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의 추억

By | 2022-03-09

20대 초반때 얘기. 원래 걷는거 힘들어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걷는게 고되서 집에와서 그런 얘길 했다가 엄마한테 붙들려 병원에 끌려갔더니 의사가 그런다. 

“자..어머니는 입원준비하러 집에 다녀오세요. 아드님은 아무래도 내일 첫수술 받아야 할 것 같으니 여기 남겨두고 가세요”

“네? 왜요?”

“탈장입니다. 찰데까지 찼어요.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한 시간 후 난 옷을 갈아입고 정형외과 병동 6인실에 들어갔다. 정형외과 병동이라서 그런지 엄청 살벌했다. 내 왼쪽엔 디스크 환자로 나보다 한살 어린놈이 들어와 있었고 오른쪽은 교통사고로 동승한 친구 셋은 모두 죽고 운전자인 자신만 살아남은 ROTC출신 장교가 온몸을 붕대로 싸매고 다리엔 무시무시한 철심을 꽃은채 누워있었다. 반대쪽 3명은 비교적 오래 입원한 티가 나는 중년의 아저씨들이었다. 모두 내 아이를 물어봤고 연배순으로 서열 5위가 되었다. 그 때 다른 입원실에서 한 쪽 다리가 없는 환자복 아저씨가 목발을 짚고 들어왔다. 

“신입 왔다메?”

“네, 저기 중간에 있는 놈입니다” 

“그래? 넌 멀쩡해 보이는데 왜왔어?”

“탈장인데요”

“아 그래? 그럼 뭐 사나흘이면 나가겠구나. 수술은 언제하냐?”

“내일 아침이요”

“그래, 그럼 수술 잘 마치고와라 그때 오마”

어리둥절한 대화를 마치고 그 아저씨가 나가자 건너편 아저씨가 해설을 해준다. 정형외과 병동의 최고참 아저씨로 작년에 교통사고로 들어와서 다리 하나를 잃고 사고를 낸 쪽에서 부담하는거라 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때 인턴으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간단한 도구를 들고 들어와 디스크 환자를 찾는다. 턱으로 맨구석을 가리키자 커튼을 치면서 오줌줄을 꼽으러 왔단다. 그 얘기에 건너편 아저씨들이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저거 해 보면 알겠지만 참 묘~한 고통이야”

“맞아…아픈종류가 색다르지”

“아~ 아~~~ 아~~” 

디스크 녀석이 커튼안에서 작고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계속 내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작고 가느다란데도 은근히 고통스러운 느낌이었다. 건너편 아저씨가 나를보고 한마디 한다.

“너도 해야할걸?”

“탈장도 하나?” 옆아저씨가 되받았다

“하지 않나? 못움직일거잖아”

“아냐 안할 가능성도 있어”

그때부터 난 오줌줄에 대한 묘한 공포심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에겐 다른 사람이 왔다. 의사같지 않은 아저씨였다. 면도기가 스탠그릇에 담겨있었다. 아…내 거시기 털을 밀러온 분이었다. 난 인생에서 최초로 거길 면도했다. 끝내고 커튼이 걷히자 건너편 아저씨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어때? 다시 국민학생 자x로 돌아간 기분이? 허허허”

 아…이 병원분위기가 무슨 국군병원 같은 느낌. 어쨋든 다음날 동이트기전 마취과 의사가 들어왔는데 이건 무슨 백정같은 느낌이었다. 어찌나 수염이 마구자랐는지 장비같은 느낌의 의사. 게다가 알콜냄샌지 술냄샌지 계속 그런 냄새가 진동했다. 어쨋든 그 의사가 수술직전 나한테 내기를 걸었다. 

“나랑 내기할까? 열을 셀동안 잠이 안들면 내가 술한잔 사지 흐흐흐”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계속 그 의사가

“흐흐흐”하고 웃는 소리만 들리다 정말 의사장담대로 열을세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마취에서 깨어난건 회복실이었는데 내 속에서 역한 알콜냄새같은게 진동했다. 병실로 옮겨지는데 엄마가 내 숨쉬는 냄새를 맡고 자기가 마취되겠다면서 질색을 하셨다. 그런 느낌도 난생 처음이었다. 어쨋든 아직 정신을 다 차리지도 못했는데 병실로 돌아왔고 한참을 해맸다. 이제 좀 정신을 차리려는데 어제 그 외다리 실바 아저씨가 들어왔다. 

“오~ 역시 젊은애라 빠르네. 어디보자” 

놀랍게도 그는 아직 내팔에 꽃혀있던 링겔을 익숙한 솜씨로 빼고 말했다.

“자 이제부턴 내가 병원을 안내하도록 하지 여기 앉아”

뒤에서 다른 병실 아저씨가 휠체어를 내밀었다. 아니 방금 배를 째고 온 사람한테 뭘 어쩌란거야. 어쨋든 앉으려고 하자 오른쪽 아랫배에 납으로 든 커다란 추가 들어있는것 처럼 불편함이 느껴졌다. 구부정한 자세로 휠체어에 앉자 모르는 아저씨가 뒤에서 휠체어를 밀었다. 실바 아저씨를 포함 총 6명 정도의 일행이 병원복도를 휑~하니 빠져나갔고 병원 건물을 나가 뒷편 동산으로 올라갔다. 

“너 담배피냐?”

“네”

“엣다 하나 펴라 수고했다”

“수술한 직후에 이런거 펴도 돼요?”

실바는 손을 내저었다. 난 한 모금을 빨았다. 이야~ 좋더만. 거기서 같이간 사람들과 통성명하고 그들 각자가 입원하게 된 이야기들을 한 두시간 들었다. 그 동안 병동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엄마가 어딜 다녀와 보니 아들이 없어진게 아닌가. 게다가 내 침대엔 빠진 링겔 주사바늘이 놓여있으니 정황이 딱 그랬다. 몸이 성한 사람들은 다들 뒷동산에 올라와 있었으니 내가 어디로 간지 아는 사람은 병실에 없었다. 돌아와보니 의사와 간호사 어머니가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야 근데 넌 밖에서 무슨일을 하길래 탈장이냐? 이사짐이나 막노동같은거 해?”

뒷동산에서 담배를 피면서 사람들이 물어보더라. 생각해보니 작년 방위 소집해제 직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부대 근처 수목원에서 나무를 파내 10톤 트럭에 옮겨 싣는 일을 몇 주 했다. 주로 조경용 소나무였는데 키가 거의 10미터 정도 되는 큰 나무들이었다. 뿌리가 다치지 않게 밑둥을 크고 둥글게 파내려가 뿌리에 붙은 흙이 부서져 내리지 않게 새끼줄로 둥글게 칭칭감아서 일단 구덩이 밖으로 끌어올린다음 다시 그걸 트럭에 올리는 일이었다.  그 밑둥 무게만 피아노 한 대쯤 되는거 같았다.  구덩이에 들어가 밖으로 밀어올리고나면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정말 하루 종일 그걸 하고 있으면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는데 우리들은 하루종일 일하고 수고비로 담배 한갑을 받았다.  탈이 났으면 아마 그 때였으리라.  하루종일 축구를 하고 탈진한거랑은 완전히 다른느낌의 탈진이었으니까.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원래 나무를 끌어올리는데 크레인을 쓰는데 수목원 주인이 그 비용을 좀 아껴볼라고 평소 친분이 있었던 우리 대장에게 부탁해 노동력을 제공받았던 것이었다. 


때는 5월 중순이라 바깥 나들이 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어쨋든 그런 얘기를 하면서 다시 병동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복도 저 멀리서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다다다다 뛰어오셨다. 


“어디갔다왔어 엉?” 

“아..형님들하고 병원 좀 구경하고 왔어요. 수술이 잘 끝나서 그런지 말끔해요”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잘 걷지도 못하면서 말짱한 척을 했다. 어쨋든 그 형님들은 남는게 시간인지라 이 병실 저 병실을 다니며 오만데 다 관심을 쏟고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가래는 뱉었느냐 화장실은 갔느냐 뭐 그런걸 시시콜콜하게 물었는데 실바형님이 옆에서 대신 대답을 했다.  


“가래는 아까 다 뱉어냈고 화장실은 이제 갈거니까 저녁밥은 주세요”


그래, 가래얘기는 맞는말이었다. 그런데 화장실은 아직이었다.  간호사가 나가고 나서 실바 형님이 다시 휠체어를 가져왔다. 

“야 화장실에 가자. 너 임마 장이 작동한다는걸 증명해야 밥먹을 수 있어”

몇 시간전에 수술 끝내고 돌아오다보니 도저히 배에 힘을 줄 수 없었다.  너무 힘을 주면 실밥이 터질듯한 기분이었달까.  어쨋든 화장실에 가서 앉았는데 앉는 자세 자체도 힘들었고 힘도 줄 수 없었다.  밖에서 실바 형님이 한 마디 한다. 

“잘 안돼냐? 문잠깐 열어봐라…자 받아라”

실바가 화장실 문틈으로 담배와 라이터를 들이밀었다. 

“병원실내에서 피는건 좀 심하지 않아요?


“병신~ 우린 다 펴 임마”


역시 담배를 피워물자 신호가 왔다. 시간은 걸렸지만 대성공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밥차가 왔는데 내 밥이 오자 집엘 다녀온 엄마가 어리둥절해서 ‘얘가 밥먹어도 되는거냐’고 물어봤고 배식하는 아주머니는 분명히 식사오더가 온거라고 쪽지를 보여준다.  어쨋든 우리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워낙 많은 사고를 봐왔기 때문에 이젠 좀 담담해진 거 같았다. (나로선 다행이지)  병원 면회시간이 끝나고 우리 병실의 보호자들은 모두 돌아가기 위해 채비를 했다.  건너편 아저씨들이 우리 엄마 보고도 자꾸 가라고 재촉한다. 나도 좀 가시라 거들었다.  병실은 오후 8시쯤이 되자 완벽하게 남자 6명만 남았다. (그 전날도 그랬다)


병동이 조용해지자 실바가 종이 가방을 들고 우리 병실로 들어왔다. 소주랑 안주가 그 봉투에서 나왔다.  그날 먹는 술은 아니고 내 입방식을 기념해서 한 잔 하는거란다.  난 태어나서 입원이란건 처음해봐서 이해 안되는거 반, 생소한거 반 이었다. 그날 오랜 침묵에 잠겨있었던 내 오른쪽 중위가 입을 열었다. 입원을 한지 꽤 되었는데 거의 죽다 살아나서 그 동안 수술을 몇 차례 한 모양이었다.  어쨋든 건너편 아저씨의 질문으로 중위가 입을 열었다.  같은 R.O.T.C 동기들하고 진급기념으로 술을 한 잔하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트럭과 정면충돌해 동기 3명은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했단다.  중위가 그 동안 정신을 못차린 이유는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날밤은 비교적 정신이 말짱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트럭과 충돌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핸들을 틀어서 자신이 있는쪽은 정면 충돌을 피하고 조수석을 비롯한 뒷자석이 모두 갈려나갔다는 얘기를 정말 사실적으로 했다.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완치되어 나가도  바깥세상 사람들 얼굴을 도저히 볼 수 없을거란 얘기를 하면서 흐느꼈다.  아무도 중위의 얘기에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실바까지도 말이지. 


적어도 난 배의 실밥은 제거하고 퇴원할 줄 알았다. 실바의 예상대로 사흘이 지나자 퇴원이란 단어가 나왔다.  원래 병동 회진은 아싸리 깜깜한 새벽에 하는데 그 보다 더 이른시간에 자고있는 나를 새끼의사가 깨웠다. 그리곤 내 바지를 내리고 수술부위를 살펴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갔다. 그리고 20분쯤 지나자 또 다른 새끼의사가 와서 또 내 바지를 까고 이런 질문을 하고는 뭔가를 적어서 돌아갔다.  세 번째 새끼의사가 와서 내 바지춤을 잡길래 속된말로 야마가 돌아서 소리를 꽥 질렀다. 
오늘따라 회진을 도는데 그 규모가 평소완 달랐다. 거의 10여명 정도? 그리고 아까 내 배를 만지고 갔던 그 젊은 의사놈들이 번갈아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저게 한국말인지 외국어인지 한마디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야 ? 내가 오늘의 교보재야?’ 대장의사가 한마디 한다.

“말로만 하지 말고 해봐”  

어럽쇼? 그 젊은놈이 와서 양해를 구하더니 내 바지를 깠다. (난 수술부위 때문에 노팬티)  아니 일행중엔 젊은 여자 의사도 있었는데 그 앞에서 팬티도 없는 바지를 내리냐 이 나쁜놈!!  어쨋든 그놈이 드레싱을 풀고 수술 부위를 누르기 시작했는데 좀 아팠다.

“아~~ 아!!”

대장의사가 오더니 그게 아니라며 더 세게 누른다. ‘으헉~’ 


“김용석씨, 내일쯤 퇴원합시다”

“네에? 수슬이 어제였는데요? 실밥도 안풀고 아직 걷지도 못해요”

“걷는거 본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실밥은 본인이 풀어도 되고 병원에 오셔도 돼요”


헉스…아니 뭐 이런 불친절한 병원이 있담. 아침에 실바에게 내일 퇴원이라 얘기하니까 걱정말라며 침대앞에 있는 명패만 잘 지키면 된단다. 그걸 빼앗기면 안된다나. 그날 오후 간호사가 진짜 명패를 빼가려고 왔길래 얼른 명패를 빼서 내가 품었더니 기가막히단 표정을 짓는다.  간호사가 허탕을치고 나가면서 그런다.

“그런다고 퇴원 못하는거 아니에요”  

그런데 오후에 교대한 간호사도 집요하게 명패를 노렸다. 나는 아예 명패를 빼놓고 침대안에 넣어놓았다.  그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들 어수선할 무렵 오전타임 간호사가 잽싸게 들어와 침대위에 놓인 명패를 들고 토끼기 시작했다.  반대편 아저씨들도 몸이 불편해 잽싼 간호사를 잡을 순 없었다.

“어~ 어~ 야 야 명패 명패” 

조금 시간이 지나 그 간호사가 새로운 명패를 가지고 들어와 내 침대 앞에 걸어놓았다. 

“자 이제 나가세요. 새 환자 오후에 들어옵니다” 

아니…국회도 아닌데 이런 날치기가 있나. 어쨋든 난 실바 아저씨와 담배 한 대 나눠피우고 작별을 고했다. 단 며칠이었지만 문무대 들어온 느낌이었달까 ?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5년이 지난 어느날 … 

우리 가족과 어머니가 같이 있는 자리였는데 이상하게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아..이건 뭐지? 싶었다.  내가 간호사인 마님에게 말했다. 
“아…아….이거 혹시 맹장인거야?”

“글쎄 배가 아프다고 무조건 맹장은 아니지”

“아..아…꽤 집요하게 아픈데?”


꾹 참고 듣고 있던 어머니가 결국 입을 열었다 


“넌 맹장 없다”
“네? 그게 무슨말씀이세요? 태어날때부터 제가 맹장이 없었다구요?”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럼 내가 맹장이 없다는게 무슨 얘기에요?”
“너 탈장 수술할때 의사한테 부탁했다. 이왕 째는김에 맹장도 떼달라고”


헐…..엄마… 내 의사는 묻지도… 아픈 배가 갑자기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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