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 홈커밍데이

By | 200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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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홈커밍데이 (민주광장에서) : 왼쪽부터 후배 명숙, 동기 대곤, 그리고 나

우리과는 몸으로 때우는 행사가 거의 대부분의 놀거리였던 것 같다.  말 그대로 몸으로 부데끼야하는 행사들이었는데 졸업생과 재학생이 모두 모여서 하루를 같이 보내면서 노는 ‘홈커밍데이’ 역시 처음엔 그랬다.
그냥 앉아서 고분고분 노는것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우리는 승냥이 같이 항상 걷고 움직였다.  95년 졸업해서 두번째로 참가했던 96년의 홈커밍데이 역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뒷산이 북한산이다 보니 우리는 아침에 모여서 여러학번을 섞어서 조를 짜고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후배들이나 선배들이어서 산을 오르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얘기가 끊이지 않았고 웃고 떠들면서 뛰고 걷느라 체력이 두배로 소모될 지경이었다.  (계속 말하면서 산에 올라보시라 …)

96년 홈커밍데이때의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아날로그 사진을 지속적으로 디지털로 변환중이다)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 사진으로 떠올랐다.  산에 다녀와서 광장에서 소주와 막걸리, 먹거리등을 배가 부르게 먹은 뒤, 여러 선후배들의 쇼를 감상하고 땅거미가 질때쯤 후배들을 몰고 학교앞 술집으로 가서 신나게 마신 후 노래방, 당구장을 전전했었다.  (요즘은 이럴만한 체력이 아니다 -.-)

선후배와 교수들에게(다른학과 교수들에게 까지도) 우리과 88학번은 한마디로 ‘극성스러운’학번으로 기억된다.  거의 모든 면에서 그런 기조를 끝까지 유지했는데 특히 학교의 행사가 있을때의 참석률이 그것을 방증했다.
( 2007년에 열린 홈커밍데이때는 졸업생들중 두번째로 많은 인원이 참석한 학번이어서 참석률에 따라 수여하는 ‘술값’ 30만원을 받기도 했었다. 1위는 98학번이 차지(역시 8자로 끝나는 학번답다 ^^)
학과내의 모든 행사에서 독보적인 참석률을 보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선후배들과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게 되었는데, 나같은 경우는 84학번 전체를 시작으로 95학번의 일부까지를 커버한다.

난 원래 누군가가 건드리지 않는한 내 스스로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먼저 나서는 법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어느순간 보면 앞에나가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과 마주보고 있게 된다.  95년인지 이날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쨋든 이때도 상황이 그렇게 돌아갔다.  재학생 학회장 녀석의 사회가 너무 썰렁한 탓에 주변에서 야유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승표 녀석(아마 이놈일거다)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래 용석아~ 네가 나가야 할거 같다”

뭐 동기들과 후배녀석들이 자꾸 무대로 밀어 넣는 통에 제정신으로는 할수 없어 종이컵에 소주를 반병을 따라서 원샷을 하고(아마 이건 수일이가 따라줬을거다) 무대로 나가려고 애들을 헤치고 앞으로 갔다.  맨앞에 앉아 계셨던 우리 교수님은 다른 교수들과 내기라도 하신것 같았다.  내가 무대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옆에 있던 전교수의 무릎을 치면서 ‘거봐 나온댔잖아~’하고 후배들한테 들릴정도로 크게 말하고 웃으시는게 아닌가. 

‘에이그 쪽팔려… 왜 항상 난 이모양이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어나갔는데 어차피 그런 생각이 들까봐 소주를 마신거였으므로 무대에 서자 마음이 다시금 안정이 되었다.  어차피 대학 7년간의 레퍼토리는 변한게 없었다. 내 개인기는 교수들 전체와 선후배중 특징적인 인물의 목소리와 몸짓을 그대로 흉내내는 거였다.
이미 전체MT(1~4학년이 몽땅 몰려가는 MT : 필자주)를 통해 내 개인기를 접했던 94학번까지의 선후배들은 오랜만에 예전의 공연을 보는거였고 새로들어온 95학번들과 신규영입된 교수들은 내가 뭘하려고 하는지 도통 감을 못잡은채 눈만 똥그랗게 뜨고있었다.
마이크를 잡자 군중들사이에서 후배 몇녀석이 주먹을 치켜올리며 ‘예수대신 바라바를 놔주시오’하는 어조로 ‘전성현교수~~’를 외쳤다.

‘그래 그래~ 차근차근 해주마…지둘리’

이 다음부터는 뭐 더 얘기할 것도 없다. 교수몇명과 89학번 영달이 녀석 흉내를 내주자 우리 교수님의 의자가 제일먼저 뒤로 자빠졌다. (우리교수님 : 난 복학하기전부터 2년반동안 교수연구실에 들어가서 공부만했다. 그래서 우리교수님이라 부르는것이다 -필자주)
아마 그날이후로 95학번들이 내얼굴을 기억하게 된것 같다. 가끔 학교행사때 나는 못알아보는데 그 녀석들이 먼저 싱글거리면서 인사를 하곤 한다.

지금도 동기들과 몇개월에 한번씩 동기모임을 가지면 심심할때쯤 교수흉내를 내보라고 하는 친구들이 가끔있다. (나쁜시키들…그게 몇년전 얘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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