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그…이놈의 마성

By | 2009-04-24

내가 대학시절 2년반동안 연구실에서 모셨던 우리교수님은 우리학번을 추억하는 단어로 항상 ‘극성맞은’이란 단어를 떠올리시곤 한다.  그래, 우리가 뭐든 좀 극성맞았었다. 뭘하든 말이다.  긍정적인 면으로 본다면 공부를 하거나 프로젝트 과제를 수행할 때도 그랬었다.
그러나 늘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뭔가 동기가 부여되거나 상대방이 우리를 자극할 때 예의 극성스럽고 적들이 상대하기 지긋지긋한 집단으로 변해갔다.

그건 내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뭘 하든 주위의 기대치보다 내 스스로의 기준이 항상 높았다. 그래서 가끔’ 이정도면 좋다’고 하는 주위의 평가도 무시한채 내 스스로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더 극성맞게 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기준을 처음부터 도저히 맞추지 못할것 같은 일들은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

10여년전에 딜버트 만화를 보고 나서 나의 이런 성향이 엔지니어의 곤조와 닮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난 공대 출신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마치 그릇을 빗는 도공처럼 남들은 그릇이 이쁘다고들 하는데 난 그게 성에 차지 않았고 남들의 그런 칭찬 역시 듣기 싫어 정말 도예가들이 그러는것 처럼 내가 해놓은 작업들을 안보이는 구석에 멀어놓아 버리기도 했다.

가끔 필요에 의해 몇년전 내가 만들어낸 보고서나 문서들을 뒤적거리면서 가끔 ‘맙소사’하는 탄식을 내뱉는데 스스로가 보기에도 다시하라면 못할것 같은 ‘작품’들이 재발견 되곤한다.  어제도 한개 발견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품중 하나... -;-;;


위  그림과 같은 것인데 혼자서 고객사의 모든팀의 담당자들을 스토킹하여 각팀이 보유하고 있는 KPI 백여개를 엄선하여 발굴하고 각 KPI의 계산방법과 성향을 조사하여 이들이 가진 상관관계와 성향을 그룹핑하여 정리한 자료였다. MS-Word를 이용해 9포인트 크기로 빽빽하게 28페이지로 정리한 이 문서는 프로젝트 진행 중 오로지 한 두개의 증거를 잡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 문서가 그 증거로 쓰기에 불충분하다고 여겨지자 바로 버려졌다. (-.-;;)

남들이 생각하기에 시간내에 완료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작업이나, 증명이 어려운 명제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참 많은 시간을 들였던것 같다.  물론 대부분이 과정중 버려진것만은 아니었다. 성공하기도 많이 성공했으니까…
그래서 주위사람들이나 고객들이 내 작업에 대한 믿음을 보내주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완전 엔지니어라니까)

아마 이런 성향때문에 친한  후배들이 눈대중으로 가늠한 후 시작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두고보지 못했던것 같다. 대충대충하는 모습을 포함해서 말이다.
충분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임에도 게으름을 부리고 대충하는 것은 가중처벌해 마땅했다. 그래서 아마 내가 데리고 있었거나 친했던 후배들에게는 더 냉정하고 혹독했던 것 같다. 그들이 어떻게 느낄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대했던 바보같은 녀석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걸 보고나서는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축구감독이 느낄만한  보람인가보다…하고

어쨋든 이 회사에 오고나서는 스스로 선수육성은 그만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쨋든 그건 피곤한 일이었으니까….게다가 이회사에 처음올때는 우습게도 팀의 막내였기에 그런 역할도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내 작업 자체는 항상 내 방식대로 진행되었던것 같고 뭔가 꺼리를 발견하면 내스스로의 본능에 의해 폭주하곤 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내가 팀장이 되자 가끔은 정말 나도 모르게 예전의 마성을 보이곤 하면서 평소답지 않게 애들을 몰아부치곤 한다. 물론 아주 드물게 말이다…
직접 프로젝트에 나갈일은 없어 같이 일을 하는 경우는 없지만 만약 그럴 경우가 생기면 어쩌다 한번은 그렇게 된다. 보통 나에게 일을 맡겨야 할 고객들이 거꾸로 나에게 숙제를 받아 고통을 당하는 경우인데….(^^ 이게 적당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어쨋든 내 기준은 고객보다 항상 높으니 내가 달리면 그들도 달려야 한다)

예전엔 참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역시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라는 생각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근데 요즘 직접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는 또 예전의 내 성질머리가 나오는것 같아 걱정이다. 그냥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이정도면 되지 않을까요…?’하는 식의 얘기를 듣고부터 그렇게 된거 같다. 물론 생각해서 말한 걸텐데 말이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아냐 ~! 이 바보~ 이건 네 회사의 네 업무인데 왜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거야. 이번일은  언제나 하던 방식으로 하다가는 댓가를 치르게 된다고 ~! 좀 더 집중해야해~! 더 생각하고 더 시간을 투자하라고~! 결정력있는 뭔가를 찾아야 해!”

라고   외칠뻔 했다.

갑자기 10여년전 첫번째 회사를 때려치우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는 정말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고 퇴사를 만류하면서 나에게 조니워커 한병을 원샷하면 놓아준다고 했던 임원의 면전에서 정말 원샷을 해버리고 그자리에서 나와버렸던 (지금 생각하면 황송하게도)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아후~ 왜 그러니 또…. 마성이 자꾸 살아나다니 …
이젠 좀 조용히 살아야 하는데 ~

※ 참고 : 이 마성은 성장 가능성있는 상대에게만 나타난다. 회사건 사람이건 아예 능력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상대라면 그냥 평범하게 그들이 원하고 만족하는 대로만 해주고 끝을 낸다. 참 이상한 성격이다.

※ 또 하나의 작품은 예전의 포스팅 당구와 직업병이라는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 정말 별별군데에 다 포스를 쏟아부은거 같다(-.-;;)  항상 쓸데없는데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건 좀 알아주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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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으이그…이놈의 마성

  1. 이기찬

    너의 마성에 대해서는 내가 아마도 가장 많이 겪어봤을것 같은데.. 그걸 내 용어로 하면 ‘최상주의자’라고 하지.. 최상의 기준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타고난 자발적 동기부여 엔진이라는 별칭이 있지.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최상은 더이상 최상이 아니라는 명제야말로 이 재능의 특성을 가장 잘 말해준다고나 할까. 잘 읽었다.. 여러모로 많은 이들에게 생각할 꺼리를 주는 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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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후우~ 답답한 마음에 써놓고 나서..창피해 지울까 했었는데 선배가 그렇게 평가해 주니 정말 체면이 서는구먼요…
      하긴…. 이 회사에 들어와서 제대로 100%를 보여준게 과연 몇번이나 있었는가를 따져보면 스스로 할말이 없지요. 스스로는 건방지게도 그들에게는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자만심과 곤조가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거든..
      그래도 몇번인가는 스스로 폭주한거 같아요. 상대방이 조금 무능해서 몰아붙인적도 있고 반대로 너무 죽이 잘 맞아서 신나게 달린적도 있었거든요.
      어쨋든 이번에도 폭주할 기미가 보이니 당분간 제가 홍대앞에 출현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다만 5/3일 쩔인5종경기에는 출장하는 방향으로 생각해봐요. 언제나 재미있었으니까~ 1년에 한두번 있는 그런재미도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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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효준, 효재아빠

    나 같은 놈에게 선배는 하나의 큰 목표였어. 나두 저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내 마음에 그렇게 선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뭔가에 미쳐서 최상의 작품을 빚어내려는 모습들을 옆에서 많이 지켜봤기 때문이지..
    그래서 항성 선배 근처에만 갈 수 있으면 성공이다라는 마음으로 지금껏 달려왔어.

    (나이를 먹다보니)가끔 타협을 할 필요성은 있지만, 그래도 후배들은 선배를 보고 선배처럼 될려고 많은 노력들을 하니까 너무 심하게 타협은 하지마. 물론 선배의 성격상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은 내가 잘 알지만서두..ㅎㅎ

    내가 지금껏 선배에게서 들을 말 중에 아직도 생생한 것은 “임자, 수고했어”라는 한 마디였어..ㅎㅎ 이건 우리가 벤처에서 국민대 컨설팅 최종 작업 넘기고 담배를 피면서 선배가 나한테 처음으로 해 줬던거야.. 정말 그땐 울컥하는 느낌이 들더라구. 아..선배가 나를 이제 조금 인정을 해 주는구나하구..(뭐 내 생각이었을 수도 있지..ㅎㅎ)

    한번 놀러갈게..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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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그래 너에겐 그랬던 순간이 있었구나…이젠 머 너두 연식도 되고 했으니 충분히 독립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거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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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enius_kwon

    제가 이 곳을 즐겨찾기에 넣은 이유가..
    아마도 KUG(Keynote User Group)에서 좋은 프리젠테이션 사이트로 소개되어서 인것 같습니다.
    대학원생활에 찌들어(??) 있는 지금에 도전을 주는 글이네요..
    그냥 지나가는 이도 댓글을 남기게 할만큼 무언가 끌리게고 힘이 되네요.
    참..
    저는 커그에서 “천재님”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랍니다..^^
    종종들러 글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괜찮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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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답글감사합니다 천재님 ^^
      어느 환경에나 그저 익숙해져버리고 순응해버리면 삶은 그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하는것 같습니다. 언제나 도전적인 의식을 버리지 마세요 ^^ 가끔 뭘로든 스스로에게 리마인드를 시켜주시구요 자주 오셔서 의견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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