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말 피말리는 연장승부를 통해 지긴 했지만 한국팀이 모든걸 쏟아낸 좋은 승부였다. 일본과의 수준차이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런 게임, 어제의 전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막상 지고나니 아쉽고 허탈하다.
야구는 실력, 흐름, 멘탈의 경기인것은 분명하다. 만약 내가 일본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어제 경기를 냉철하게 따져본다면 일본은 질만한 경기였다. 1회부터 수많은 진루를 거듭하면서 안타를 무려 15개나 때려냈지만 정작 득점 찬스에서는 병살타와 번트 실패 등으로 모든 기회를 무산시켰다.  일본팀은 어제 무려 14개의 잔루를 기록했다.  만약 고영민의 에러가 나오지 않았고 0:0인 상황에서 추신수에게 선제 홈런을 맞았더라면 경기의 흐름은 급격히 바뀔 수 있었다.

야구가 흐름의 경기이다보니 양팀의 실력이 대등했더라면 일본이 잔루 14개를 남기고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제 경기중의 하라감독의 작전은 거의 모두 실패했다. 번트나 히트앤드런 등 모든 작전이 말이다. 봉중근에 강했던 조지마를 4번 타자로 배치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참담했고 마지막에 다르빗슈를 마무리로 올린것도 9회 화끈한 불쇼로 돌아왔다.
경기흐름을 저해하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작전미스가 있었음에도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타자와 투수의 개인적인 역량들이 우수한 탓이었다.

지난 쿠바전부터 재미를 보기 시작한 단타위주의 타격은 비록 많은 땅볼과 잔루를 양산하기는 했지만 상대팀을 조금씩 침몰시키기에 충분했고 마운드에 선 이와쿠마는 나이답지 않게 정말 안정적인 운영과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기막힌 로케이션으로 4회 2사까지 한국타자들을 완전히 농락했다.
0:0, 1:1의 스코어는 대등했지만 보는 사람은 누구나 느꼈듯이 공격과 수비에서 일본에 열세를 면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즉, 일본은 평소라면 열번을 지고도 남을 나쁜 경기의 흐름을 오로지 실력하나로 극복해낸 것이다.
멘탈면에서는 한국팀이 정말 강했다. 초반부터 거의 침몰 당할것 같이 느껴졌던 경기를 기어이 9회말에 다르빗슈를 두들겨 동점까지 몰고가는 것을 보고 정말 소름이 끼쳤다.

어제 우리 투수들은 봉중근-류현진-임창용 할것 없이 평소보다는 좋지 않은 컨디션이었는데 김인식 감독의 투수교체 타이밍이 ‘조금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늦었던 이유도 모두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였던것 같다.  정현욱은 비록 실점하기는 했으나 그 역시 3.1이닝이나 소화해 내는 바람에 막판에 구위가 떨어져 버린것 같다. 
임창용 역시 2이닝동안 47개의 공을 던졌다.  정현욱이나 임창용을 각각 2, 1이닝씩으로 끊고 그 사이사이에 오승환, 정대현 등을 투입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어제 그들은 그리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보다.

한국의 선수층이 얇다는건 이런곳에서 나타났다.  믿고 올릴만한 투수들이 없어 교체타이밍을 빨리 가져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9회말 공격을 마치고 10회 수비에 들어가기 앞서서는 박경완, 김태균, 박기혁을 대신한 강민호, 이택근, 최정에 대한 수비를 걱정해야 했다.
대표팀의 선발라인업과 후보군간의 기량차이가 있으면 생기는 현상이다. 이 부분은 일본팀과 대조가 된다. 일본의 경우 무라타가 부상으로 중도하차 했어도 팀전력에 티끌만큼도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그래도 WBC 1회 대회나 이전에 비해서는 특정선수에 대한 집중도가 여러선수로 분산되어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갈길이 멀다. 국내 리그의 베스트 멤버가 총출동했는데도 불구, 박진만의 부상을 아쉬워해야 했고, 박경완을 대체할 수 있는 공격형 포수 또한 그리웠다.  이 부분은 계속 좋은 선수들이 양산되어 국내리그의 선수층이 두터워져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앞으로는 포지션별로 누구를 선정해야 할지 후보자들이 많아 고민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일본은 이제 한국을 만나면 무조건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하라 감독의 신중한 태도는 정말 좋았다. 대표팀내의 이치로와 같은 여러 선수들의 입단속을 철저히 하고 상대팀을 존중하는 (적어도 말로는) 자세가 일본의 성적을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아마 하라 개인적으로는 재팬시리즈를 재패하는 것이 다음 목표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하라 감독 개인적으로는 어제 천당과 지옥이 백지장 한장 차이였으리라. 만약 한국에 패했다면 그 이전에 벌어진 작전미스와 14개의 잔루, 다르빗슈의 투입시기 등등에 대해 집중성토를 당했을 것이고 호화멤버의 요미우리를 가지고도 2년연속 재팬시리즈에서 패퇴한것 까지 묶어 일본의 냄비언론에게 십자포화를 맞고 장렬하게 침몰하지 않았을 까 싶다.

사실 이번대회 초반부터 한국팀은 꼬이기 시작했다. 믿었던 원투펀치 김광현과 류현진의 컨디션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빈 공백을 윤석민과 봉중근으로 메꿀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수확이다. 계속 선수층이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아닌가.

이번 대회를 통해 눈여겨 볼만한 우리선수들의 성장 포인트로는…

1위 김태균…안방 거포가 아닌 국제거포로 거듭난 기회..상대팀에 공포를 안겨주다
2위 윤석민…스스로의 볼이 국제적으로 통한다는 것을 알게되다.  정말 대단…
3위 김현수..장효조 이후 국내리그를 재패할 최고의 교타자..특1급 투수들과도 당당히 맞짱
4위 봉중근…자신의 볼에 자신감을 갖다
5위 이범호…슬러거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다. 완전 자신감을 찾았던 무대
6위 정현욱…한국팀 최고의 파이어볼러였다. 시원시원~~~
7위 이용규…팀분위기를 이끌다. 상대팀에는 완전 눈엣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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