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나는 물류센터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나에게 물류센터 업무가 떨어졌고 나는 굳이 마다하지 않고 물류센터로 가서 근무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도 내 분야는 IT였다.   원래는 물류센터 이전을 준비하기 위해 가게 된 것인데 이전후에도 한동안 눌러앉게 되었다.   아마 1년 이상을 거기에서 보낸것 같다.
우리는 홈쇼핑 물류센터였으므로 그때그때 상품이 들어오고 나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나야 내가 물류센터를 위해 맡은 IT분야의 업무가 있었지만 가끔 업무가 없을때 작업라인에 내려가서 포장과 허드렛일을 돕곤 했다.  일정한 시일이 지나자 센터내의 알바생과 작업조장들은 나를 같은 동료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고된 일을 계속 해야하다보니 식사외에도 간식을 먹어야 힘을 내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언제나 오후 4시에 간식을 먹었고 언젠가부터 알바생들이 자기것을 아끼면서 내몫을 남겨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철파이프도 먹어치울 수 있을만큼 먹성이 좋았기에 유혹을 견디며 나에게 먹을것을 남겨놓는 다는 일이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나는 그 간식들을 감사히 여기며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언젠가부터는 간식을 담당하던 재숙이가 내몫까지 식수인원에 넣어서 한사람몫을 더 주문하기 시작했고 알바생들은 나를 위해 자신들의 떡볶이와 김밥을 십시일반으로 남길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몇개월이 흐르자 배꼽이 곧 시계라고 언제나 4시 언저리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왔고 그 정확함은 시계도 필요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그 시절부터 오후 4시는 나에게 항상 배고픔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물류센터를 떠나서도 그랬고 다른회사로 옮겨서도 그랬다.   혹시 나와 같이 근무를 했던 사람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오후 4시에 내가 어떠했는지를 떠올려보라. 

작년에 사무실을 분당으로 옮기고 나서는 오후 4시에 회사를 빠져나가는 것이 한층 수월해졌다.  일단 경영층이나 관리팀을 비롯한 고리타분한 팀들이 모두 본사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눈치볼일이 더 없어진 탓이다.     거기다가 새로 들어온 막내가 군것질을 거의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나는 범행을 함께할 매일매일의 동료까지 추가로 얻은 셈이었다.    팀장이라는 작자가 혼자 사무실을 빠져나가 포장마차안에서 궁상맞게 숨어서 떡복이 국물을 하얀 셔츠에 흘려가며 허겁지겁 먹을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무실 입구에서 거의 백여걸음 떨어진 곳에 그런대로 괜찮은 떡복이, 순대, 튀김, 오뎅, 김밥을 파는 포장마차(사실은 트럭)가 있어서 선택은 늘 어렵지 않았다.

특별히 바쁘지 않는한 거의 매일 나는 파블로브의 개처럼 오후 4시만 되면 사무실밖을 나섰고 거의 자동적으로 막내가 웃으면서 따라나왔다.  그리고 우리팀의 나머지 인원들도 별일이 없으면 대부분 따라나와서 오후의 성찬을 잡담과 함께 즐겼다.

그런데 지난주는  좀 달랐다.   일단 막내가 프로젝트를 위해 본사로 몇개월간 옮겨가게 되었고 다른 멤버들 역시 모두 각각의 프로젝트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 역시 거의 분당사무실에 들어오지 못한채 밖으로 돌면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다녔다.
주말이 지나고 오늘 월요일이 되어서야 나는 다시 포장마차로 갈 찬스를 잡게될 참이었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설관리 아저씨로부터 잔잔한 충격을 주는 얘기를 들었다.
엘리베이터밖으로 병원건물이 보이자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얘기를 꺼냈다.

‘얘기 들으셨어요?  지난주 목요일인가에… 요 앞 떡복이 포장마차 주인 아저씨가 신나를 뒤집어쓰고 분신을 했다지 뭐에요 ?’

엥? 아니 그게 무슨말?  
포장마차 아저씨가 갑자기 웬 분신을하나 ?  그게 말이 되나? 얼마전까지 장사만 잘하고 있었던 아저씨가…
어쨋든 오늘 오후4시는 혼자 어디갈 마음도 없고 해서 대신 담배를 피워물었다.  궁금증은 야근을 위해 밥을 먹으러 혼자 걸어가다가 풀렸다.  포장마차는 장사를 안하고 대신 트럭옆면에 플랭카드가 붙어있었다. 

내용인즉 분당구청과 포장마차앞 건물주가 떡복이 영업을 못하게 하자 아저씨가 분신을 한 것이었다.   후우~~
그들은 거리의 미화를 위해 그렇게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생계가 막연해진 아저씨 내외를 벼랑끌으로 몰고 갔던거였다.   아…내가 비록 그 아저씨 자신은 아닐지라도 그 막판에 몰린 심정은 이해가 간다. 전혀 빠져나오지 못할 구석으로 몰리게되면 사람은 누구나 극단적으로 변하는 법이다.  그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똑같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설정해 놓은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있고 그게 무너지면 정말 공황상태가 되고 마는것 같다.  그 아저씨에게는 이자리에서 장사를 못하게 되는것이 바로 마지노선이었나 보다.    쓸쓸히 식당 한구석에서 밥을 먹고 다시 그자리를 지나는데  주위 사람들이 플랭카드의 문구들을 읽으며 혀를 차고있었다.

오늘의 사건을 듣고 보면서 선과 악을, 잘한사람과 못한사람의 기준을 떠올리며 누군가를 비판하며 열변을 토할 생각보다는 과연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진 마지노선은 대개 어떤정도일까가 궁금해졌다.   참으로 냉담하게도 말이다 …
적어도 오늘의 사건이 내 기준에 있어서는 마지노선에 못미쳤다는 판단 때문일까 ?
이렇게 묘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오랜만인것 같고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 규명해내지 못하는 것도 단순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나에게는 오랜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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