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rie … part 1

By | 2008-09-20

Kyrie : 작은 사랑이야기 Part 1

사용자 삽입 이미지여느때와 다름없이 나는 미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성당에 도착했고,  또한 항상 그랬듯이  3미터는 족히 되보이는 성당문을 소리없이 조용히 열고 들어가 발자국 소리마저 지운채 뒷편의 고백실앞 첫번째 기둥의 옆에 비스듬히 섰다.
내가 서있었던 위치는 국민학교때부터 거의 고정된 위치였다.  거긴 신부님의 사정거리로 부터 멀었을 뿐만 아니라,  저 멀리서 나를 작정하고 찾아 나서는 수녀님이 그대로 지나치도록 숨기좋은 기둥이 있었고 또한 누구보다도 빨리 미사가 끝나기 직전 내뺄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그냥 서있는 장소였으므로 불편할 것 같지만 오히려 나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지 않아 더 좋았다.

고백실앞 첫번째 기둥의 유용함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부터 내 또래의 친구들 역시 항상 눈여겨보던 자리였기 때문에 항상 다툼이 치열했다.   신자들이 많았을 적에는 황송하게도 기둥과 벽사이의 공간에 보조의자를 놓아주기도 해서 편히앉아 다른 장난을 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다툼이 심한 자리였지만 나이가 들고, 애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거나 이사를 가면서 점차 나만의 자리로 굳어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앉자 2층 성가대석에서 합창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오는 소프라노의 독창이 이어지자 1층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2층 성가대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 ~ 보나로구나, 여전하군’

정말 몇 년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지만 난 그게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2층의 성가대석이 궁금했지만 내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1층의 맨앞부터 중간까지 앉은 사람들만 2층을 올려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Mozart 대관식미사곡의 Kyrie(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저 정도로 부를만한 소프라노 실력을 가진이는 우리 성당에서 한명밖에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제 성숙한 여인의 것이었지만 그 주인공이 ‘백보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몇 년동안 마주 칠 일은 없었지만 친구들로부터 보나가 성악과에 진학했다는 것까지 이미 들어서 알고있는 터였다.   아! 여전히 보나는 좋은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막 보나의 솔로부분이 끝나고 남성 테너가 가세했지만 보나의 목소리는 가련한 그 테너의 소리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테너가 곡을 망친다’고 소곤소곤 
얘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어때 여전하지 ?”

나는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정욱이가 서있었다.

“놀~래라, 얌마 너 언제왔어?”
“성가대 시작할때 잽싸게 들어왔지.  보나 노래는 언제들어도 좋구나”
 
흡족한 표정으로 보이지 않는 2층을 응시하며 정욱이 녀석이 얘기했다.   그래… 이 녀석이야말로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정확하게 판독해낼 만한 자격을 나보다도 더 충분히 갖춘놈이다. 
그리고 이놈 역시 성당에 오면 항상 이자리를 찾는 놈들중 하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나와 정욱이, 보나 그리고 또한 20여명에 이르는 패거리들이 같은 성당에서 주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 학년은 주일학교 선생들과 수녀님들이 가장 골치아파하는 학급이었는데 너무 장난이 심하고 너무 사고를 잘쳤기 때문이었다.   
정식이 같은 녀석은 미사를 땡땡이치고 성당 뒷편 성모동굴로 가는길에 있는 건물로부터 길게 늘어진 쇠줄을 타잔처럼 타고 놀기를 즐겼는데 결국 쇠줄을 놓쳐 몇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양화진성당같이 건물 구조자체가 특이한 곳은 종종 술래잡기나 다방구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제공했는데, 이 때문에 일요일 오전의 성당앞마당은 늘 소란스러웠다.   나나 정욱이나 다른 애들 역시 번번히 수녀님에게 붙잡혀 성당입구에서 벌을 서곤 했었다.

우리 학년을 멋모르고 맡았던 아가다 선생은 속이 상해서 몇 번이나 우리들 앞에서 울었는지 모른다.   아가다 선생은 대학교에 갓 입학한 여대생이었는데 크리스마스 학예회에서 쓰일 소품으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곰인형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이 곰인형 역시 연습도중 서로 잡아 끌다가 결국 곰의 팔이 떨어지고 안에 채워졌던 솜뭉치 같은 것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지는 처참한 신세를 면치 못했고 아가다 선생은 원망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결국 울고 말았었다.

성당에서 기르던 개까지도 우리 학년이 더 개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우리들도 잘하는게 한가지 있었는데… 노래 였다.   우리 성당은 매년 5월 성모성월을 기념하기 위해 학급별 합창대회를 열고 우승한 학년, 학급이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성가를 부르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우승하면 기념품도 나온다.
내 기억으로는 보나가 동교국민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성당에 새로 나오게 되었는데 그 해부터 갑자기 합창대회의 강호로 부각되기 시작한것 같다.  그때가 3학년이었는데 그해에 우리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나마 아가다 선생이 우리를 근근히 견뎌내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합창실력 때문이었는데,  언제나 개판 5분전의 상태로 노래연습을 시작했고 악에 받친 모습으로 지휘를 시작했던 아가다선생의 표정은 첫곡을 마치면 언제나 놀라움에 찬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아가다 선생이었기에 처음으로 준우승을 했음에도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4학년이 우승한 것에 더 분개하는 표정이었다.   알고보니 4학년 담임을 맡은 데레사 선생과 눈에 안보이게 라이벌이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우승은 4학년이 했고 그들은 3학년이던 시절에도 우승을했었다.   아가다 선생은 우리때문에 맘을 많이 상하곤 했지만 사실 우리는 아가다선생 자체가 우리의 자부심이었다.    20여명의 주일학교 선생들중 가장 예쁘고 가장 마음씨가 고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가다 선생 특유의 순백색 블라우스나 셔츠가 아주 잘울렸는데 어찌나 흰옷을 자주입고 다니고, 또한 잘 어울렸는지 주일학교 남자선생들은 아가다 선생이 지나가면 그대로 넋을 잃고 말았었다.     그러나 아가다 선생은 주일학교 선생질을 그만 둘때까지 적어도 성당에서는 절대 남자선생들에게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고 우린 그게 좋았다.   그래서 아가다 선생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반 남자애들끼리 모여서 가끔 말을 잘 들어주자고 결의대회까지 했을 정도였다.
어차피 주일학교 교사라는게 자기가 싫으면 그 즉시 때려치울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데레사 선생 역시 아가다 선생 못지 않았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법, 우리는 데레사 선생이 못생긴 주제에 우리 선생을 뛰어넘어보려 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 뒤로는 항상 적개심을 가지고 데레사 선생을 대했다.    모르긴 해도 1년내내 아가다 선생은 데레사 선생에게 ‘그 반은 노래를 못부른다’는 문제로 비아냥을 들은 모양이었다.   결국 복수의 순간은 우리가 4학년이 되던 5월에 찾아왔고 우리는 맹연습에 돌입했다.

하루는 합창연습 쉬는시간에 정욱이 녀석이 그림자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넋을 놓고 있길래 뒤통수를 한대 후려갈겼다.

“야 너 왜그래 ? 뭘 보고 있는거야?”

그 녀석은 내가 후려갈긴거에 대한 보복도 할 생각을 안하고 손가락을 저만치에 들이댔다.  그걸 따라가보니 아가다 선생과 얘기하면서 웃고있는 보나의 모습이 들어왔다. 

“용석아, 보나 쟤 이쁘지 그치 ?”
“어…글쎄 … 난 아가다 선생님이 …더 “

그 둘의 모습을 보니 정말 닮은 꼴이었다. 생각해보니 보나 역시 엄청 흰색옷을 좋아하는 흰색옷 원리주의자였던 것 같다.    누가 보면 둘이 친자매라도 되는것 같이 말이다.   그날 정욱이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사실 보나가 전학을 와서 우리 성당으로 교적을 옮기고 우리 주일학교 교실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보나를 짝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게 작년일이었으니 1년동안 혼자 그래왔던 것이었다.   그 해가 1978년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국민학교 4학년이면 애들로서는 거의 최전성기의 목소리를 가지게된다.  남자애나 여자애 할거 없이 성별을 구분하지 못할만큼 이쁜 목소리 말이다.   아가다 선생의 기대대로 누가 듣기에도 압도적인 하모니와 목소리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우리학년이 데레사 선생이 이끄는 라이벌 5학년을 꺾고 우승을 했다.  
1979년이 되어서도 정욱이는 여전히 보나를 짝사랑했고 우리는 또다시 우승을 해서 작은 성모상을 부상으로 하나씩 받게되었고 그 성모상은 아직도 우리집 TV위에 놓여있다.   5학년이 되어 출전한 합창대회는 아가다 선생이 보나의 목소리를 합창에 묻히도록 놔두는 것을 너무 아깝게 여겨 여성 솔로파트가 있을만한 곡으로 선정을 하였고 보나는 그때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79년 우승할 당시의 우리학년은 지난해보다 더욱 압도적이었고 보나의 솔로부분은 경이적이기 까지 해서 노래를 같이 부르는 우리들도 번번히 그 천상의 목소리에 빠질 지경이었고 지휘를 하는 울보 아가다 선생은 보나의 솔로파트가 나올때마다 숨이 막혀 돌아가실뻔 하다가 눈물을 약간 보이고 계속 지휘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곤 했다.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멤버변동이 거의없이 6학년에까지 이르자 우리들은 정작 일주일에 6일을 학교에서 보내는 친구들보다 더 친해지게 되었다.   정욱이 녀석은 보나와 같은 국민학교였으므로 1년 365일을 내내 보나 얼굴을 보면서 지냈지만 일요일 어린이 미사를 거르는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점이 정욱이의 발목을 잡았다.  이녀석은 국민학교 졸업이 가까워 질 때 까지도 보나에게 좋아한다는 말한번 못했는데 평소에는 얼마든지 친하게 어울릴수도 있고 둘이서만 집으로 걸어간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코흘리개시절부터 지금까지 모두들 친형제들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새삼스레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다는 것도 웃긴일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네, 사랑하네 하는 말만 제외하고는 이미 가깝게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이 녀석은 중학교의 사춘기와 고등학교시절을 관통하면서도 여전히 보나를 좋아했고, 그때까지도 이미 국민학교 6학년때 고민했던 딜레마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보나네 집에 전화를 하면 보나엄마는 친절하게도 머리를 묶고 있는 딸을 재촉하며 정욱이의 전화를 빨리 받을것을 종용했으며, 성당에서 돌아가는 길에 옆길로 새서 떡뽁이를 먹으러가자는 제안을 보나는 언제나 혼쾌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녀석이 조급해 하는 것은 보나가 같은 학급의 다른 녀석들이 제안을 해도 역시 혼쾌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었고,  이제는 보나가 자기 자신을 차별화해서 받아주기를 바랬던 것이었다.    보나는 언제나 여성스러운 옷차림에 단정했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자신의 의사는 자신감있고 또박또박하게 얘기를 하곤 해서 오히려 어른들이 더더욱 좋아했다.
주저하지 않고 시원스럽게 결정을 내리고 방긋웃는게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정욱이가 내심 초조했던지 아주 조악한 부탁을 내게 해왔었는데, 나는 단박에 이를 거절했지만 결국 그 녀석의 집요한 부탁을 어쩔수 없이 들어 주어야만 했었다.   그 녀석의 조악한 부탁이란 내가 보나한테 가서 집에가는 길에 성산시장에 들러 둘이 같이 떡뽁이를 사먹자고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멍텅구리같은 짓이란 말인가 ?  보나가 자기한테만 친절한 건지 나나 다른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레벨로 대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벼룩마큼 속좁은 부탁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나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으며 좋다고 시원스럽게 대답했고 그걸 숨어서 지켜보던 정욱이는 좌절했다.   하긴 보나가 그렇게 똑바로 나를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자 나 역시 순간적으로나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결국 떡뽁이는 보나와 같이 먹었지만 정욱이의 좌절한 표정과 나 역시 내가 좋아하던 유겸이에 대한 죄책감까지 겹쳐 떡뽁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다만 보나가 먹는 모습은 감탄스러웠다.  먹는것 하나도 그렇게 단정하고 정갈하며 이쁘게 먹는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1986년까지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같은 동네에서 살며 그런식으로 친하게 지낼뿐이었다.   그건 역시 다른녀석들 하고도 그랬다.  우리 주일학교의 20여명은 대학교때 까지 뿐만 아니라 천년만년 그렇게 지낼줄 기대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일단 5학년을 끝으로 아가다 선생은 취업준비를 위해 주일학교 선생을 관두었다.    6학년때 합창대회 3연패를 노리던 우리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으며, 점차 신자수가 늘어나자  서교동과 망원동에 성당을 하나씩 더 만들기로 교구에서 결정,  설상가상으로 양화진 성당은 기념성당으로만 남기로 결정을 해서 모든 교적을 새로 생기는 성당 양쪽으로 나누어 옮겨가기로 하였다.

중학교때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으며 주일학교에는 새로운 멤버들이 대거 들어왔고 나 역시 더이상 주일학교에는 흥미가 없어져서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었던 것은 같은 망원동에 살던 정욱, 나, 보나 등 몇몇 핵심멤버들은 일요일 미사때 가끔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고3이었던 86년, 오랜만에 정욱이와 성당에서 조우를 했는데 그때도 오늘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정욱이 녀석은 그날도 성가대신 보나 타령을 불렀고 보나는 여전히 성가대석에 앉아 있었다.   국민학교때는 정욱이와 내가 보나보다 오히려 키가 작았었는데 이제는 내가 거의 180cm에 육박하고 있었고 정욱이는 185cm를 넘긴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키가 작아서 그때 더 주눅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더 이상 못참겠어서 오늘이라도 고백하겠다’는 녀석을 10년만에 처음으로 뜯어말렸다.  우리는 고3이 아니던가… 게다가 정욱이 그녀석은 우리학교에서도 내로라 하는 두뇌여서 걔네반 담임도 은근 서울법대를 기대하고 있었다.   서울법대 카드를 꺼내며 말리자 그 녀석이 짜증을 내면서 한마디를 뱉은 후 먼저 성당을 나가버렸다.  

“그래,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보나도 더 좋아하겠지?”

주변에서 알마나 성화가 거셌는지 보나는 고등학교때 진학문제에 대한 고민을 할세가 없었다.   당연히 음대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변 어른들의 주장에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합창단 지휘를 맡은 음대교수 양반까지 거드는 형국이 되자, 보나는 가족회의를 거쳐 성악과로 진로를 정하고 일찌감치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고3이었던 86년도에도 다른 언니오빠들 틈에 끼어 성인성가대에 앉을 수 있었다.  또한 놀랍게도 이날의 Kyrie의 독창부분도 보나가 불렀다.   이젠 예전에 알던 그 보나가 아니었다.   이미 예전에 우리를 가르쳤던 아가다 선생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86년에 치뤄진  학력고사에서 성당에 나가기 쪽팔린 점수를 받아들고 난 후, 나는 재수끝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다시금 성당에 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서 정욱이를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할 얘기가 많기도 했지만 이미 대학교 2학년이 된 보나의 눈부신 목소리에 얘기가 끊겨 우리는 미사가 끝나고 성당근처의 슈퍼마켓앞에 있는 파라솔에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이미 그녀석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해서 더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보나같은 여자애를 주위에서 가만 놔두고 보는 남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정욱이 이놈, 의외로 냉정했다.

“얌마 ~ 그럼 어쩌겠다는 거야, 남이 채가도록 놔둘거야? 아님 너 다른 여자가 생긴건가?”
“아니야, 나 군대부터 다녀올래. 사실  그때문에  휴학했어.  그리고나서도 늦지않을거야”
  
그  말을 한 뒤로부터 삼십하고도 몇 개월이 흘렀고 오늘 정욱이 녀석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오늘은 1991년 봄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1977년부터 이 녀석이 작정해왔던 바로 그날이었다.    보나는 아직도 대학교  4학년이었다. 
미사중에 정욱이 녀석이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고 속삭였다.   

‘후우~ 15년만의 고백이라니…유례가 없는 일인걸…’

퇴장성가가 시작되기 전에 도망치는걸 예의로 여겼던 우리들은 아직도 성당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1층  중간까지 가서 성가를 부르고있는 2층의 보나 눈앞에서 손까지 흔들면서 말이다.  서서 성가를 부르던 앞줄의 보나가 우리들을 금새 알아봤다.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보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예전의 아가다 선생보다 더 예뻐진것을 알수 있었다.

To Be Continue…..

P.S –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삽화는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돈 까밀로’ 책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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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Kyrie … part 1

  1. 이기찬

    픽션인거 같기도 하고 실화인거 같기도 하고 그러네.. 암튼 결론은 팩션으로 추정함. 어찌됐건 재미난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다음편 빨랑 올려라..^^ 오늘 맨유첼시전 관련글도 기대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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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팩션이 정확히 맞음 ~ ^^ 축구관련한 것도 곧 올리겠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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