하자 저는 그대로 체념하기 시작했고 또다시 메마른 MLB시즌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최희섭도 김병현, 김선우도…우리가 바라던 정도의 파워는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죠.

한두번 박찬호의 호투가 이어지면서도 반신반의 했었는데 지난번 15이닝 무실점 경기를 보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확연히 하게되었고  오늘 경기까지 보고나서는 이제서야 살아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달라진 박찬호는 그야말로 ‘이닝이터'(Inning Eater)더군요

오늘도 삼진을 많이 잡아냈지만 예전의 삼진과는 다르더군요. 

특히 5회말 3-4-5번 중심 타선을 그대로 전원 삼진을 잡아낸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예전의 볼배합이라면 빠른볼과 폭포수같은 커브(or 라이징패스트볼)로 타자들을 몰아세우던데 비해,  오늘은 그동안 박찬호에게 강세를 보이던 루이스 콘잘레스를 바깥쪽에 꽉차게 제구되는 루킹삼진으로 잡아냈던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아니 박찬호가 바깥쪽 꽉차게 제구되는 공으로 타자를 그대로 서서 돌려보낸일이 지난 10여년간 몇번이나 되었습니까 ?  

오늘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장 긍적적으로 본 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였습니다.  2회와 3회 에러등으로 점수를 내줄때만 해도 예전같았으면 심적으로 흔들리거나 다음회 부터 본격적으로 실점을 허용하기도 했는데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샌디에고 야수들은 기록상으로는 비록 에러 1개였지만  여러면에서 매끄럽지 못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하마터면 자멸할 뻔 했습니다.  

샌디에고가 요즘 잘 나가는 이유는 4회초 공격에서 나왔는데 보이지 않는 실책 등으로 점수를 잃고나서 막바로 상대팀에 찬물을 끼얹어 버린 것이 그것입니다.   게다가 상대 투수는 애리조나의 실질적인 에이스 브랜든 웹이었으니까요.(올시즌 6승 무패 방어율 2.19)

오늘같은 날도 있는 법이죠.  샌디에고로서는 마법같은 날이었습니다.  수비에서는 이상하리 마치 윤활유없이 돌아가는 기계 처럼 삐걱댔으니까요.  1루수앞 땅볼을 베이스커버 들어가는 박찬호에게 악송구한 것이나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상황에서 포수 바드가 확실하게 1루로 던지지 않았던 점도 (물론 심판이 어중간하게 콜을 한것이 원인이지만) 오늘의 마법이었습니다.    오늘 같은날이 바로 컨디션도 좋은데 대량실점하며 패하는 날이었는데 박찬호가 정말 잘 견뎌냈습니다.  

공격에서 3타수 3안타를 때려낸 것도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역전 2타점 중전안타까지 쳐내다니요.  

샌디에고의 보치 감독으로서는 가장 긍정적인 것이 바로 박찬호가 궐리티 피칭을 하면서 많은 이닝을 안정적으로 소화해 내는 점일 겁니다.   예전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는 많은 불펜투수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닝당 투구수도 예전 LA시절보다 올시즌이 2-3개 가량 줄었더군요.  평균적으로 한게임에서 한이닝정도를 더 던질 수 있는 투구수입니다.  

구속도 94마일까지 찍는걸 보면 문제없어 보이고, 해설자도 언급했지만 무브먼트가 좋다보니 포수도 공을 잡느라 쩔쩔매더군요.   몇 주전 주말 잠이 오지 않아 우연히 김병현의 선발 복귀 등판을 보고 흥분했던 생각이 납니다.  정말 그렇게만 던지면 설사 가운데로만 던져도 아무도 못치겠더군요.  

업슛과 뱀처럼 휘어지는 슬라이더에 휘어져나가고 들어오는 직구까지…

박찬호의 페이스도 현재로서는 최상으로 보입니다.  원래 박찬호는 날씨가 더워질 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투수였으니까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이닝이터에 에이스 킬러라…

이번 시즌 그의 새로운 별명이 명불허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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