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냉면

By | 2022-01-05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 초반 군대엔 냉면이 있었다. 더운 여름날  토요일 점심정도에  나왔는데 일주일에 한 번 또는 2주에 한 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심메뉴가 냉면일 때면 입맛이 없어 점심을 건너뛰는 병사들도 사병식당에 모여든다. 그리고 그들은 늦지않게 가야 그나마 덜 불은 냉면을 먹을 수 있다는걸 잘 알고있다.  점심시간에 위병소와 삼거리를 지키는 근무자들은 냉면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들을 위해 식사추진을 해왔지만 기다리고 있는건 불어터진 미지근한 냉면이어서 차라리 숟가락으로 먹는 편이 나았을 정도였다. 

면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건 정말 가슴아픈 장면이었다. 더욱 더 가슴아픈 장면은 그것마저 맛있다고 개걸스럽게 먹는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난 사병식당에 친한 동기놈이 있었다.  어중간한 오후에 그를 불러내 식당뒤에서 담배를 피우며 냉면이 나오는 날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한달짜리 메뉴계획을 윗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어디보자~’하면서  몇 개의 토요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난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했다. 헌병대 서무계로서 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위수지역을 이탈할 수 있는 휴가증이었다. 그건 그에게 백지수표나 마찬가지였다.  휴가때 애인과 함께 강원도로도 놀러갈 수 있는 마법의 종이였으니까 말이다. 

“아주 좋아~ 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 되는데?”

“응, 조리되지 않은 냉면과 육수를 줘”

“그건 어렵지 않지. 식수인원에서 빠지면 뭐 마찬가지니까. 알았어 금요일에 와”

금요일 오후 거래 장소로 갔다.  군대냉면은 마치 당면같았다.  건면이었고 청수냉면과는 또 달라 마치 오뚜기에서 업소용으로 나오는 커다란 당면봉지 같았다. 그는 우리 부대원이 두 끼씩은 먹을만한 분량의 면을 줬고 물에 타서 만드는 라면스프같은 냉면육수를 건냈다.  거래는 깔끔했다.  커다란 냉면봉지를 들고 행정반에 들어오는 나를 인사계가 보더니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한마디 했다.

“그거 어디서났냐? 뭐하려고?”

“네, 내일 식당에 올라가지 않고 여기서 만들어 제가 행정반에서 배식하려고 합니다”

“괜한 수고 하는거 아이냐?”

“아닙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냉면을 먹어야죠”

아 맞다.  그 친구가 몇 가지 더 챙겨준 것이 있었다. 냉면김치와 연겨자, 계란이었다.  무우를 직사각형 형태로 얇게 썰어 고추가루물에 식초, 설탕을 약간 넣고 하루이틀 익힌건데 맛이 기가막혔다.  어차피 헌병대는 한 번에 먹을 만한 인원이 4~5명이라 한꺼번에 많이 조리할 필요가 없었다. 근무에서 돌아오는 애들대로 3~4인분씩 해주면 되는거였다. 

난 전날 육수스프를 모두 물에 풀어 간을 진하게 맞춰두고  식사추진용 들통째로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얼렸다.  얼음트레이 한 개로 계속 얼음을 반복해 얼려 얼음도 충분히 확보했다. 버너에 계란 한 판을 모두 삶아 두고 그것도 반씩 쪼개어 냉장고에 쟁였다. 그렇게 준비되는 과정을 인사계가 지켜보다가 또 한마디 했다.

“혹시 내가 먹을것도 있냐?”

원래 하사관, 위관/영관급 간부는 토요일 오전근무후 식사를 하지 않고 퇴근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토요일 오전이 가기전 수사관들과 보좌관, 소대장, 인사계가 모두 행정반에 식판을 들고 나타났다.  기가막힌 모습이었다. 여긴 을밀대도 아닌데 줄을 서다니.  

“그 대신 1인분 이상은 못드십니다!!”

그들 모두 냉면 한 판씩을 해치웠다. 

“용석아~ 내가 군대냉면 많이 먹어봤다만 원래 이런맛인줄은 몰랐네. 맛나네 이거~”

인사계와 수사관들이 내무반에 앉아 먹으면서 신이났다. 불지 않은 냉면에 시원한 얼음까지 띄워서 냉면김치, 삶은 계란까지 얹어 먹으니 맛이 없을 수가있겠나. 지금 기억으론 군대냉면은 요즘의 둥지냉면 맛에 가까웠다.  다만 식판의 육수를 시원하게 들이키기는 조금 어려워 다들 육수를 군용 숟가락으로 끝까지 퍼먹었다.

당직대나 교대근무자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겐 2인분씩 먹을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을 가져왔기에 다들 만족할 정도로 많이들 먹었다. 냉면을 거부하거나 남기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맛있는 음식은 기분을 끌어올리는 법.  그렇게 토요일 오후의 부대는 시원한 냉면으로 모두가 즐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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