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영자

By | 2021-10-22

옥정초등학교의 오후 일곱시 초중급반 수영클래스가 시작된 어느날 수영선생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오늘 새롭게 클래스에 합류한 분을 소개했다. 월초가 아니어서 신입회원이 들어올 날짜가 아니어서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새로 들어온 분은 놀랍게도 만삭의 임산부였다. 산달이 임박했는지 상당히 배가 컸는데 옆레인의 아줌마들이 배모양을 보고 각자 아들이라는 둥 쌍둥이 같다는 둥 수근거렸다. 보통 내가 보아온 만삭의 임산부들은 그때가 되면 힘에 겨운 표정이거나 몸의 변화로 인해 좀 푸석푸석한 모습이었는데 이 분은 좀 달랐다. 몸만 만삭일뿐 얼굴은 정말 갸름하고 깨끗했으며 표정도 생동감 있었고 키가 크고 팔다리가 늘씬했다. 

수영선생은 만삭의 영자를 1번주자로 가장 먼저 출발시키고 혹시라도 모를 위험때문에 간격을 충분히 두고 두 번째 주자를 내보냈다. 난 어차피 수영반의 지진아라 항상 맨 꽁무니에서 농땡이를 부렸으므로 만삭의 영자가 반대편에서 거의 돌아오는 모습을 본 뒤에야 출발했다. 

사람들은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만삭의 영자가 반대편에 도착하고 나서 출발했고 중간에 교차할 때도 혹시나 옆으로 지나가다 발로 차게 될까봐 극도로 조심했다. 그러다보니 10명이 시작했지만 1명이 레인을 혼자 독점하는 모양새였고 9명은 구석에 몰려 수영을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파란색 수영복을 입은 그 임산부는 느리게 가긴 했지만 확실히 수영을 오래 배운 사람처럼 잘했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겨 앞의 여성회원에게 물어봤다. 


“일반 수영복은 아예 들어가지도 않을거 같은데 임산부용 수영복이 따로 있는거에요?”

“그런거같네요. 저도 오늘 처음봐요”


이제는 만삭의 영자가 이쪽편에 도착했을때 출발하는 것이 루틴이 되어버려 졸지에 9명이 한 명의 수영을 한 시간 내내 감상하게 되었는데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이쪽으로 오는 모습을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다. 구도자를 지켜보는 경건한 느낌이랄까. 몇 바퀴를 돌자 그 분은 숨을 몰아쉬며 약간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반 아줌마 한 명이 결국 말을 걸었다.


“만삭에 수영해도 된데요?”

“네, 배가 너무 커져서 일부러라도 운동을 하라고 의사가 권유했어요. 수영도 나쁘지 않데요”


예비엄마가 지치긴 했지만 밝은 얼굴로 대답하자 나머지 9명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 후로 그 분은 몇 번 더 나오긴 했는데 얼마후부터 나오지 않자 다들 출산하러 들어갔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성스러운 모습으로 조용히 물살을 가르던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고들 기억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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