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8월초 나는 그때가 대학졸업반이었다.  그러나 군대를 가지 않았거나 재수를 하지 않아 일찍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은
몇있었다,  주로 ‘야구소년’포스트에 등장한 그 동네친구 녀석들 말이다.   태식이 녀석은 94년에 증권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자기팀의 부장이 속초에 콘도대신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태식이네 부장님은 현명하게 자신의 회사 동료 몇명과 함께
휴양소로 쓸 아파트를 공동구매했던 것이다.

콘도는 자신이 회원이라 하더라도 성수기에는 경쟁률이 있고 하기
마련인데 아파트라면 1년 365일 언제라도 OK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태식이가 자기 부장님의 아파트 키를 들고 우리친구들을
현혹했고 우리는 듣자마자 바로 OK사인을 날렸다.

나와 태식이, 정규, 찬영이, 종영, 성훈이등 6명이
2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부푼희망(?)을 안고 속초로 향했다.  생각들좀 해보시라.  이때 내 나이가 만으로 25세였고 첫번째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얼마되지 않았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5명 역시 비슷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가슴떨리는 사랑은 찾아올
것 같지가 않았고 그러기도 두려웠다.  그저 해변에서 볼수 있는 늘씬한 미녀들과 휴가를 보내며 인스턴트같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었고 그것이 여행을 가는 목적이었다.

우린 도착한 첫날부터 속초해수욕장과 대명콘도의 킹나이트를 돌며 별짓을 다했지만 여자들과 같이 앉아보는 것 마저 실패했다.  뭐 거의 일주일을 놀고 갈것이기 때문에 첫날 실패했다고 그렇게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두번째날 역시 조짐이 좋지 않았고 일단 해가 지기 전까지는 임무에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파트로 돌아왔는데 문을 열고 보니?…어럽쇼…?  누군가가 또 온것 같았다.
기가막히게도 여고생 3명이었는데 얘기를 해보니 태식이네 부장님과 아파트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 부장님의 딸과 그들의 친구였다.  절묘하게 아다리가 맞아서 우리랑 일정이 겹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일단 우리 일행은 짜증이 났다.  이러면 어디 아가씨들을 꼬셔온들 같은 집안에서 어떻게 논단말인가.  물론 이번일을 주창한 태식이는 나를 비롯해 나머지 4명의 멤버들에게 줄창 욕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첫날이 지났다.

그 여고생들은 집에있을때면 방문 밖으로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 더운날 방안에만 쳐박혀서 조용히 논다는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헌팅을 나갔다가 또다시 허탕을 치고 돌아오면서 그래도 그 녀석들을 생각해서 먹을걸 좀 더 많이 사왔었다.

근데 우리가 도착하자 마루에서 잘 놀고 있던 애들이 방으로 다시 쪼르르 들어가버렸다. 그날은 주말이라 재미있는 쇼프로 등을 보고있던 모양이었나보다.  물론 방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얘들은 벙어리처럼 거의 한마디도 안했다.
방문을 두드려도 대꾸도 없었다.  우리가 지네들한테 해꼬지할것 도 아닌데 왜 그리 답답하게 구는 건지 원…

그래서 방문밖에서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들을 수 있게 외쳤다.  “너네 먹으라고 음료수하구 통닭사왔고 방문앞에 둘테니까 배고프면 먹든지 알아서 해”
우리 6명은 그리고나서 TV를 켜두고 담배들을 피우면서 카드를치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잠시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음식봉지가 사사삭 사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로부터 30분후 여고생 일행 3명중 한명이 나왔다.  “아저씨 먹을거 뭐 더 없어요?”
난 담배를 물고 그녀석을 쳐다보다가 방을 향해 외쳤다.

“너네 다 나오면 내가 맛있는 라면끓여주지”

나머지 두명이 쭈뼛거리면서 나왔고 나는 라면을 5-6개쯤 끓이고 계란까지 2-3개 넣어 식탁 중간에 아무렇게나 던져놨다.  누가 여고생 아니랄까봐 그 세명은 우리한테는 먹어보란 말도없이 그 6개의 라면을 3명이 거의 다 해치우는 괴력을 보였다. 
내가 그렇게 먹고있는 애들 등뒤에 한마디를 날렸다.

“너네 그거 몇갠줄 알아? 라면 6개랑 계란 3개야 … “
“아니에요 아저씨 거짓말 하지 마세요, 6개 아니에요”

어쨋든 그런식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녀석들을 완전 어린애취급만 했는데 그 녀석들은 그것에도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셋다 고2고 같은동네 친구인데 수험생이 되기전에 마지막으로 놀러온 거란다.
하긴 정규말대로  아닌게 아니라 해변이나 나이트에서 꼬시려구 노력한 그 많은 아가씨들보다 차라리 얘네들이 더 이쁘고 키도 더 크고 날씬했다.

지금 대화하고 있는 3명의 어린 아가씨들의 한시간전 모습은 이미 지금쯤에선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일단 낯을 가리던 모습이 사라지자 이때부터는 주객이 전도되어 갑작스레 마루에 널려있던 술과, 카드, 담배가 3명의 아가씨들에 의해 치워졌다.  그리고 우리 역시 여고생처럼 놀수 밖에 없었고 피곤하다며 자러 들어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그 아가씨들의 요구에 의해 우리는 차례대로 자신의 첫사랑 얘기를 돌아가면서 해야했고 질문에 응해야했다.  우습게도 자신의 첫사랑 얘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기자 6명의 아저씨들은 각자 회한에 젖은 눈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경험담을 열심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6명이 돌아가면서 모두 얘기를 마치자 거의 자정이 가까워올 무렵이 되었는데, 갑자기 생기발랄해진 아가씨들이 가만있지를 못하고 노래방을 가자고 우겨서 결국 야심한 시간에 속초시내를 뒤져 노래방을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아가씨들의 규칙에 의해 술과 담배는 일절금지 되었고 밖에 나가서 피우고 오는것 마저 철저하게 감시되었다. ( 사진1을 보면 테이블위엔 게토레이 밖에 없다.)

우리들이 모두 기가 막혀했던 것은 이 3명의 아가씨 전원이 거의 믿겨지지 않는 가창력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더라는 것이었다.  특히 (사진1의 왼쪽/사진2에선 오른쪽) 꼬마아가씨의 첫곡은 거의 감동과 환상의 도가니여서 곡이 끝나고나서 박수치는것 조차 잊을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3명이 모두 1,2,3번타자로 노래를 끝내자 마자 나랑 찬영이가 “너네 혹시 안양예고 가수과에 다니는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물어봤을 정도로 말이다.

이 기묘한 동거는 다음날 오후에 끝이 났다.  3명의 아가씨들은 먼저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고 고속버스 터미날까지 찬영이가 데려다 주었다.  물론 24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정이들어 버린 순수한 여고생들이 그냥 쿨하게 휑하니 떠나버린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노트에 3명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빼곡히 적고 ‘너무 기억에 남을 여행’이라고 느낌을 남겨주었다.

물론 그 후에는 연락을 다시 해본적은 없었다.  그때가 94년이었고 그들이 고2였으니 아마 대학을 정상적으로 갔더라면 96학번이 되었거나 재수를 했어도 97학번 정도였겠지.
지금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들에게 들었던 첫사랑의 경험들을 자기들도 뼈아프게 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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