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칼의 노래

By | 2004-04-21

칼의 노래  – 김 훈
간결하면서도 진중한 문구

2004.4.22 Yes24에 제가 올렸던 책리뷰 입니다.  계속 여러군데 흩어진 저의 Life Log들을 블로그로 모으는 중입니다.    지금와서 보니 ‘칼의 노래’리뷰가 추천을 8개나 받았었네요 ^^

2005. 5. 23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이순신에 대한 부분은 적어도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과 더불어 신성한 영역중의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주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작가에게는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지금껏 충무공 이순신을 다룬 책들이 하나같이
찬양일색이고 성자의 모습으로 그려낸 것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런 책들은 하나같이 싸움에서는 엄청나게 용맹하고 나라에는 충성하며 가족들에게도
엄하지만 자상한 것으로 도배질을 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김훈의 ”칼의 노래”가 더욱 이색적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굳이 충무공을 소재로 한것도 대담했지만 그의 주관을 어느정도 집어 넣어 소설화 한것이 특이했고 게다가 한술 더떠서 작가가 이순신 자신이
되어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기술해나간것이 놀라웠습니다. 소설의 시작점이 다른 책이 늘 그렇듯, 이순신의 어린시절과 무과급제 등의 출세이전부터
다루는 것에 반해 정유년의 백의종군부터 시작한다는 점도 특이했습니다.

물론 백의종군 이전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가끔 예전을 회상하는
것으로 다루기는 하였습니다만 그 유명한 옥포, 한산도 대첩 등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지나쳐
7년전쟁(임진왜란)의 허리에서 부터 소설을 시작한다는 것이 작가로서는 유혹의 뿌리침(?)이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책은 정말 특이함의 집합체입니다. 저는 김훈의 문체를 접하고는 또 한번 어색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깐 본문을
인용하자면…

”죽을 때, 적들은 다들 각자 죽었을
것이다. 적선이 깨어지고 불타서 기울 때 물로 뛰어든 적병들이 모두 적의 깃발 아래에서 익명의 죽음을 죽었다 하더라도, 죽어서 물위에 뜬 그들의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 적어도, 널빤지에 매달려서 덤벼들다가 내 부하들의 창검과 화살을 받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
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1권 133페이지


그의 문체는 사실 복잡한 상황설명과 미사여구를
동원하지도 않으면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이루어져있지만 각 문장의 구조는 심오하여 몇번씩 되뇌이지 않으면 언뜻 이해하기 어렵고,
사물을 자세히 있는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그 사물에 대한 느낌을 한두개의 단어로 대체해 버리곤 하기때문에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에서와 같은 미려한 문체하고는 또한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그러한 약간 건조하고 단순한 문체 자체가 이순신
1인칭 소설에서 주인공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여집니다. 위의 예문에서 보시다시피 이순신의 느낌과 생각은 시종일관 담담합니다.
그렇게 그 스스로는 절제하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지만 그의 감정이입물인 ”칼”은 그의 감정에 따라 울고 흐느끼기를 반복한다고 하여 그의
북받치는 감정을 대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김훈이라는 작가는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주요 이정표에
시간을 들이길 거부하는 대신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순신의 감정변화에 더욱 집중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무과급제,삼도수군통제사발령, 한산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그의 죽음 등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자세하게 다루리라고
생각하던 독자들은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 대신 독자들은 선조대왕과 조정의 신하들, 왜군, 명나라군사들, 이순신의 부하들에 대한 이순신의 생각과
그들 모두가 등장하여 복잡하게 벌어지는 내면의 끊임없는 투쟁에 내던져 집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설명드린 그런부분들로 인하여 이책을
높게 평가하고 싶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본문자체는 그리 길지 않지만 수십페이지에 걸쳐있는(본문과 비교하자면 비중이 꽤 높음) 부록을
찬찬히 읽는 재미 또한 본문을 읽는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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