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이냐 영상미냐…아니면 드라마인가

By | 2003-02-05

이 영화가 중국에서 발표될 당시만해도 나는 조금은 흥분을 하고 있었고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서 어쩔수 없이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상처받을 것을 염려한 나머지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리속에는 다른 영화들에 대한 잔상이 계속 스쳐지나가고 있었는데 ‘와호장룡’과 ‘동사서독’, ‘철마류’ 같은 영화들이 그것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는 난 별로 할말이 없었고 또한 이 영화에 대해 쉽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럴것이 장이모의 이번 작품은 본래 그의 스타일과도 좀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여러 성공작들을 벤치마킹 한 흔적도 역력했으며, 작위적인 냄새도 흠씬 풍기면서도 장면 하나하나는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여 쉽사리 뭐라 언급하기가 겁이 났을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협영화의 열렬한 팬일뿐만 아니라 코미디와 극영화, 전쟁영화, 블록버스터 등 장르를 거의 가리지 않는 잡식성 영화팬이다. 무협영화 팬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범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앞부분에서 이연걸과 견자단의 대결 장면이 없었더라면 더욱 더 서운할뻔 했었다. 그런면에서는 ‘동사서독’역시 그 휘황찬란한 제목에 비해 무협활극으로서의 내공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주요등장인물간의 대결과 갈등으로 압축되는 무협영화의 특성으로 미루어 본다면 영웅은 시종일관 칼을 휘두르면서도 무협영화의 주류에 끼지 못할 것이다.

무협영화로서는 기대치 않았다가 보고나서 탄성을 자아내었던 ‘철마류’보다 못하며 장이모 감독이 의식해마지 않았던 ‘와호장룡’의 내공보다도 떨어진다.

색깔로 구성한 영화의 표현방법은 감탄할만 했다. 붉은색으로 상징되는 이연걸의 거짓말과 진시황의 추리로 나타나는 푸른색에 진실로 드러나는 백색의 대비는 그야말로 탄복할만 했다. 게다가 활이라는 무기가 얼마나 무서운것인가는 ‘글라디에이터’의 초반부에서 보여준 장대한 스케일을 능가하는 것이어서 수천명의 궁수가 장궁을 발사하여 목표지점으로 쇄도해 들어가는 화살의 비를 보면서 그야말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었다.

그러나 그런 장면은 단편적으로 탄성을 자아낼뿐 정작 이영화는 대의명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주인공이 꼭 그럴수 밖에 없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 관객들도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만들수 있는 그러한 대의명분이 부족하다. 뭐 장이모 감독도 그런 고민을 충분히 했을거라고 생각되지만 시간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전작들과 다르게 흥행성위주로 볼거리를 제공하자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주인공들간의 거래와 그 거래의 댓가와 그들의 죽음등에 대한 명분은 솔직히 납득하기 힘들다. 영화전체의 대의명분이 흔들리다 보니 각 등장인물의 연기도 흐트러질수 밖에 없었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사랑도 그 깊이와 설득력이 부족하며 장쯔이가 양조위를 사랑하는 것도 그랬고 견자단이 이연걸에게 져주었다는 설정도 어설펐으며 이연걸의 10보필살검법도 무협팬으로서 너무 황당하고, ‘천하’라는 두 글자때문에 대의를 포기한다는 것도 그렇고…온통 헛점 투성이다.

장이모 감독은 ‘색깔론’과 ‘포장술’로 모든 난관을 돌파하려 한것 같고 나 역시 반쯤은 그에 넘어갔다. ‘영웅’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비단 ‘와호장룡’을 의식하지 않고서라도 장이모 감독의 다채로운 수상경력을 통해 알수 있다. 와호장룡이 그랬던것 처럼 그도 동양의 신비로움을 어필하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와호장룡의 영화음악을 맡았던 탄둔을 데려왔던 것과 크리스토퍼 도일을 카메라로 중용한 점, 정소동을 무술감독으로 데려온 점, 화려한 출연진 등은 다분히 흥행성을 염두해둔 포석이니 이 영화를 두고 처음부터 작품성을 따지기 보다는 오락적 내공의 수위를 따지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써내려온것을 천천히 읽고나니 칭찬보다는 비판일색이어서 스스로도 좀 당황스럽긴 하다. 이 글을 읽으시고 이 영화를 보지 않게 되는 분들이 생길까 두렵다. 처음에 밝혔듯이 나는 영웅이 좀더 무협영화틱 했으면 하고 바란것 뿐, 취향에 따라서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하시는 분들도 많다. 취향이란것이 그런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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