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폭우

By | 2021-11-09

내가 있던 부대는 구파발에서 조금 들어가면 나온다. 가장 먼저 나오는게 사단 사령부고 노고산에서 송추쪽을 따라 북한산 국립공원 찻길로 수 킬로미터를 들어가면서 3개 연대가 차례로 늘어서 있었다. 지금은 길이 좋아졌지만 그땐 폭우가 쏟아지면 없던 냇물이 찻길을 가로질러 생겼다. 

예비군 동원훈련 준비로 사령부에서 가장 먼 218연대의 훈련장을 점검하러 나와 군수계원이 부대를 나섰다. 부대앞 삼거리에서 156번 버스를 타면 5~10분쯤 달려 218연대가 나온다. 비가 엄청나게 퍼붓는 날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할때 부대를 나서 연대에 도착해 업무를 보고 점심시간까지 다시 복귀하기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비는 변함없이 퍼붓고 있었다. 버스를 30분 정도 기다린 것 같은데 오지 않았고 언젠가부턴 숫제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게 되었다. 비가 어찌나 많이 오는지 낡은 우의는 더 이상 비를 막기 힘겨워보였고 옷이 젖어드는 느낌이 났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메신저백 안의 서류가 젖을까봐 우의 안으로 가방을 메고 허리가 툭 튀어나온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첫번째 냇물(?)이 나타났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운데가 더 움푹 들어가 버스도 건너기 힘들것 같았다. 다행히 사람이 건너긴 문제가 없었다. 좀 더 걷다보니 두번째 시냇물이 나타났고 이번건 더 힘겹게 건넜다. 물이 그렇게 불어난걸 보니 무섭기까지 했다. 내 기억엔 그때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길목쯤 되어 날이 시원했고 비에 바지가 푹 빠져버리니 추워지기 시작했다. 절반이상 왔을까…

유난히 먹는걸 좋아하는 군수계 동규가 킁킁대는 소리를 낸다. 뭔가해서 보니 식당같이 생기지 않은 시골의 식당이 있었다. 끼니때를 넘긴 시간이어서 이 기회에 짬밥말고 식당밥을 먹고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참고로 그녀석은 기간병, 난 퇴근하는 방위) 그런 소원하나 못들어줄까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몇 번을 소리치고 나서야 아주머니가 나왔다. 영업을 안하는 줄 알았다. 

수중에 가진 돈이 많지 않아 우린 돈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라면 두 그릇을 시켰다. 우의도 한켠에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두고나니 아주머니가 군화도 벗어놓고 먹으라며 슬리퍼 두 개를 내준다. 우리는 젖은 바지를 걷어올리고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채 창문밖으로 엄청나게 내리는 비를 쳐다봤다. 담배까지 한 대 피워 물었는데 그렇게 신세가 편할 수가 없었다. 라면 두 그릇이 나왔고 대접에 포기김치를 담아내왔다. 엄청나게 허기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라 라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라면 국물을 들이키기전 아주머니가 타이밍 좋게 물어오셨다. 

“찬 밥이 좀 있는데 줄까?”

“물론 이건 그냥 주는거야”

“네”, “네”

아주머니는 전기밥통이 아닌 그냥 밥통에 거의 절반 정도나 남은 밥을 통째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우린 그 중 절반을 국물에 말아먹기 시작했다. 남은 밥은 어차피 김치와 다 먹어치우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는데 잠시 후 테이블에 먹다남은 김치찌게가 데워져 올라왔고 기타 반찬들이 하나 둘 올라오더니 작지 않은 테이블이 꽉들어찼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를 거기서 계속 먹기만 한 것 같다. 거의 허리띠 풀고 먹는 느낌이랄까?

폭우속에, 점심시간 이전에 복귀하기로 한 군인 두 명이, 라면 두 개값만 가지고, 식당전체를 사용하면서, 식당내의 남은 음식 전체를 처리하고 있는 풍경이라니… 동규나 나나 시간이 그대로 멈춘, 잠시 딴 세상에 나와있는 그런 기분을 느꼈던 한시간이었다. 비오는 기세가 줄어들 것 같지 않았던게 그땐 어찌나 다행스럽게 느껴지던지… 시계는 오후 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젖은 양말과 군화를 신고 흠뻑 젖은 모자를 쓴 다음 옷걸이의 우의를 다시 입고 식당문을 나서면서 정말 고맙다고 식당주인 아주머니에게 거듭 인사를 했다. 문을 나서고 다시 빗물이 어깨와 모자챙을 때리자 멈춰섰던 시계가 다시 가는 느낌이었다. 

행정반에 복귀해 인사계에게 경례를 하자 그는 의외로 평안하게 인사를 받았다. 연락할 방도도 없고, 218연대에선 점심시간전에 출발했다 했고, 삼거리 근무자에게 차량이 끊겼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므로 알아서 걸어오고 있겠거니 생각했단다. 점심을 먹으러 올라가는 애들에게 인사계가 두 명 분을 더 추진해오라고 얘기를 해둬서 내무반에 들어가니 동규와 내가 먹을 식판이 한켠에 뚜겅이 덮여 놓여있었다. 그렇게 먹고 왔으므로 당연히 난 먹을 생각이 전혀없었는데 나보다도 날씬한 동규는 이미 내무반 끝머리에 앉아 식판을 열고 있었다. 

‘하아~ 대단한 놈’

비가 심하게 내리는 날이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 …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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