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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의 한라산, 대학4학년 졸업여행 사진이다.

아마도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 읽었던 ‘대학별곡’이란 책이 문제였던 것 같다.  사실 그 책만 해도 재수시절엔가 재영이 녀석이 공부하다가 심심풀이로 읽으라고 빌려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책에서 확실하게 얻어낸 교훈은 대학에 일단 들어가면 평소에 안해보던 미친짓을 많이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학때 다닌 여행은 거의가 다 산이었다. 난 산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놀러가면 이상하게 산으로 가곤했다. 물론 새벽까지 술판에 쩔어서 못올라가고 말 때가 태반이었지만 술에 취해 올라간것도 절반이었다.

1993년 4월 한라산 성판악 코스에서 찍은 저 사진도 술취해 올라간 절반중 일부이다. 전날 여관에서 벌어진 포커판에서 노천이는 로열스트레이트 플러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털렸고 이방 저방을 오가면서 얻어마신 술에 쩔어 아침 6시에 약간 눈을 한시간쯤 붙이고 성판악으로 향했다.

그때 경험에서 나온거지만 제주도의 4월이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건 적어도 한라산자락에선 오산이었다. 저 위의 저 복장도 그 오산에서 비롯된 거였다. 한라산의 바람은 소매사이를 샅샅히 뒤지고 다녔고 추워서 떨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했다.  손이 시려울 정도여서 매점에서 목장갑을 사서 낄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젊은 몸뚱아리라고 헥헥 대면서 결국 백록담까지 보고 오후에 내려오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때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같은 학년의 후배인 하나가(이름이 하나임)  평생 태어나서 산꼭대기까지 올라본적이 없다고 자신은 버스에 남아있겠다고 해서 복학생 5-6명이 책임지고 백록담을 보게 해주겠노라며 결국 하나를 버스에서 끌어내렸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는 비교적 평탄하지만 후반부에 가면 거의 사다리를 오르는 듯한 급경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하나가 스스로 올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녀석이 몸이 약하기도 했지만 통통하기도 해서 그런 산을 날렵하게 오르리라고는 사실 기대하기 어려웠다.  정상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아직도 군대 경험이 생생한 동기녀석들이 전우를 버리고 가기란 있을수 없는 일이었기에 5-6명이 돌아가면서 하나를 업고 올라가기로 했다.

난 탈장수술 직후여서 무거운것을 들거나 업는것은 금기나 마찬가지 였기에 동기들이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정상에 오르자 급격하게 않좋아진 날씨때문에 혼자 서있기 힘들만큼 바람이 불었지만 우리는 약간의 물이 담긴 백록담의 얼어있는 모습을 구름사이에서 볼 수 있었고 그건 특별한 추억이었다. 
물론 이렇게 높은산을 처음으로 올라보는 하나 역시 감격에 마지 않았다.

이날 성판악 등산코스는 사실상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추위와 강풍이 예고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관리인이 입산을 통제했는데 술에 취한 영준이가 크게 한마디를 내뱉자 할 수 없이 관리인 아저씨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옆으로 비켜설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 한 소리는 이런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저씨가 평생 처음온 제주도 한라산의 추억을 완전히 망쳐놓을 거에요?”

그래서 그날 한라산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등반길에 사람을 거의 만나지도 못했다. 왕복 20km에 가까운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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