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파티와 기억력게임

By | 2008-11-28

88학번 이전까지는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는것이 일반적인 룰이었다. 그래야 3개월 복무단축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바램과는 상관없이 대학2학년때 가는 전방입소 교육이 폐지되자마자 우리의 복무단축 혜택은 45일로 줄어들었고 우리는 굳이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야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제기랄~! 88학번~ 복도 없지~!  꼭 우리앞에서 모든게 변한다. 입시제도 역시 그랬고 군복무 단축혜택 역시…

다행히 우리는 1학년때 문무대를 다녀왔다. 따라서 아직 45일의 단축혜택은 유효했다. 전체 60명중 남학생이 48명이었는데 이중에서 면제되는 녀석들과 일부 늦게갈 놈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동시에 휴학계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2학년 1학기까지를 마치고 휴학계를 던졌다.   그렇게 40명에 가까운 동기들이 3학년이 되기전에 한꺼번에 사라졌다.  우리들은 모두들 친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시 복학해서 놀아보자고 다짐하고 다들 뿔뿔이 군대로 흩어졌다.

1992년 봄이되자 하나둘 학교로 복귀하기 시작해서 92년 2학기가 되자 거의 대부분의 동기들이 한꺼번에 복학을 했다. 아마 30명 정도 되나보다. 여기에 89학번인 방위출신과, 90학번 6방까지 합쳐지자 메머드 복학생 군단이 되어버렸다.
나는 2학년 1학기까지 거의 심각한 수준의 학점을 받아놓고 있었다. 따라서 나도 졸업후 진로를 고려하면 뭔가 결심이 필요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과 교수님 연구실에 자원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게 92년도 여름방학때였고 복학하기 직전이었다.

내가 모셨던 교수님이 마침 우리학년 담당 교수였는데 우리는 92년 가을에 복학을 자축하는 대대적인 MT를 계획했다. 뭐 대대적인 MT라 해서 별다른건 없었다. 1박2일짜리 술파티라고나 할까.  어차피 밤새 술을 퍼마실 예정이었기에 장소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교수님도 늦게나마 오시기로 했다.  장소는 장흥이었는데 약간 외곽의 야트막한 산중턱이었다.
원래는 교수님이 오시면 술파티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초저녁이 되도록 교수님이 도착을 하지 않자 우리끼리 마시기 시작했고 밤 9시정도가 되었을때 이미 멤버의 절반이상이 초토화되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먼어둠속에서 사람형상의 물체가 보였고 신음소리가 났다. 후배들을 정찰병으로 내보냈는데 교수님이었다!
산아래에 차를 세우고 어두운 산길을 걸어올라오시다가 그만 길 아래로 구르셨단다. 그 과정에서 왼팔을 다치기까지 하셨다. MT분위기는 삽시간에 어두워진게 당연했다. 불빛아래서 보니 교수님은 거의 만신창이였다.  바지도 찢어지고 잠바는 굴러서 흙범벅이 되어있었다.  우리들은 술병을 걷어치우고 교수님을 방안으로 모셨다. 교수님은 방에 들어가자 마자 드러누워버렸다.  …

밤  10시가 넘어서 교수님이 간신히 기운을 회복하시고 앉으셨다. 얼굴을 아는 놈이라곤 나밖에 없었으므로 나를 부르셔서 애들을 모아오라고 했다. 애들을 모두 큰방으로 모았다. 나를 제외하고 정확히 38명이었다.
교수님은 술의 재고를 파악하셨다. 우리는 인근 포천에서 공수해온 포천 막걸리가 있었다. 막걸리가 모두 방안으로 들어왔다. 교수님은 애들을 모두 앉히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서른여덟명이로구나. 이제 왼쪽부터 나랑 막걸리를 한잔씩 하면서 이름을 얘기해다오. 내가 서른 여덟잔을 모두 먹은다음 처음부터 이름을 모두 외우도록 하마.  만약 한사람이라도 틀린다면 오늘밤은 내가 밤새도록 술을 사기로 하겠다”

거기서부터 우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정말 막걸리를 서른여덟잔을 비우셨고 (물론 내가 옆에서 10잔은 대신 마셨다) 막걸리를 모두 비운 후 처음부터 애들 이름을 하나하나 얼굴을 보며 외우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결정적인거 5-6명을 바로옆에서 도와드렸다. 애들은 모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눈치채지도 못했다)

마지막 서른여덟번째 이름이 불리워지자 서른여덟명이 일제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우~’

원래대로라면 거기서 끝나야 할 술판이었지만 일단 남은 막걸리를 몽땅 마셔버린 후, 교수님에게 돈을 받아서 운전면허가 있는 놈들이 산아래로 내려가 취한채로 차를 몰고 그 돈을 모두 소주로 바꿔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뭐  그 뒤로는 말 그대로 거의 들이붓는 수준으로 또 다시 그 술을 몽땅 다 마시고
또 차를 몰고 내려가 또 술을 사왔다.

후우~ 미친….

나? …아마 내가 제일먼저 오바이트 대열에 합류했을거다.  그렇게 오바이트르르 많이 해본날이 없었다.  그리고나서 취해서 쓰러져있는 교수님을 업고나와 교수님의 등을 두드려드리면서 나 역시 또 그 옆에서 오바이트 ….
정말 Crazy Night였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취한 교수님이 새벽에 다시 밖으로나와 옆방에 역시 MT를 온 여학교 학생들을 설득해 우리방으로 데리고 온거였다. 내 몸하나 가눌길 없는데 웬 여학생이란 말인가…휴~

그 MT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애들은 정말 그날 교수님이 38명의 이름을 외운다고 믿었다.  물론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는 내 도움을 받으셨지만 며칠지나지 않아 진짜로 모든 애들의 이름을 완전하게 외우셨다.

사실 오늘 내가 2년반동안 있었던 우리교수님 연구실의 역대 멤버들 회식이자 우리 88학번 송년회가 겹친날이다.  어제 종희녀석이 오늘 올거냐고 물어보길래 교수님 회식이 먼저라 2차에 합류한다고 하니까 예전의 그 MT얘기를 꺼냈다.
사실 이름도 이름이지만 막걸리 38잔을 계속해서 마신다는 것도 거의 있을수 없는 일이었기 떄문에…

글쎄…오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교수님께 88학번이 산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하면 눈을 번득이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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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막걸리 파티와 기억력게임

  1. 재능세공사

    진짜 올만에 졸라 웃었다..ㅋㅋ 그런 일이 있었구나. 교수님도 참 대단하시지.. 어제 재진선배 덕분에 통화도 했지만 여전하시더구나. 그래도 예전과 같은 체력은 아니신게 항상 마음에 걸리는구나. 용석이가 잘 챙겨드려라. 이런 교수님이 계셨다는건 우리 과의 자랑이니까. 어제 무사히 귀가는 했는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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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요즘 몇달간은 참 기분이 이상해요. 내 주위에서 친하게 지냈었지만 그동안 잘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만나고 있는중이에요. 그것도 우연히 만나게 되거나 뭔가 고리가 생겨서 말이죠. 재진선배도 그랬고 어젠 영신누나와 한건이 형과도 학교주차장에 서서 오래동안 얘기를 나눴어요.
      내 인생이라는 영화속 등장인물이 모두들 차례대로 나오는 느낌이랄까 ?
      앞으로 누가 또 등장할지 모르겠네. 애숙선배는 어제 안나왔더만 ㅎㅎ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도 많으니…ㅎㅎ
      어제 학교 앞 그림비 사장형님도 거의 10년만에 만난거 같은데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면서 웬 살이 그렇게 쪘냐고 뭐라하시더만 ㅋㅋㅋ
      예전부터 지금까지 알아온 등장인물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감회도 새롭지만 가슴도 찡하더만요…
      어제 15명 정도의 동기들이 등장했는데 너무들 술을 많이 마셔서 전 승모랑 중간에 도망쳤어요. 그넘들은 술이 줄지도 않나봄. 1차에서 소주병과 맥주병을 대강 세어보니 60병이 넘더라는.. 교수님은 여전하세요. 어제는 흥이나셨는지 술과 담배를 계속 하시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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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har

    내년에 복학하는데 동기들이 군대&휴학러쉬를 감행해서 난감합니다..
    선후배들이랑도 친하긴 하지만 걱정이네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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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오~ 그 심정 저도 알아요. 쉬운일이 아니죠.. 저 역시 항상 익숙한 사람들에게만 편하고 익숙한 편이라서 동기들과 맞추려고 복학도 일부러 한학기를 뒤로 늦추기까지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여러차례 옮기다보니 예전친구들이 그리운것도 있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또한 적지 않더군요. 물론 처음엔 좀 시간이 걸리지만요.
      그래도 역시 나를 제일 잘 알아주고 이해하는건 내 동기들이 최고죠.
      내가 실수하고 화내는 부분까지도 모두 덮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은 말이에요. 끈을 놓지 마세요 ^^
      저는 뿔뿔히 다른곳으로 흩어진 동기들과 군대있는 동안에도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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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기찬

    그랬구나.. 그럴때가 정말 있더라.. 니가 반가워했던 인물들이 나도 보고싶은 인물들이라 내 대신 안부 전해주었으리라 믿는다.. 그림비 사장님은 여전하신가 보구나. 그분도 정말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시네.. 요즘 아해들이 예전같지 않아 상처도 많이 받으실것 같기도 한데.. 애숙이는 나도 꼭 한번 보고싶은데 기회가 닿질 않는구나.. 다음주 목요일에 87학번 송년회를 정지열이가 소집했더군.. 올만에 나가서 아해들 어떻게 변했나 구경이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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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오호 87학번 송년회를 ?…. 명식선배가 어케 사는지 보면 애숙선배가 어떤지를 알 수 있겠지.ㅎㅎ 정지열 선배라…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로구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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