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달인…짤짤이

By | 2009-02-05

‘생활의 달인’라는 TV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참 별별 사람들이 다 있군’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 대부분이 자신의 직업안에서 거의 도가 튼 사람들이 아니던가. 나도 어느날 곰곰히 내 스스로 ‘달인’의 경지에 이를만한 분야가 뭔지 생각해보다가 현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예전엔 있었을까? … 맞다 예전엔 있었던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그 예전은 내 군대생활(정확히 말하자면 방위시절)이었다. 내가 가진 장기와 내가 목격한 장기가 어떤게 있나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내가 달인의 경지에 이른 분야들

3위. 타자수 알아맞추기
옆방에서 타자를 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출 수 있다. 나도 그 당시 구닥다리 올리베티 타자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올리베티 타자기는 나에게 피아노 같은 존재였다. 잘치는 타자수의 타자소리는 정말 듣기 좋다.
리듬감있는 타자소리는 피아노 연주와 같다. 정말이다.
물론 우리 인사계도 타자소리만 듣고 누구의 타자소리인지 정확하게 알아맞출 수 있었다.
다들 구닥다리 타자를 치는 방법이 달랐다. 예를 들어 나의 타자소리는 ‘두둑탁탁~두둑탁탁’이었고 옆 사무실의 모 병장은 글자마다 끊어지는법이 없이 지속적으로 ‘둑두둑두두둑둑두두’하는 소리가 났다.

2위. 타자기 알아맞추기
타자수 뿐만 아니라 우리 부대의 어떤 타자기로 누가 치는가도 정확하게 알아 맞출 수 있었다. 전동타자기가 아닌지라 약간씩 삐그덕 거리는 소리로 타자기를 판별했다. 내 타자기는 스페이스바가 항상 헐거워서 항상 덜그덕 거리는 소리가 났었고, 바로 앞 책상의 군수계원의 타자기는 다음줄 넘김을 할때 기름이 잘쳐진 부드러운 소리가 났었다.

1위. 짤짤이
난 경리업무를 보기도 했다. 1년간 동전을 만지다 보니 동전을 다루는데 선수가 되어버렸는데 그 능력이 진화하여 짤짤이 선수가 되었다. 보통 관리부에 월급을 타러가면 각부대 경리계원들끼리 짤짤이를 하는데 좀 한다는 계원은 일부러 동전을 많이 잡는다. 왜냐하면 남들이 알아챌까봐이다.
난 10여개 이내로 접는경우 손의 크기와 모양을 보고 손안의 동전갯수를 거의 정확하게 파악해낼 수 있었다. 가장 내가 쉽게 생각하는 대상은 같은 종류의 동전 10여개로 접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손모양 파악을 위해 몇판을 관찰하면서 해야 하지만 파악이 되고나면 여지가 없었다.
방위생활이 끝나고 이듬해에 예비군 동원훈련을 갔다가 짤짤이 판이 벌어졌다.
물론 나는 첫날 우리소대의 돈을 대낮에 모조리 긁어버렸다. 다행히도 비가오는 날씨여서 동전치기하기엔 땅이 젖어있었기에 짤짤이로 종목을 바꾸었는데 이때다 싶어 합류하였고 삽시간에 모조리 긁어버렸다.  중대의 돈까지 따기 시작해 그날밤 기간병을 불러 20만원을 쥐어주고 먹을걸 사오라고 했더니 이 녀석들이 귀신같이 개구멍으로 술과 안주거리를 사왔다. 물론 모두가 그걸로 회식을 했다.

다음날인가  우리 소대의 어떤 양반이 나를 불러내어 다른 중대로 원정을 가자고 했다. 총 5명이 짤짤이를 시작하여 불과 2시간만에 나머지 4명의 돈을 모두 따버렸다. 돈을 따고 돌아오니 내무반에는 축구화 열한켤레와 축구유니폼이 놓여있었고 인사계가 웃으면서 내기축구를 하자고 했다. 1인당 만원빵으로 말이다.  ㅎㅎ 물론 우리가 2:0으로 이기고 있다가(사실 기간병들이 져주고있다가) 5:2로 순식간에 역전을 당하는 접대사기축구를 당했다.

전반전에 바보같이 굴던 기간병 최전방공격수는 후반전에 표범으로 돌변, 골키퍼였던 나를 사정없이 유린했다. 네번째골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치욕의 골이었는데 측면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뛰어들면서 그대로 발리슛을 했고 공은 내 얼굴쪽을 향해 대포알같이 날아오고있었다. 미처 손을 들 시간도 없었다. 얼굴로 막았다간 죽을거 같아서 피해버렸다.

뭐  그런식으로 족구에 농구까지 계속 깨지고 난 딴돈을 고스란히 인사계에 바쳤다. 그날 밤도 회식이었다. 술을 한잔 하면서 낮에 해트트릭을 기록한 표범같은 기간병 녀석을 불러 물어보니 역시나… 축구선수 출신이었다.

예비군들은 어쨋든 졌지만 기분은 좋았고 다음날 받을 귀향여비는 부대운영비에 쓰게하자고 결의하고 인사계에게 소식을 전했다. 난 그 보답으로 다음날 동원훈련 예비군 대대장 표창을 수여받았다. 헐~ 난 항상 쓸데없는 상만 받는다.

※ 짤짤이 팁 : 상대가 고수라 생각되면 여러종류의 동전을 섞어서 많이 접으라 ^^ 최소한 조건은 동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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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생활의 달인…짤짤이

    1. demitrio

      Mr.Met님~! 블로그를 가보니 정말 멋지게 사시네요 ~!!
      짤짤이 같은걸로 젊은 날을 찌질하게 보낸 저보다는 훨씬 나으신걸요~
      저도 이제 오래 손을 놓다보니 감각이 거의 없습니다.
      역시 짤짤이는 지속적으로 해줘야 감이 죽지 않거든요 ㅎㅎ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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