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돌이 2 : 제주 수학여행

By | 2022-01-06

여행 코스중 제주 조각공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한 끼니는 거기서 먹도록 되어있었다.  맨 처음 일정표를 봤을때 내심 놀라 몇 번이나 확인을 했었다. 

“조각공원에서 밥을 먹는다고요?” 


“네네 거기 큰 식당이 있걸랑요. 가서 보시면 알아요” 


과연 조각공원에 도착하자 우리학교 학생식당보다도 큰 식당이 있었다. 조각구경은 건성건성하고 다들 식당에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반찬은 이미 다 깔려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식당같이 긴~ 테이블이 수십미터나 이어져 있어서 우린 간단하게 한 줄을 차지하고 앉았다. 다들 앉고나자 찌게와 공기밥이 주욱 들어왔는데 1인당 공기밥 하나씩만 주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밥을 더 달라고 했고 공원측에선 계약이  1인당 한 공기씩이라고 항변했다. 


“좋아요 그럼 급한대로 공기밥은 추가로 사먹을께요 50개만 더 주세요”  


“근데 밥이 없어요. 딱 갯수를 맞춰서 남는게 없어요” 


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때 이미 애들은 테이블위의 밥과 반찬을 거의 모두 먹어치우는 중이었다.  그때 밥 많이 먹는 부대표놈이 이미 밥을 다먹고 나한테와서 귀속말을 속삭였다. 


“형, 우리 옆옆 테이블 좀 보세요”


식당엔 우리 학교 말고도 여러 학교들이 와서 이미 만석이었다. 오른쪽으로 두 칸 옆에 있던 여학생들이 식사를 마치고 서서히 나가는게 보였다. 모두 여자인걸로 봐서 여자대학교에서 온 것 같았다.   부대표가 나중에 그러는데 대구 효성여대 애들이란다. 


“얌마~ 배고파 죽겠는데 벌써 여대애들이랑 쪼인트 하자고? 밥이나 먹고 내가 알아볼께”


“아뇨 그게 아니라 쟤네들 테이블 좀 보세요 절반도 안먹었어요” 


“어라? 그러네… 쟤네들은 왜 밥을 안먹는데냐.”  “사장님, 그럼 저 친구들이 남긴밥은 먹어도 돼죠?”


식당 사장님이 못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걸 긍정의 대답이라 해석하고 애들한테 가서 말했다.  


“얘들아~ 밥이 없단다. 근데 한 칸 건너 옆줄이 효성여대에서 오신 분들인데 밥을 많이 남겼거든. 그거라도 먹을래?” 


애들은 대답없이 효성여대의 빈자리로 옮겨갔고 나는 그쪽 과대표를 찾아가 배가고파서 남은 밥 좀 먹으러 왔다고 했다.  그 쪽 과대표는 눈치가 빨랐다.  친절하게 아예 먹지도 않은 밥도 모아주었고 깨끗한 반찬도 몽땅 몰아줬다.  사실 그 때 내가 눈치가 좀 없었다.  효성여대 과대표가 호의를 베푼건 우리가 밥먹으러 왔다는 소리를 다른걸로 해석하고 나름 예우를 갖춰 응답한거였는데 우리는 그녀들이 왜 기다리고 서있는지도 모르고 밥만 다 먹고 빠져나갔으니 말이다.  교수석에 앉아 밥을 먹던 이땡땡 교수님 두 분은 애들의 동물적인 행동에 상당히 쪽팔려하시며 자기를 모르는 사람으로 해달라 당부했고 소수의 91학번 여자애들도 창피해서 못살겠다며 빨리 밥을 먹고 사라졌다.   멀리서 보니 몇몇 애들은 효성여대에서도 다 먹고 세 번째 대학교의 자리로 옮겨가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아 정말 이 자식들… 원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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