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쌩쇼

By | 200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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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같았으면 내공의 50%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던 일들을 거의 극강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거의 처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오늘도 결국 밤 11시 경이 되자 계속 돌고있던 내 머리속의 CPU와 메모리들이 충돌을 일으키면서 블루스크린이 뜨면서 다운되버렸다. 
오늘밤을 넘기면 안되는 일들이라 두세가지 자잘한 것들을 마저 해치운 다음 USB메모리에 자료들을 모두 옮기고 집으로 왔다.  목욕재개하고 내머리를 다시 부팅시키니 다행히 안전모드로 진입하지 않고 정상부팅되었다. 
그러나 다시 한두시간이 지나자 아까 밤 11시에 그랬던것 처럼 CPU점유율이 계속 올라가 시스템이 버벅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담배를 피워물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고 담배를 피우면서 물끄러미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일련의 LP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약 5-60여장 정도의 LP들중 유일하게 박스세트가 눈에 들어왔는데 담배를 입에문채로 얼른 빼보니 위 사진과 같은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트리오의 기념앨범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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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를 열고 안에 들어있는 부클렛을 들춰보니 1984년에 나온 이들의 기념앨범이었다.  예전엔 어지간히 트윈폴리오의 노래들을 들었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선배들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한 곡이 ‘하얀 손수건’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뒤로 한동안 선배들이 나를 하얀손수건으로 불렀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을수 없다. 
만약 그때 앵콜을 받았더라면 송창식의 ‘돌돌이와 석순이’를 부를 참이었다.  난 아직도 노래방에 가면 ‘돌돌이와 석순이’가 혹시 있는지 살펴본다. (물론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들의 하모니와 각각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맑음 그 자체였었다.  이 박스셋에도 수록된 ‘숭어’같은 곡은 그들의 목소리가 맑았기에 더더욱 맑게 들렸다. 
이 박스셋 맨 마지막에도 ‘나라사랑 이웃사랑’이라는 건전가요가 들어있었는데 우울했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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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우리회사에 새로온 팀장과 간단하게 맥주를 걸치면서 어렸을적 시절의 딱지치기 얘기에서 부터 음악, 만화책으로 주제가 들불처럼 번지게 되면서 그 팀장의 형님되시는 분이 예전에 사놓았던 LP들을 이제는 버리려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펄쩍 뛰었다. 
그 팀장님께서 선뜻 나한테 그것들을 모두 주겠다고 해서 나는 기회가 되면 같이 퇴근해서 그것들을 집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일이 바쁘다 보니 기회는 좀처럼 나지 않았고 결국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60장정도의 LP들을 땀을 뻘뻘흘리며 집으로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대부분은 가요LP였고 간간히 그 당시의 팝송앨범(그것도 대부분 베스트앨범)이 끼어있었다. (젠장…지금 잠깐나가서 다시 세어보니 정확히 90장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LP는 무겁다. 
그것도 꽤 무겁다.  90장의 LP를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두세번씩 갈아타고 그걸 집까지 들고온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일이 아니다.  그것도 열대야가 지속되는 한여름밤이고 손에 또다른 가방까지 들려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바보같이 반팔차림이 아닌 여름용 긴팔재킷까지 걸치고 있었다면 거의 포기하고 싶어진다. (실제로 난 재킷을 입고있었다)

밤 11시쯤 집에 도착해서 현관에 박스를 내려놓고 나니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정말 한동안 샤워할 힘도 없어서 그대로 앉아 있었던것 같다. 

사실 나는 가져온 LP말고도 한 3백장쯤 LP를 보유하고 있었고 LP플레이어도 있었지만 구석에 쳐박아두고 CD만을 듣고 있었다.  결국 대대적인 집안정리를 위해 먼지를 털어내고 바늘을 새로사서 갈아끼운다음 팔아치우기 위해 제대로 나오는지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때까지 냉랭하던 와이프는 정말 소리가 나오는지 한켠에 서서 여전히 냉랭하게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운명이었는지 내가 테스트를 위해 우연히 집어든 판이 바하의 평균율 모음집이었고 피아노곡을 좋아하는 와이프가 아직도 기가막히게 완벽한 상태로 보관되고 있었던 굴드의 맑은 피아노 전집소리를 듣고 재깍 판매불가를 나에게 통보하면서 플레이어는 팔리지 않고 남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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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말에 오늘 발견한 이들 세사람의 노래들을 플레이어에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야심한 밤에 말이다.   나도 정말 미쳤지…내일이 주말도 아닌데 아직까지 일도 안끝난 상태에서 포스팅을 하고있다니 원…

어쩔수 없다.  머리가 안돌아가니 어떡하랴.  
우습게도 난 진짜 바쁘면 블로그에 글을 쓸 시간이 없고, 일이 진짜 많으면 블로그에 글도 많이 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게 무슨 얘긴가. 
블로그에 글이 아주 자주 올라오거나 아예 없으면 내가 바쁜걸로 아시라. 
다만 그렇게 바쁠때 머리가 안돌아가면 이렇게 와서 글을 하나두개씩 막 쓰고 나가서 다시 일을 하는 거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우습다.  

이제 다시 난 전쟁터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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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한밤의 쌩쇼

  1. 효준,효재아빠

    하얀손수건..나도 한때 이 노래를 자주 부르고 했었는데..
    시간나면 이 노래도 함 올려줘..

    선배의 CPU 점유율이 100% 수준이면..그 일들의 수준을 알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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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그건 아직 없단다. LP를 어떻게 리핑할지 난감해서 말이지. USB단자가 달린 LP플레이어가 있다고 하길래 잠깐 보니 너무 비싼것 같더라. 정 필요하면 국내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몇몇 사이트를 이용해보니 역시 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더구나.

      그리고 항상 쓸데없는 일이 CPU점유율을 잡아먹는 장본인이지… 울며겨자 먹기로 해야하는데 그런일들은 빨랑 해치워버려야 하는데 왜이리 속도가 안나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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