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손님

By | 2022-02-06

성당의 아줌마 커뮤니티는 원래 결속력이 강했다. 하지만 성산성당 바자회를 성공적으로 치룬이후 그 결속력은 한층 강화되어 성당일이 아니더라도 아줌마들은 거의 매일 교류를 가졌고 음식을 하더라도 더 많이 해서 서로 나누어 먹는다는 핑계로 서로의 집을 찾았다. 

아줌마들은 서로의 이름도 몰랐다. 그저 성당에서 부르는 본명이 그 이름을 대체했다. 골롬바씨, 데레사씨 하면서 말이다.  세실리아씨는 붙임성이 워낙 좋기로 유명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입이 가벼운 편이라 가끔 실수를 했고 그때문에 다른 아줌마들의 미움을 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뒤로 숨기거나 다른 의도가 없이 항상 액면 그대로의 순수함이 있었기에 다른 아줌마들도 그를 나쁘게보진 않았다. 다만 그와 대화할적엔 항상 조심조심 얘기했다. 어머니는 가끔 그런 아줌마들 사이의 중재자이기도 해서 유독 아줌마들이 우리집을 자주 찾아왔다.  세실리아씨도 다른 분들이 조금씩 피하는 경향을 보이자 우리 엄마에게 더 자주왔다. 

어느날 세실리아씨가 우리집에 와서 한참을 얘기하다 문득 뭔가 생각난듯 엄마에게 부탁을 했고 울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리아씨가 돌아가고 저녁식사 무렵이 되었을 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열어보니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예쁜 누나가 방긋 웃고 있었다. 딱 동네 마실이나 나가는 옷차림으로 샌들을 끌고 우리집에 왔는데 처음보는 나에게 이 집 막내아들이냐, 이름이 뭐냐, 고등학교 다니냐고 현관문에 들어서기 전까지 세 마디나 날리는걸 보고 과연 세실리아씨의 딸이구나 싶었다. 보통은 여러 아줌마들의 자녀들에 대해선 오며가며 하도 들어서 누구네 집에 아들딸이 몇 명이고 나이가 대략 어느정도인지까지 알고 있었는데 세실리아 아줌마에게 이런 딸이 있었다는 것은 이날 처음알았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어디 명랑만화에서 막 등장한 캐릭터처럼 밝게 웃고 얘기하니 (그것도 이쁜 누나가 말이다) 아들만 둘 있는 집이 금새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쨋든 이 누나는 공부까지 잘해서 명문대에 재학중이란 얘기까지 들으니 더더욱 신기했다. 우리집에 온 목적은 뭘 빌려가려는 것이었는데 엄마는 인사치례로 저녁시간이 되었으니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아~ 안그래도 냄새가 좋았는데 저녁반찬이 뭐에요?”

“어, 갈비찜이란다”

“와아~ 오늘 땡잡았네요. 먹고갈께요”

그 대답은 질문을 던진 엄마를 오히려 당황하게 만들었다. 여름의 길목에 들어서는 날씨라 반바지에 런닝구 차림으로 저녁식사에 임하려던 아버지를 포함한 남자 셋은 모두 옷부터 다시 차려입어야 했다. 사실 오늘의 특별메뉴였던 갈비찜도 문제였다. 원래같으면 다들 원시인처럼 뼈를 손으로 잡고 뜯어야 하는 거추장스런 메뉴여서 우리집 모든 식구가 걱정했다.  아버지는 평소에 자주 건너뛰던 저녁식사 기도를 했고 그 누나가 가장 큰소리로 ‘아멘’을 외쳤다. 

이건 뭐 평소 자주 왕래하던 친척집에 온 듯한 분위기랄까. 누나는 손으로 뼈를 잡고 누구보다도 잘먹었고 연신 맛있다, 어떻게 하신거냐, 이런걸 매일 드시냐면서 식사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엄마는 좀 당혹스럽긴 해도 항상 남자 셋만 있는 식탁에 처음으로 여자가 들어와 목소리를 내자 한편으론 즐거운 것도 같았다. 식사가 불편한건 우리 남자 셋이었다.  오히려 우리들이 우왁스럽게 먹지 못하고 뼈를 젓가락으로 발라내느라 노력들을 하고 있는 꼴이 스스로도 우스웠다. 

누나는 막 가운데 큰 접시에 있는 갈비찜 하나를 손으로 집어 올려 또다시 입으로 가져가는 참이었다.  참 대단한 넉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갈비조각이 물어뜯는 누나의 손에서 미끄러지며 튕겨나가 형의 밥그릇 안으로 떨어지는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 네 식구는 그 순간 모두 얼어붙었다. 당사자가 아닌데 내가 민망한 그런거 있잖은가. 

1초가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지려고 하는데 ….

“애고~ 하하~ 갈비가 오빠 밥그릇 안으로 들어갔네요. 실례합니당”

누나의 손이 형의 밥그릇 안으로 들어와 잽싸게 갈비를 다시 가져가 입에 넣었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깨끗하게 밥 한공기를 다 먹고 일어섰다.  우리 남자 셋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누나는 밥값을 하고 가겠다며 설거지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엄마가 극구 등을 떠밀어 할 수 없이 유쾌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엄마가 그릇을 치우며 말했다.

“하아~ 피는 무섭구나. 그래도 딸은 잘 키워놨네”

‘엄마 내 말이..’

이후로 동네에서 누나를 한번 마주쳤는데 그때와는 다르게 잘 차려입은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의 식사이후 우리 식구들은 세실리아 아줌마를 좀 더 싹싹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 같다.

Facebook Comments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