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

By | 2008-08-05

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

사용자 삽입 이미지최근 수개월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서 아마 다섯번 이상 보고회를 가진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의 규모가 클 수록 보고 단계는 복잡해지기 마련이고 각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거기서 나온 의견들을 다시 반영하여 다음단계 보고시 반영하곤 한다.
그 다섯번 정도의 보고회중 빔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청중들에게 발표할 기회는 단 한번 뿐이었다.  나머지 네번 정도는 모두 5~7명 정도의 규모로, 실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임원의 방에 모여서 보고서를 나누어 주고 브리핑 형식으로 진행한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방식을 ‘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으로 부르기로 하겠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라.  사실 회사의 일상생활에서는 이러한 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작성한 보고서를 팀장과 나란히 앉아서 리뷰하거나 다른팀의 담당자 소수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때가 더 많다.

프로젝터를 이용해 프리젠테이션을 할때는 주도권이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리모콘이나 마우스는 내가 들고 있기 때문에 화면을 다음으로 넘길 수 있는 권리도 나에게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 방식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4페이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벌써 5페이지나 6페이지를 펼쳐 놓고있기 때문에 항상 그들과 주도권 다툼을 벌여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이나 장소는 항상 유동적이다.  그리고 즉흥적이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원래 오후 4시에 약속이 잡혀있었던 임원이 앞선 회의가 늦게 끝나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시간에서 30분으로 즉석에서 줄어들어 버렸다. 원래 발표를 30여분간 하고 30분은 질문과 대답으로 할애하려고 생각했었는데 발표자체를 15분만에 끝내야 했다. 
예전에는 이런일도 있었다.  비슷한 이유로 경영진이 시간을 못맞추게 되었고 5분내로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것도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가면서 승용차가 준비될때까지의 기다리는 시간에 서서말이다.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것이다.  
정리해보면 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은 다음 두가지측면에서 디지탈 프리젠테이션과 다르다.

  • 진행의 주도권을 쥐기가 힘들다는 것
  • 발표시간과 장소가 항상 유동적이라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요약해서 발표할 수 있는 능력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에 대비한 핵심역량은 ‘요약능력’이다.  전체 내용을 5분, 15분, 30분 정도로 발표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쉽게 말해버렸지만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은 쉽게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요약을 제대로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이다.  보통 경영진을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두서없이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110년전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끌었던 동학운동이 제폭구민, 보국안민으로 대표되는 두가지의 대의명분이 아니라 30가지쯤 되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에 동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보고서도 2-3개로 요약할 수 있는 대의명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이는 추후 연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

경영진이든 누구든 보고회를 통해서는 그 2-3개의 대의명분만 머리속에 넣어가면 되는것이고 이 2-3개의 명분이 논리적으로 뒷받침 되기만 한다면 거의 성공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최근의 프로젝트에서 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에 대비해 보고서를 크게 3가지로 나누었다.    아래 그림1>에 보이는 58페이지 분량의 보고서가 그 첫번째이다.   약 50~90분정도 발표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 보고서는 주로 관련팀의 담당자급 레벨에서 통용되는 내용들로서 적지 않은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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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58페이지 Full-Version, 90분 발표분량

그림2>가 12페이지 분량의 1차 요약 보고서로 다섯번의 보고회중 세번을 이것을 이용해서 했고 그림1>의  Full-Version은 만일을 대비하여 몇부만 Back-Up으로 나누어주고 시작했다. 

1차 요약보고서는 Full-Version의 Key-Slide 몇개를 약간 재가공하여 전반적으로 폰트를 키우고 글자를 줄인 것이다.    사라진 글자는 말로 대신해야 한다.   요약보고서 내에는 핵심적인 내용들이 모두 들어있지만 부연설명 없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점 때문에 보통 참석자들이 주목하게 된다.  물론 Full-Version을 같이 나누어 주었지만 빨리 내용을 찾아 읽기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발표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1차 요약보고서는 보통 15~20분 이내에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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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12페이지 1차요약본, 20~30분발표

만약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하거나 시간이 얼마 배당되지 않은 경우엔 2차 요약본으로 갈 수 밖에 없다.  1차 요약본의 1/3정도 분량이며 글자수는 더욱 적다.  아마 10분이내로 발표와 Q&A를 모두 끝낼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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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4페이지 2차요약본, 10분이내 발표

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은 서로의 표정을 보고 대화하는게 아니라 서로 책상을 내려다 보면서 진행한다.   그리고 참석자들은 제각각 설명하고 있는 페이지를 떠나 다른 페이지들을 읽을수도 있고 자료는 보지 않은채 설명하는 사람만 보고있을 수도 있다. 
다시말하면 프로젝터를 사용한 프리젠테이션보다 더 산만하고 집중력을 잃기가 쉽다.  그림1>과 같이 많은 글자와 페이지수를 가진 보고서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그래서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풀버전은 따로 나누어주고 여러분은 간략한 요약본을 가지고 전체의 구조를 설명하는 편이 집중력있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유리하다.   물론 중간에 상세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풀버전의 관련자료를 짚어가며 상세하게 설명하면 된다.

최고경영진으로 올라갈 수록 보고받는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이 줄어든다.  그들은 수많은 팀으로부터 보고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내용중 한두가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고 딱 그 부분만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주의사항 : 프린트에 대한 고려

어쨋든 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은 보고서를 프린트해서 나누어 준다음 진행하게 될 공산이 크다.  또한 대부분의 업무용 프린터는 흑백의 레이저프린터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보고서의 작성 역시 항상 프린트를 염두하고 작성되어야 한다.   잦은 실수를 범하게 되는 부분은 컬러로 무엇인가를 구분하려는 경우이다.
가령 그림4>의 챠트가 그렇다.  화면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흑백으로 출력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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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컬러로 작성된 챠트

프린터의 성능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그림4>을 출력하면 그림5>와 같이 나오게 된다. (이를 화면상으로 확인하려면 ‘인쇄 미리보기’기능을 이용하라)  미세하게 차이가 나긴 하지만 대번에 이들을 식별해 내기란 힘들고 특히 꺽은선 그래프는 구분이 거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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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흑백으로 출력했을 때의 모습

따라서 작성당시부터 명확하게 명도차이가 나는 컬러를 사용하거나 패턴으로 채워넣기를 하는 것이 좋다.  꺽은선 그래프라면 그림6>과 같이 표시를 해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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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명도차이,패턴,표시로 구분하기

그림6>을 다시 프린트해보니 그림7>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확실히 그림5>에 비해 가독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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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7> 개선된 프린트물

위에서 예로 든 챠트를 그리는 경우 외에도 상황에 따라 도형이나 표, 등에서 의외로 고려할 곳이 많다.  작성중 프린트가 걱정될 때는 실제로 프린트를 해보거나 미리보기 기능을 이용하여 보고서를 보정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치면서

사실 위에서는 세가지 버전과 분량의 보고서를 소개했는데 사실 두가지 정도의 버전이 더 있다.   30장짜리와 한장짜리 보고서까지 말이다.   다들 오늘의 글을 읽고나면 너무 일이 많아지는 것 아니냐고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제대로 된 골격을 가진 보고서라면 여러가지 버전을 추가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한장짜리 보고서를 만들어보고 여기에 계속 살을 붙여가면서 완성본을 만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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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아날로그 프리젠테이션

    1. demitrio

      아니~ 아직도 갈길이 멀고도 험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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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아아빠

    좋은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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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감사합니다 … 사실 제 스스로는 이번 포스트를 써놓고 보니 할말을 조리있게 정리하지 못한것 같아서 좀 불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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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등생 은연화

    좋은내용이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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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수민아범

    언제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안랩에서 알게되어 포스팅까지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희 모든 부서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상황까지 되었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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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laying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우선 내용을 알차게 만들고, 흑백효과등을 고려해서 요약본을 준비해야 하는군요!!

    저는 우선 말하려는 바의 흐름을 알차게 만드는 것부터 도전해보겠습니다!(그 다음 생각의 흐름에 각기 다른 포인트를 주면서 요약하는 걸 도전해야 하겠지요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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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네 ^^ 요약이 잘되려면 결론이 간단해야합니다. 전체 얘기의 구조가 단순해야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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