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2008년 승진자 발표가 난다고 귀띔을 받았습니다. 저는 승진자 명단에 끼어있었죠. 그런데 그냥 그렇게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승진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나 탈락한 사람도 있기 마련일텐데 이런식으로 희비가 갈리는 것이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미리 결과를 통보받은 며칠전부터 계속 기분이 우중충했습니다.
오대산은 이번이 20년만이었습니다. 88년 대학에 입학했을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오대산에 온 이후 처음이었죠. 그땐 아마 2월 말경이었을 겁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린후였죠.
전날까지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 오전 7시에 숙소를 출발해 아마 8시이전에 상원사 앞마당에서 비로봉을 향해 출발했을 겁니다. 전날까지 눈이 너무 내려서 등산로가 어딘지 조차 파악할 수 없을 지경임에도 불구, 우리는 등산장비 하나없이 맨몸으로 비로봉까지 술에 취한채 정신없이 올라갔었습니다.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같은조의 기선이형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고 정장을 입고왔었는데 그런 복장을 하고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점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구두가 너무 미끄러워 몇번씩 넘어지기를 반복하자 아예 구두를 벗고 맨발로 산을 끝까지 내려왔다는 믿기지 않는 전설같은 행위를 제가 바로뒤에서 쫓아오면서 그대로 목도했다는 것이었죠. (눈밭을 맨발로 내려온다는 것은 제가 직접보았지만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산에서 내려왔을때는 온몸이 젖어있었습니다. 눈밭을 거의 굴러내려오다시피하여 속옷까지 완전히 젖어있었고 버스에 타자 김이 무럭무럭 났죠. 숙소에 들르지 않고 우리는 그렇게 젖은채 서울까지 달려와서 집에 갔답니다. 우습게도 서울에 도착할때쯤 되자 옷이 전부 말라있었다는 겁니다. (역시 젊은날의 체력은 무서운거죠 ^^ 지금은 상상도 못합니다. )
어쨋든 그런 오대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켄싱턴 플로라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켄싱턴호텔이전에는 오대산 호텔로 불리워졌던 이 호텔은 인근에서 가장 크고 우뚝 솟아있는 건물입니다. 이랜드그룹에서 이 호텔을 인수한 후에는 많이 깨끗해지고 모든면에서 좋아졌더군요.
저는 설악산 켄싱턴 호텔을 두번정도 가보았었는데 설악 켄싱턴 호텔은 정말 추천할만하고 괜찮은 호텔이었죠. 오대산 켄싱턴 플로라호텔도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는데 만족스러웠습니다. 테라스도 넓고 방도 비좁지 않고 깔끔합니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로비에서 맥주한잔을 먹으며 가져간 맥북으로 오대산 정보를 둘러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참고로 로비에서는 무선인터넷이 공짜. 객실에는 아직 인터넷이 없음)
다음날 10시경에서야 일어나 아이팟과 소형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시작했죠. 날씨도 좋아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놓았었는데 정말 공기가 상쾌했습니다. 크게 팔을 벌리고 내 폐안의 공기들을 모두 오대산의 공기로 교체했습니다 (^^;;)
베란다를 통해 창밖을 보니 아직도 산이며 들이 눈으로 덮여 있더군요. 날씨는 영상이었고 쾌적했습니다. 오늘 무리는 하지 않고 신첵을 겸하여 상원사까지 가서 인근을 슬슬 걷다가 올 예정입니다.
하하 호텔 주차장을 보니 썰렁하군요. 예전 오대산 호텔시절부터 좀 썰렁했죠. 수요보다는 너무 호텔이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침은 오대산 입구의 식당에서 산채나물 비빔밥과 황태해장국으로 해결했는데 황태해장국이 그리 맛있다는 걸 와이프가 처음알았답니다. 서울에서 먹던 맛하고는 또한 다르더군요.
월정사와 박물관등을 둘러보고 나와 상원사로 가는 비포장도로에 접어들었습니다. 거리는 8킬로미터 남짓이었지만 길이 눈길인데다가 비포장이라 거의 30분정도를 천천히 달려야 했죠.
상원사에 다다를 무렵 상원사옆의 주차장이 만원이라 우리부부는 1킬로미터 이전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눈길을 걸어올라갔습니다.
그래도 참 좋더군요. 아래 사진을 보세요. 눈밭이지만 날씨는 이날 너무 따뜻했습니다.
상원사에 가서 전통찻집에 들러 따뜻한 차를 마셨습니다. 생강차였는데 정말 그윽했습니다. 원래 생강차는 제가 시켰는데 강제로 와이프가 바꿔먹자고 해서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죠.
상원사에서 나와 막바로 주문진엘 갔습니다. 주문진에 들러 회를 떠가지고 저녁때쯤 모든 식구들과 함께 잔치를 벌일 셈이었죠.
복어가 좋다고 해서 과감하게 질렀습니다. 복어 3마리랑, 숭어, 광어등을 포함해서 9만원정도어치를 사서 잽싸게 서울로 올라와서 식구들이랑 순식간에 모두 먹어치웠죠. 물론 물오징어와 (12마리에 만원) 자연산 골뱅이 (한바구니에 만원)도 사서 아주 포식을 했답니다. 그 다음날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상원사 찻집의 기억때문에 와이프가 생강차를 집더군요 ^^
좋은 일이 있었네..^^ 그래도 부부끼리 시간날때마다 여기저기 알콩달콩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구만.. 요즘 바쁜가 보네.. 포스트가 많아진걸 보니..ㅋㅋ
^^ 이런거라도 해야 뭔가가 풀리죠 ㅎㅎ
승진 축하한다. ^^
오대산은 정말 쌍팔년도 이야기구나. 나도 오대산 하면 기선이형의 맨발 등반만 생각난다. 어릴 때야 존경어린 눈으로 봤지만.. 지금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서야 원.. ㅎㅎ
화양계곡도 기억나지 않냐? 진짜 떡이 된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술쳐먹고 다음날에는 산에도 올라갔으니..
난 그때 긴급한 일로 다행스럽게도(?) 화양계곡은 가지 못했단다. 너네들이 국도변에 빤쓰만 입고 중앙선위에 나란히 앉아서 (그것도 밤에) 찍은 사진을 보고 안가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어째 한번도 재정신으로 놀았던 기억이 없는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