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By | 2021-11-02

망원동에서 살며 대학시절을 보내던 어느날 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묘한 표정으로 얘기를 시작하셨다. 

“용석아 너 앞집 O진이네 O식이 알지?”

“그럼요 알죠. 근데 왜요?”

“응, 글쎄 그 집에서 너더러 O식이 영세성사 대부를 서달라고 그러더라”

거실 마루바닥에 누워있다가 난 용수철처럼 튀어일어났다.

“으~응? 나더러 대부를 서달라고? 아니 왜 나야?”

“글쎄 그건 잘 모르겠고… 어쨋든 널 동네에서 좋게 본다는거 아니겠니. 그 집도 내가 부추겨서 성당에 다니게 되었고 하니 네가 서줘라”

알다가도 모를일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꼬꼬마때부터 서로를 봐와서 볼꼴못볼꼴 다 본 사이였다. 내가 철딱서니 없는짓을 하고 다니는 것, 이를테면 비오는날 흠뻑 비를 맞으며 동네애들과 골목축구를 하다 앞집으로 공이 넘어가면 초인종을 눌러 꺼내달라고 했던 일이나 새로지은 빌라 유리창을 깨고 도망가다 잡힌 일 등을 모를리 없는 앞집에서 나한테 대부를 서달라고 하다니. 

물론 나도 약주를 좋아하시는 앞집 아저씨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늦게 귀가하던 일 등을 기억하고 있고 말이다. 이쯤되면 대부를 좀 멀리서 찾아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어쨋든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뭐 그래서 엄마를 통해 한다고 했다. 그러자 앞집에서 대자가 될 O식이와 그 어머니가 우리집에 찾아왔고 난 뭐라도 좀 잘 입고 대기해야 했다. 이제 갓 중학생 정도가 되는 녀석에게 공부잘하라고 내가 덕담이라도 해야했지만 이미 모범생이었으므로 그럴처지가 아니었다. 

그 집 딸래미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내가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간데다 학교도 달라 교류가 거의 없었고 그 집 아들래미 역시 그랬다. 게다가 그 집 식구들은 조용한 편이어서 그 옆집 계현이네나 앞집인 우리집이 항상 우당탕탕 하는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어머니들 끼리는 꾸준히 교류가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2학년때인가 중령으로 전역하셨는데 그 몇 년전 아버지의 찦차를 운전하던 운전병 송O찬 아저씨가 제대를 하고나서 우리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워낙에 품행도 바르고 운전도 잘하던 아저씨였지만 제대 후 직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 갑자기 우리집에 들르게 된 것이었다. 그 때 아저씨가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면서 먹여살릴 식구들 걱정을 했고 아버지, 어머니도 그 얘길 들으며 안타까워하셨었다. 그런데 거짓말같게도 앞집 아줌마가 우리 엄마에게 잘아는 운전기사 좀 소개해 줄 수 없냐고 부탁을 해왔고 엄마는 제깍 송O찬 아저씨를 추천, 전격적으로 앞집 아저씨가 운영하는 회사의 운전기사로 취직하게 되었다. 정말 재미있는 인연이었다. 집앞에서 놀고 있으면 가끔 송아저씨를 볼 수 있었고 아저씨는 명절때마다 우리집에 인사를 오면서 이미 전역한 아버지에게도 여전히 ‘참모님’이란 호칭을 붙였다. 

어쨋든 지은지 얼마안된 성산성당에서 경O이의 대부를 서고 끝나는 줄 알았는데 2부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집 어르신께서 대부님께 술을 대접해야 한다면서 마당 잔디밭에서 고기를 구우며 한잔 하자며 부르셨고 술을 못하시는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피난을 가셨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은 초여름날 이었다. 우리집에서 그 집까지는 뛰어서 5초면 도착할 수 있었지만 말술을 자랑한다는 그 댁 어르신의 폭탄주가 두려워 내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다. 


그 집에 도착하니 술병을 담는 황금마차같은 2층 카트가 마당에 나와 있었는데 1층은 어디선가 들어본 브랜드의 양주병이 가득했고 윗층엔 소주와 전통주 등이 있었다. 앞집 어르신은 내가 등장하자 먼저 술부터 고르자며 나를 카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1층에 있는 발렌타인을 집어들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학생은 역시 소주지?”하시면서 2층에 있는 소주병을 집어드셨다. 그리고 그걸 큰 언더락 두 잔에 가득 나눠담은 후 첫 잔이니 시원하게 원샷을 하자고 하셨다. 

내 대자인 O식이가 대부께 드린다고 그 잔을 따른것 같다. 어르신 뒤에 서있는 그 집 딸래미인 O진이와 그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그래도 야외의 더위와 뜨듯한 소주 한 글라스가 나를 빠르게 녹였다. 내 생전 그렇게 빨리 술로 맛이가기는 처음이었고 예의상 더 오래 앉아있으려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그 집 앞마당에서 추태를 부릴 수는 없어 일단 어르신이 주는 잔을(애당초 소주잔은 없었다) 몇 잔 비운 후 횡설수설하다가 한 두 시간쯤 후 말도 안되는 핑계(솔직히 기억이 안난다)를 대고 그 집 대문을 나서 필름이 끊기기전 우리집에 당도했다. 그리고 장렬하게 전사… 

앞집 어르신의 주량이 상당하다는 것을 듣긴했지만 그렇게 완벽하게 필름이 끊긴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 술자리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초반외엔 전혀 기억나지 않아 적지 못했다. 망원동에서 살았던 20년내내 그 앞집도 변함없이 있었지만 그댁 어르신과 자리를 가진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LG홈쇼핑에 입사해 옆팀 과장님이 그 앞집 딸래미인 O진과 결혼한걸 알게되었다. (세상 참 좁다) 그리고 오늘 아직 페친인 그 과장님의 타임라인을 통해 앞집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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