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전의 짧은 질문과 대답들

By | 2006-06-16

프리젠테이션노트 – (1) 짧은 질문과 대답

문서를 작성하기 전에…


파워포인트는 우리나라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거의 워드프로세서를 대체하는 상황입니다.  모든 보고서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하는 부서들이 많죠.   재미있는 것은 재무팀의 워드 프로세서는 엑셀이란 겁니다.   관공서나 학교를 제외하고는 파워포인트나 엑셀이 문서작성기의 대세입니다.
프리젠테이션 노트라고 했지만 사실 저는 모든 보고서작성 행위를 저의 프리젠테이션 노트의 범주로 삼고 있습니다.   꼭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발표를 하는 프리젠테이션에만 범위를 국한 시키지 않겠습니다.   대개의 경우 레포트만 제출하고 프리젠테이션은 생략되기도 하고 필요하면 주간회의나 비정기 미팅에서 간략하게 해당 레포트를 가지고 발표를 할수도 있지요.

그래서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레포트와 프리젠테이션을 겸할 수 있도록 작성하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런편이죠.    프린터로 출력하거나 프로젝터를 통해서 표시해도 둘 다 웬만큼 만족시키는 문서를 작성하는거죠. 그런면에서 본다면 애플의 키노트는 그 범위가 그렇게 넓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니 말을 좀 달리하자면 키노트를 문서작성기로 사용하기는 조금 아깝죠.
매주, 매월 돌아오는 정기 레포트같은 것들 말고 특정 주제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우,  대개는 그 문서의 목적이 누군가를 설득해서 무언가를 추진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럼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그냥 처음부터 슬라이드를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분도 있겠고
논리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할지 몰라서 금쪽같은 시간을 멍하게 앉아 있는 분들도 계시겠죠

꼬이기 시작하는 글타래


한정된 시간내에 보고서나 슬라이드를 대량 생산해내고 나중에 그걸 주욱 넘겨보면 제 스스로도 이게 무슨말을 하고자 하는건지 모를때가 많습니다.  (이게 최악이죠)  조금 더 나은 경우는 제 스스로는 다 정리가 된것 같은데 동료들이나 선배에게 보여주면 이해를 쉽게 못해내는 경우가 있죠.   
마치 산만한 헐리웃 영화 한편을 보고나온 기분이 될 때가 많죠.   저 스스로도 아직 이런짓을 많이 할뿐더러 저의 고객이나 동료, 선후배들도 아직 이런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의 고객 A는 저에게 약 4주간의 시간을 주고 통합해야 하는지 분산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해달라고 의뢰해 왔습니다.   솔직히 전 난감했습니다.   4주만에 그걸 판단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걸 발표하기란 좀 짧은 시간이었죠.     일단 그 작업을 지난 반년간 추진해왔던 고객사의 담당자들을 만나 하나하나 얘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명을 만나서 얘기를 주욱 들어보니까 대충 무슨얘긴지 알겠더군요.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때 결론은 이렇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객 : “지금까지 여러 담당자를 만나보니 감이 잡히시죠?”

나 : “예,  결국은 통합하는 쪽이 여러모로 낫다는 의견이군요.  통합은 하되 하나로 통합하기 보다는 전국을 권역으로 나누어 2-3개 그룹으로 통합하는게 좋겠네요.  그리고…뭐라구뭐라구…” 

고객 : “그건 이미 사장님께 보고드렸다가 퇴짜맞은 것들입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 주셔야 겠는데요.  아니면 결정적인 설득논리가 있거나요”

나: “어? 그래요?  설득논리는 충분해보이는데요 당장 얘기하신 5-6가지만 해도 이미 충분한데요”

고객: “네 이미 그렇게 말씀드렸고 그걸로 엄청나게 깨졌습니다.  다른 사항은 보이는게 없던가요?”

전 순간 암담했습니다.   다른 Magic은 없었습니다.  고객들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저도 문제라고 생각이 되었고 그건 이미 경영층에서 여러번 거절한 것이라네요.  그래서 그 당시 보고했던 PT자료를 가지고 그 당시 보고했던 것과 동일하게 보고해봐 달라고 부탁했죠.    ‘더이상 볼것도 없다’라고 좀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 고객사의 C과장은 저에게 경영진에게 보고한 그대로를 주욱 설명해 주었습니다.

약 한시간을 간략하게 듣고나와서 저는 확실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이 투입된 후배한테 물어봤죠 “넌 저 보고내용이 뭘 말하는지 요약해서 말할 수 있냐?”

“아뇨 뭔 소릴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던데요.  진짜 졸려 죽는줄 알았네요”

짧은 질문과 대답들


그 보고서와 보고내용은 어떤게 중요한것이고 주요내용이 무엇인지 전혀알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방대한 보고서내에 모든 내용은 다 들어있더군요.    그러나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진짜 경영진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이 뭔지 모르다보니 결론 역시 엄청나게 길었습니다. 

휴식후에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C과장님, 경영진이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과장님에게 듣고싶은 3,4개의 질문과 대답들은 뭐죠?”

-.-;;

저의 이 질문에 고객사의 누구도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이상하죠…6개월간 그에 대해서 보고를 몇번이나 해왔는데 왜 이 간단한 질문에 대답이 안될까요.  결국 저와 고객들은 일주일동안 짧은 질문과 대답들을 만들어 토론을 하였고 결국 최종적으로 5개 질문과 대답들이 이번 프로젝트의 중추적인 내용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면 저는 그들이 6개월동안 보고한 내용들을 10장이내로 추려내어 다시 보고서를 작성했고 그것을 똑같은 담당자가 다시 보고하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경영진이 거의 만장일치로 그자리에서 해당사업과 예산에 대해 승인을 해줬죠.
C과장은 뭔가에 홀린것 같았습니다.  사실 옛날내용들과 달라진건 하나도 없었거든요.
오히려 10장이내로 제가 과감하게 도려내버리자 너무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죠…

우리는 경영진들이 궁금해하는 2-3가지의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   이건 참고사항인데…하면서 삼천포로 빠지지도 않았고 오로지 그 2-3개를 설명하기 위해서만 지면을 할애했죠.  부차적인 10여가지 사항은 질문이 나오면 말로 설명해주거나 추가적인 슬라이드를 끄집어 낼 계획이었습니다.  

A사의 경영자가 알고싶은 짧은 질문과 대답들

Q.장기적으로 그일에 소요되는 적정 리소스는 얼마인가 ?
A.500이다

Q.형태는 통합인가 분산인가 ?
A.적절한 통합만이 500을 보장한다.

Q.우리가 직접하나 아니면 아웃소싱을 해야하나 ?
A.품질이 중요한일은 우리가 직접, 단순한건 아웃소싱을 준다

Q.그럼 조직은 어떤식으로 운영해야 효율적인가?
A.현재 지역별조직을 기능별로 통합하여 시너지효과를 낸다

보기는 매우 간단한 질문과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걸 가지고 있으면 보고서의 촛점이 흐려지는걸 방지할 수 있죠.   초반의 모든 내용이 위의 4가지 질문과 대답에 대한 보충자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A사의 고객들과 처음 위의 Q&A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나온 질문과 대답들은 참으로 갖가지였고 전혀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지역별 품질편차는 어떻게 줄일것인가?’라는 질문이었죠.  -.-

대부분의 보고와 프리젠테이션은 청중 혹은 한두사람의 유력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5개 이하의 단순하고 기본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추가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대하고 보고서나 프리젠테이션을 봅니다.   그리고 너무 복잡한 것은 기억해내지 못하죠.

따라서 간단한 문답법으로 보고서나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은 확실한 효과를 거둘때가 많습니다. 당장 슬라이드를 작성하기 전에 스스로 이번 보고서나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간단한 질문과 대답을 만들어보세요.    제가 생각할때는 그 문답을 작성하는것으로 이미 진도의 20-30%는 끝난겁니다.

슬라이드를 꾸미고 설득논리를 찾아내는건 시간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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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houghts on “작업전의 짧은 질문과 대답들

  1. 김현섭

    아주 단순한 사실. 하지만 문서를 만들다보면 가끔 혼자 신이나서 다양한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왜? 멋져서…ㅋㅋ

    하지만 쥔장이 이야기 한 것처럼 보고서는 보고를 받을 사람의 수준과 관심사항에 대해서 명확하게 찍어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 같다.
    괜히 더 하면 오히려 욕을 먹을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 밖에 안되기도 하니까.

    어렵고 기술적인 내용은 담당자들하고나 이야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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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용무

    원래 단순한 질문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실력은,, 언제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인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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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아 네 맞습니다~ 단순한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가 실력이지요 정말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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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 감사합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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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물고기상인

    오늘 리브로에서 책 구입했어요 ^^

    어제 서점에서 잠깐 쓱 봤는데 내용이 너무좋더라구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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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질문도 해주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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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호야

    대단합니다.
    간단하면서도 미처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잘 짚어 주셨네요.

    좋은 글 감사히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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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 감사합니다. 이 글은 아마 비슷한 일이 벌어진 당일에 언뜻 생각이 나서 적어두었던 글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두서없이 나열이 되어서 나중에 읽어보니 약간 산만하기도 하더군요.
      잘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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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유진

    오늘 강의 들은 수강생입니다. 좋은 강의 감사드리고, 내일도 기대할께요~!
    사실 아기 때문에 교육기간 동안 서울서 대전까지 출퇴근 중인데, 아기 재워놓고
    두 시간째 여기서 글만 계속 읽고 있네요..낼 새벽에 기차 타려면 빨리 자야할텐데..

    혹시 내일 제가 맨 앞자리에서 졸고 있다면 선생님께서 “인간수면제”라서는 아닐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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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어제 말씀드렸듯이 제 자신이 잠이 많다보니 잠자는 분들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답니다 ^^ 거의 파워포인트 블루스 연재 초기의 글부터 읽으셨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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