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rie …part 2

By | 200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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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대관식 미사곡 중 Kyrie.(K317)  곡은 다양해도 가사는  Kyrie Eleison(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이 전부이다.   입당성가를 부르면서 미사가 시작되는데 그 이후에 가장 최초로 나오는 곡이다.  따라서 항상 미사의 서두에 등장하며 Gloria(대영광송)가 곧이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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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rie : 작은 사랑이야기 Part 2

오늘이 부활절이라 그런지 성당엔 사람이 넘쳤고, 평소에는 전자오르간으로만 진행하던 성가대에도 관현악 파트까지 가세해서 정말 성대한 대미사를  치뤘다.   성당 앞마당에는 형형색색의 주일학교 애들이 그린 부활절 달걀을 팔고있었고,  정욱이 녀석과 나는 보나를 기다리기 위해 서성이다가 둘이 돈을 모아 부활절달걀 한바구니를 샀다.   바구니라 봤자 손바닥 크기만한 것이었고 솜과 종이로 장식을 해놓은 바구니 안에 달걀 다섯개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보나가 사람들 틈을 헤치고 계단을 내려오는것이 보였다.   정욱이는 일단 내가 집에 먼저가지 못하게 잡았고,(웬지 떨렸나보다) 우리는 보나를 가운데 낀채 걷다가 가장 만만한 성당앞 수퍼의 파라솔에 앉아 음료수와 부활절달걀을 깨서먹기 시작했다.    정욱이는 하늘을 맴도는 독수리처럼 직접적인 질문이 없이 뱅뱅돌려 이것 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현재 사귀는 남자친구가 결국 없음을 확인한 나는 정욱이 보다 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보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던 없던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정욱이 입장에서는 보나가 수녀가 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였는데, 그건 나 조차도 의심하고 있는 바였다. 

보통 성당 친구들 중에는 본명(=영세명=세례명)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친구들이 대개 몇명은 있다.    최비오나 김요한 같은 녀석들이 그런 케이스였다.   보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나네 집은 할머니에서부터 시작해서 부모님, 남동생에 이르기 까지 전통적인 가톨릭신자 집안이었고, 몇 명의 신부까지 배출한 가문이었다.     대개 이런 집에 가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다.    이들은 신실한 신자이지만 광신자들 처럼 들떠있지 않고, 오히려 가톨릭신자인지 불교신자인지 모를만큼 차분하고 고요하다.
그러나 집안을 들어서면 텔레비젼 위에 벽시계대신 십자가가 반드시 걸려있고 양옆엔 성요셉상과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대게 있으며,   각자의 방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프란치스꼬상 정도는 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는 묵주반지와 묵주, 미사보 등이 있는데, 보나 역시 묵주반지와 은은한 보라색알로 만든 묵주,  그리고 장미무늬가 수놓아진 흰색 미사보를 가지고 있었다. 

보나는 남들과 구별지어 지는 점이 있었다.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의 미소를 띠고 있다는 점과  화내는것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늘 여유롭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언제나 단정하고 꽤 예쁘기까지 했었으므로 역설적이게도 남자애들이 범접하지 못했다.     
보나는 어렸을때부터 말을 돌리거나 수줍어하거나 몸을 베베꼬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차분하게 얘기했고 매우 솔직했다.   그 때문에 나 역시도 보나에게 무슨 얘기를 시키거나 대화를 하면 항상 시원스럽고 후련한 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시원시원했기 때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러나 이날 수녀가 될 계획이 있는거냐고 물었을 때 보나는 최초로 머뭇거렸다.   동시에 아무 관계없는 나까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음… 글쎄 … 그건… 아직 모르겠어… 다만… 내 계획은 아직 변하지는 않았어’

보나는 어렸을 시절 성 바오로 서원에서 나온 다미안, 천국의 열쇠와 같은 책을 읽고 너무 감동해서 엉엉 울었었다.    물론 나 역시 그 두 책을 읽고 짜~~안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 후속타는 서로가 달랐다.   나는 책을 다읽고 딱지를 들고 친구들을 찾아 나갔던 반면 보나는 자신의 인생이 타인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가 될 것임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봉사를 평생의 업으로 삼는 몇몇 수녀회는 보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봉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건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게다가 집안에서도 이런 보나를 말리지 않는 분위기가 일찌감치 형성되었기 때문에 보나는 자기가 선택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수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정욱이 녀석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는 했지만,  아직도 보나가 남자친구가 없다거나 수녀가 되지 않았다는데 만족하며 그날의 탐색전을 끝내려고 했다.    나는 어차피 오랜만의 서먹함을 풀어주는 역할이었으므로 길게 있을 필요가 없어 먼저 후다닥 일어나면서 정욱이에게 귓속말로 몇마디를 잽싸게 해주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이 병신아… 어디가서 밥이나 같이 먹으라고”

그 다음부터 나는 일요일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정욱이를 만났다.   우리는 미사시간 내내 잡담을 나누었다.  정욱이가 나에게 보고하면 나는 듣고있거나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다.   
몇주가 지난뒤 정욱이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로 해야겠다고 하면서 꽃다발과 선물을 들고왔다.   지난 몇주간 내가 듣기로는 기차길에 기차가 지나가듯이 아무 문제없이 정욱이가 원하는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오히려 그 바보같은 녀석은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진행되는데 대해 불안해 하기 까지 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보나가 ‘싫다’, ‘아니오’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듣지 못했으며 데이트에서도 그녀는 모든걸 다 ‘좋아’,  ‘괜찮아’, ‘응 그래’로 일관했다고 했다.

난 그 멍텅구리한테  ‘아니오’를 최초로 들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일러주었고, 그녀석은 미사가 끝나자 허겁지겁 보나를 만나러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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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몇주일이 지났다 …
정욱이는 이날따라 정장을 입고왔다.  

“지난번에 니가 가르쳐준대로 보나한테 말했어”
“그으래? 그래서 ?”

” ‘아니 나도 널 사랑해’ 라고 하더라”

아… 이 멍텅구리 같은놈… 농담이었는데 그걸 진짜로 그렇게 고백을 했단 말이냐.
정욱이는 이런 저런 장황설을 주욱 늘어놓고나서 결국엔 ‘그래서 …난 너를 사랑해… 넌 나를 사랑하지 않는거지?’ 하고 물어보았던 거다. … 바보같은 놈 
그날 정욱이는 친구가 아니라 사위로 심판받기 위해 보나네 집에 가기로 했단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똑똑한 놈이 그날 보나네 가서 얼마나 실수를 많이 했던지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몰랐댄다.  
보나의 엄마는 어차피 어렸을 시절부터 정욱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인사를 받을 필요도 없었고 정욱이의 집안에 대해서 조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성당에서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보나네 엄마는 정욱이가 허둥대는게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었던지 정욱이가 자신의 딸을 딸라고 더듬거리는 순간 옆에있던 보나아버지를 손으로 치면서 박장대소 했다고 한다.

보나가 정욱이의 고백에 ‘아니’라고 대답한것 외에는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진행되었다.  둘은 2년후 우리 성당에서 결혼을 하였고 이날 혼배성사를 올리는 성가대엔 보나만 빠져있었다.     인간 박정욱이의 바램은 아홉살때 시작되어 스물네살 되는 해에 드디어 이루어졌고 16년만이었다.  물론 나는 그들이 앞으로 그 네배정도의 시간을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보낼 것이라 확신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나중에 알게된 얘기지만 보나 역시 처음부터 정욱이를 마음에 들어했으며,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정욱이 녀석이 거의 전교1등을 도맡아 하는 놈임에도 불구하고 소박하며 털털하고 거만하지 않은 성격인것을 보고 더더욱 좋아했다고 한다. 

보나의 고백에 의하면 (이건 정욱이도 모르는 비사랜다) 국민학교때 보나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자기반에서 전교회장후보로 추천된 홍뭐시기의 러닝메이트로 나가기로 했다가,   다른반에서 정욱이가 또다른 후보로 나오려고 하자 자기 담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욱이의 러닝메이트로 나서 결국 둘이 전교회장과 부회장이 되었다 한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때까지 지속적으로 정욱이에게 끊임없는 기회를 제공했었는데,  그걸 그 병신이 포착을 제대로 못했거나 스스로 날려먹어서 실망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단다.    평소의 보나 성격이라면 오히려 먼저 정욱이에게 접근해서 자기가 먼저 고백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바보가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서 계속 자기도 기다렸단다.   그러고 보면 보나도 정말 특이하긴 하다.  

‘수녀’얘기 역시 보나가 정욱이를 압박하기 위해 꺼내든 협박성 카드로 판명이 되었다.

이들은 결혼을 해서도 우리동네에 살았는데 그 후로도 가끔 축일때는 미사에서 보나가 부르는 청명한 Kyrie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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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5학년때 부상으로 받은 성모상. 모진풍파에서도 절대 잃지 않았다.


후기>

요즘같은 세상을 살면서 저러기란 참 쉽지 않다.   원래 오랜만에 모짜르트의 미사곡을 듣다가 갑자기 예전의 인물들이 떠올랐었다.   그래서 그자리에서 그대로 옛날 얘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생각이 나지 않는 부분도 있고해서 포기하려다가 그냥 내 상상대로 마음껏 써내려갔다.  즉,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제인물이고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 역시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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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Kyrie …part 2

  1. Mr.Park (hendrix4)

    천주인이셨군요. 전 5년 정도된 신자 입니다.
    아직 부지런하지 못해서 부끄럽습니다.
    좋은 글 너무 많이 써주셔서 답변글이라도 열심히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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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ㅎㅎ 저도 지금은 거의 나이롱 신자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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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기찬

    안타까운 결말이 예상됐었는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구나.. 좋네.. 때로는 실화보다 팩션이 더 그때의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지.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들을 한번 볼 수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모르겠네.. 혹시 이 글을 그 친구들도 봤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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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ㅎㅎ 안타까운 결말을 쓰면 아마 실명을 거론하지 못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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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야간비행

    읽다가 아는 지명이 나와서 살짝 놀랐네요. 83년부터 88년까지 망원초등학교 후문(예전 7-1번 종점 근처)쪽에 살았었습니다. 당시 부모님께서 성산성당에 다니셨고 저는 바자회 있으면 가끔씩 가서 맛난거나 사먹는 꼬맹이었군요. 뭐… 지금도 날라리 신자인건 여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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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후우 그러시다면 제 포스트중 ‘냉면’을 읽어보셔야겠네요

      http://www.demitrio.com:8088/sonarradar/entry/%EB%83%89%EB%A9%B4?category=3

      야간비행님이 그 시기에 성당바자회에서 혹시 제 어머님이 팔던 냉면을 드셨을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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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emitrio

      아 참…85년~88년내내 토-일요일에 망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테니스공으로 야구하던 애들중 하나도 접니다. 아마 그때 자세히 보셨으면 놀라셨을겁니다 ^^ 양팀 모든 타자들이 한명만 제외하고 저를 포함해 모두 왼쪽 타석에서 공을 쳤거든요 ㅎㅎㅎ
      정말 매주마다 가서 야구했죠… 게다가 전 유일한 언더핸드 투수였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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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hoi

    참 희한하네요., 동교초등학교 4회 졸업생이고 81년 3월에 졸업했으니 극중에 나오는 백보나와 같은 학년이었고 백보나라는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노래를 잘했던 기억까지는… 전교 부회장은 확실히 다른 친구가 했었습니다.. 박정욱은 기억이 안나네요., 김정욱이라고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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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오~! 그럼 저랑 잘하면 알겠는데요? 성당도 다니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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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oi

        성당은 일찍부터 냉담했습니다. 망원동에 삼십년 살았구여..
        ㅋㅋ 옆의 성산 나오셨나봐요. 실제 백보나의 이야기인가요? ㅋㅋ 글에 제 이름도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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