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학번 이전까지는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는것이 일반적인 룰이었다. 그래야 3개월 복무단축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바램과는 상관없이 대학2학년때 가는 전방입소 교육이 폐지되자마자 우리의 복무단축 혜택은 45일로 줄어들었고 우리는 굳이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야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제기랄~! 88학번~ 복도 없지~!  꼭 우리앞에서 모든게 변한다. 입시제도 역시 그랬고 군복무 단축혜택 역시…

다행히 우리는 1학년때 문무대를 다녀왔다. 따라서 아직 45일의 단축혜택은 유효했다. 전체 60명중 남학생이 48명이었는데 이중에서 면제되는 녀석들과 일부 늦게갈 놈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동시에 휴학계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2학년 1학기까지를 마치고 휴학계를 던졌다.   그렇게 40명에 가까운 동기들이 3학년이 되기전에 한꺼번에 사라졌다.  우리들은 모두들 친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시 복학해서 놀아보자고 다짐하고 다들 뿔뿔이 군대로 흩어졌다.

1992년 봄이되자 하나둘 학교로 복귀하기 시작해서 92년 2학기가 되자 거의 대부분의 동기들이 한꺼번에 복학을 했다. 아마 30명 정도 되나보다. 여기에 89학번인 방위출신과, 90학번 6방까지 합쳐지자 메머드 복학생 군단이 되어버렸다.
나는 2학년 1학기까지 거의 심각한 수준의 학점을 받아놓고 있었다. 따라서 나도 졸업후 진로를 고려하면 뭔가 결심이 필요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과 교수님 연구실에 자원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게 92년도 여름방학때였고 복학하기 직전이었다.

내가 모셨던 교수님이 마침 우리학년 담당 교수였는데 우리는 92년 가을에 복학을 자축하는 대대적인 MT를 계획했다. 뭐 대대적인 MT라 해서 별다른건 없었다. 1박2일짜리 술파티라고나 할까.  어차피 밤새 술을 퍼마실 예정이었기에 장소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교수님도 늦게나마 오시기로 했다.  장소는 장흥이었는데 약간 외곽의 야트막한 산중턱이었다.
원래는 교수님이 오시면 술파티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초저녁이 되도록 교수님이 도착을 하지 않자 우리끼리 마시기 시작했고 밤 9시정도가 되었을때 이미 멤버의 절반이상이 초토화되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먼어둠속에서 사람형상의 물체가 보였고 신음소리가 났다. 후배들을 정찰병으로 내보냈는데 교수님이었다!
산아래에 차를 세우고 어두운 산길을 걸어올라오시다가 그만 길 아래로 구르셨단다. 그 과정에서 왼팔을 다치기까지 하셨다. MT분위기는 삽시간에 어두워진게 당연했다. 불빛아래서 보니 교수님은 거의 만신창이였다.  바지도 찢어지고 잠바는 굴러서 흙범벅이 되어있었다.  우리들은 술병을 걷어치우고 교수님을 방안으로 모셨다. 교수님은 방에 들어가자 마자 드러누워버렸다.  …

밤  10시가 넘어서 교수님이 간신히 기운을 회복하시고 앉으셨다. 얼굴을 아는 놈이라곤 나밖에 없었으므로 나를 부르셔서 애들을 모아오라고 했다. 애들을 모두 큰방으로 모았다. 나를 제외하고 정확히 38명이었다.
교수님은 술의 재고를 파악하셨다. 우리는 인근 포천에서 공수해온 포천 막걸리가 있었다. 막걸리가 모두 방안으로 들어왔다. 교수님은 애들을 모두 앉히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서른여덟명이로구나. 이제 왼쪽부터 나랑 막걸리를 한잔씩 하면서 이름을 얘기해다오. 내가 서른 여덟잔을 모두 먹은다음 처음부터 이름을 모두 외우도록 하마.  만약 한사람이라도 틀린다면 오늘밤은 내가 밤새도록 술을 사기로 하겠다”

거기서부터 우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정말 막걸리를 서른여덟잔을 비우셨고 (물론 내가 옆에서 10잔은 대신 마셨다) 막걸리를 모두 비운 후 처음부터 애들 이름을 하나하나 얼굴을 보며 외우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결정적인거 5-6명을 바로옆에서 도와드렸다. 애들은 모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눈치채지도 못했다)

마지막 서른여덟번째 이름이 불리워지자 서른여덟명이 일제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우~’

원래대로라면 거기서 끝나야 할 술판이었지만 일단 남은 막걸리를 몽땅 마셔버린 후, 교수님에게 돈을 받아서 운전면허가 있는 놈들이 산아래로 내려가 취한채로 차를 몰고 그 돈을 모두 소주로 바꿔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뭐  그 뒤로는 말 그대로 거의 들이붓는 수준으로 또 다시 그 술을 몽땅 다 마시고
또 차를 몰고 내려가 또 술을 사왔다.

후우~ 미친….

나? …아마 내가 제일먼저 오바이트 대열에 합류했을거다.  그렇게 오바이트르르 많이 해본날이 없었다.  그리고나서 취해서 쓰러져있는 교수님을 업고나와 교수님의 등을 두드려드리면서 나 역시 또 그 옆에서 오바이트 ….
정말 Crazy Night였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취한 교수님이 새벽에 다시 밖으로나와 옆방에 역시 MT를 온 여학교 학생들을 설득해 우리방으로 데리고 온거였다. 내 몸하나 가눌길 없는데 웬 여학생이란 말인가…휴~

그 MT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애들은 정말 그날 교수님이 38명의 이름을 외운다고 믿었다.  물론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는 내 도움을 받으셨지만 며칠지나지 않아 진짜로 모든 애들의 이름을 완전하게 외우셨다.

사실 오늘 내가 2년반동안 있었던 우리교수님 연구실의 역대 멤버들 회식이자 우리 88학번 송년회가 겹친날이다.  어제 종희녀석이 오늘 올거냐고 물어보길래 교수님 회식이 먼저라 2차에 합류한다고 하니까 예전의 그 MT얘기를 꺼냈다.
사실 이름도 이름이지만 막걸리 38잔을 계속해서 마신다는 것도 거의 있을수 없는 일이었기 떄문에…

글쎄…오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교수님께 88학번이 산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하면 눈을 번득이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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