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맨유로서는 정말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경기로 남을만한 경기가 바로 어제 경기였습니다. 어제의 멘디에타는 딱 5년전의 그를 보는것 같았습니다. 제가 멘디에타의 경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1999-2000시즌 챔스리그에서 멘디에타가 이끄는 발렌시아는 16강에서 맨체스터에 이은 조 2위로 8강에 진출합니다. 이때 발렌시아는 3:0으로 맨유에 완패했고 또 한번은 0:0으로 비겼습니다.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맨유를 제압했고 뮌헨은 포르투를, 바르셀로나가 첼시를, 발렌시아가 라치오를 제압하며 4강에 합류했습니다.

이 당시의 멘디에타는 거의 모든것이 정점에 달해 있었는데요. 그가 73년생이니까 그때가 만으로 26세때 였습니다. 예선전부터 멘디에타가 보여준 경기력은 정말 발렌시아 전체가 멘디에타 1인의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절대적이었고 상대팀 수비조직을 파괴하는데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사실 그가 호나우딩요의 드리블이나 베컴같은 킥력, 세브첸코같은 부문별 기량에서는 그리 내세울것은 없었으나 비상한 두뇌플레이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멘디에타에 완전히 빠진것은 4강전인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였는데요. 누구나 ‘발렌시아는 여기까지가 한계이다’라고 생각했고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1차전의 뚜껑을 열자 바로 어제 맨유와의 경기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스코어까지 똑같게 바르셀로나가 4:1로 발렌시아에게 무너지고 말았는데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던 네덜란드 커넥션이고 뭐고 모두가 멘디에타의 마법에 걸려들어 어제처럼 참혹하게 무너졌더랬습니다. 아직도 제가 기억이나는것은 한밤중의 중계라서 라면을 끓여서 혼자 먹으며 보다가 멘디에타의 발재간에 넋이 나가 결국 라면이 다 불어터지는 것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멘디에타의 돌파때마다 소리도 엄청나게 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거의 탄성이었죠…사실 그때만 해도 전 바르샤 팬이었습니다)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가 2:1로 이기기는 했지만 1차전의 패배가 너무 컸었습니다. 또다른 4강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뮌헨을 힘들게 제압하고 대기중이었죠.

결승에 대한 기대는 컸습니다만 싱겁게도 레알이 3:0으로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발렌시아는 그게 끝이 아니었죠. 2000-2001 챔스리그에서 발렌시아는 16강전에서 또다시 맨유를 만나게 되고 이번엔 1:1, 0:0으로 비겨서 8강무대를 밟게 됩니다.

발렌시아는 8강전에서 아스날을, 준결승에서 리즈를 이기고 전년도 레알전의 패배를 설욕한 뮌헨과 일전을 치룹니다.

발렌시아도 발렌시아지만 뮌헨 역시 번번히 우승문턱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양팀 모두 우승에대한 열망이 어느때 보다 강했고 경기도 치열해서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로 뮌헨이 우승컵을 가져갑니다.

이때까지의 활약상으로 멘디에타의 몸값은 거의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고 라치오가 그를 거액에 데려갔지만 리그 적응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가 2002월드컵에도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왔었지만 그때는 이미 그의 절정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후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또한번 전환기를 맞이하나 했지만 그 역시 실패로 돌아갔고 미들스부르로 또 다시 옮기게 되었죠.

어제의 경기에서 멘디에타를 보면서 그의 이러한 이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비록 박지성이 속한 맨유가 완패했지만 멘디에타가 5년전의 그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다는데 만족해했죠.

멘디에타가 앞으로도 어제같은 플레이만 해준다면 다시금 그의 진가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드러날텐데요. 그의 팬의 한사람으로서 그가 앞으로도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갔으면 합니다.

어제의 경기로 다시 돌아와서 이제 맨유의 이야기를 해보죠.

맨유는 어제 경기에서 패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인것이 아니라 모든게 다 무너져내린것 같은 느낌을 준것이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보통 레알이나 바르샤, 뮌헨, PSV등 각 리그의 강팀들이 중위권팀들에게 덜미를 잡히는 모습을 보면 …

1. 경기력에서는 월등했으나 역습에 말려 지는 경우

2. 골대를 3번이상 맞추는등 지극히 운이 따르지 않는 경우

3. 경기 자체를 지배당한 경우

뭐 이런 패턴으로 패배를 당하곤 하는데요

보통은 1,2번 패턴이 혼합되면서 덜미를 잡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즉, 일방적으로 퍼붓다가 단 한번의 역습에 골을 허용하고 골대만 세번 맞추고 지거나 하는 경우죠.

중위권팀이 지역 라이벌이어서 아예 작정을 하고 나와 대어를 낚는 경우도 있지만 어제의 경기는 더비매치도 아니었습니다. 골을 허용하는 과정도 어제는 지극히 좋지 않았는데요.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좋지 않은 모습을 다 보여줬는데 멘디에타의 중거리슛을 막아내지 못한 반데사르나(그의 실력을 감안한다면 말입니다) 하셀바잉크와의 1:1에서 깨끗하게 뚫려버린 리오, 게다가 전반전 30분 언저리에서 과감하게 바슬리와 교체된 리차드슨의 페널티킥 파울은 맨유의 남은 힘마저 모조리 빼놓았습니다.

보통은 후반전이되면 반격이 시작될만도 했는데 오히려 후반전이 되자 아예 오른쪽이나 왼쪽 전체가 미들스부르의 공격진에게 유린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경기 막판까지 이어졌습니다.

미들스부르는 하셀바잉크-멘디에타등 공격3인방도 잘했지만 수비에서도 절대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공간을 찾아다니는 박지성이 답답해 보였던 것도 미들스부르 수비진들이 미리 공간을 점유해 버려서 였는데요.

경기초반엔 박지성의 왼쪽라인에 맨유의 공격이 몰리다가 이게 여의치 않게되고 두골이나 허용해버리자 퍼거슨이 근래에는 보기힘든 결단을 내려서 오른쪽의 바슬리를 빼버리고 그 자리에 리차드슨을 넣은게 아니라 왼쪽의 오셔를 오른쪽으로 보내버리고 박지성을 오른쪽에(이건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리차드슨을 왼쪽 윙으로해 공격수를 하나 더 늘리고 포백을 쓰리백으로 전환하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말이죠)

그러니까 전반 35분 경에는 왼쪽의 리차드슨은 윙백의 역할이 아니라 아예 윙으로 사용되면서 빈 자리를 실베스트르가 막아내면서 쓰리백 형태가 되어 버린건데요. 잠깐 화면에도 비추어 졌습니다만 박지성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중앙쪽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셨죠..박지성이 벤치의 사인을 보고 의아해 하는 장면) 제가 해석했을때는 박지성을 오른쪽으로 돌리고자 했던것 같은데 박지성은 한동안 중앙에서 왼쪽으로 조금 치우친 자리를 지키다가 나중에 오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퍼거슨은 이때 포메이션의 변화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선수들 전체가 이때부터 오히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차드슨은 자기가 윙인지 윙백인지 분간을 못했고 박지성은 중앙인지 오른쪽인지가 불분명했으며 스콜스는 쓰리톱의 한명처럼 전진했고 스미스는 머리까지 짧게 잘라 도대체 스미스가 나온건지 안나온건지 분간이 안될만큼 상대편 미드필더를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실베스트르가 제자리를 확고하게 지켰습니다만 리오까지 실수를 연발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고 반데사르는 자신의 생일에 4골을 허용했습니다.

후반에 교체투입된 호나우두는 비록 팀의 불명예스런 1천호골의 주인공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답답한 드리블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호나우두가 팀이 침체된 상황에서 개인기로 돌파하는 전략은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루니와 반니는 계속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돌파해서 슛을 날리는 수밖에는 없었죠.

박지성은 어제 공간을 찾기도 어려웠고 마땅히 패스할 곳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미들스부르의 선수들이 어젠 정말 패스할 곳이 없도록 수비를 잘했습니다.) 패스할 곳을 찾지 못하자 볼을 끌게 되었고 결국 패스가 사전에 차단되어 미들스부르의 미들진영에서부터 한방에 하셀바잉크까지 배달되었던 거죠. 거기에 리오의 실책까지…(아뿔사)

다음주 첼시와의 맞대결이 걱정됩니다. 맨유선수들이 정말 작정하고 나오지 않는다면 첼시의 그 파상공세를 과연 어떻게 막아내려는지 …걱정이 아닐 수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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