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벨루치

By | 2021-10-20

자유영을 몇 개월의 고생끝에 돌파하고나자 그때부턴 모든게 장미빛인것 같았다. 실제로 배영은 자유영과 미묘한 차이는 있었지만 그 메커니즘을 금새 파악해 돌파했다. 다음 영법인 평영이 제일 쉬워보였다. 그런데 실제로 평영에 돌입하자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몇 번이면 좋아지겠지… 생각했는데 매번 할 때마다 편차가 생겼고 한달이 지나도록 전혀 진전이 없었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엉망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수영코치는 머리를 더 빨리 물속에 집어 넣으라고 했고 다리는 한박자 늦게 차보라고 권유했지만 그날부터는 그나마도 되던 부분이 모두 엉켜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수영을 배운 후 두 번째 맞는 좌절이었다.  수업을 시작할 때 우린 아직도 초급반때 처럼 킥판을 잡고 자유영 두 바퀴와 평영발차기 두바퀴를 돌았다.  평영 발차기를 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스쳤다. 킥판을 잡고 평영발차기를 하는게 오히려 평영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난 킥판을 잡고 평영을 더 연습하는게 낫겠다 싶었다.  킥판을 잡을땐 물속에 머리를 넣지 않았지만 실제평영과 똑같이 물속에 머리를 꽃아넣으면서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와 다리의 타이밍을 여러모로 조절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느낌상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생겼다.  한번의 스트로크로 평소의 두 배에 가까운 거리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타이밍의 기억은 오래가지 않았고 다음시간부터는 다시 제자리였다. 결국 그 과정을 오래 견뎌낸 끝에 난 숫자를 세면서 어느 타이밍에 발차기를 할건지 결정했고 딱 들어맞는 지점이 생겼다. 


“아~~! 내가 물속에 머리를 넣으면서 발차기를 시작했었구나. 이게 잘못된거였어”


그랬다. 물속에 머리를 모두 넣고난 다음부터 발차기를 시작하자 스트로크 길이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 다음으론 물에 올라오자마자 머리를 반박자 빠르게 넣는거였는데 이 역시 스트로크 길이를 늘여주었다.  “와~~~우~~~”

운동의 기쁨이란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원래 오후8시에 강습이 끝나면 9시까진 자유수영이라 그대로 뻐댈 수 있었는데 난 평영을 더 연습하느라 매일 30분을 더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잘되는 평영에 취해 물개같이 물속을 주욱~~ 뻗어 연습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물속에서의 슬라이드를 최대한 천천히 길게 빼느라 남들이 봤을땐 그게 평영으로조차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밖에 잠깐 올라왔다가 물속에서 길~~게 가는 형태였으니 말이다.  레인끝 물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를 응시하던 눈과 마주쳤다. 


나와 같은 반의 여성회원이었는데 사뭇 심각한 표정이었다. 

“어쩜 그렇게 평영을 잘하세요?”  

“저요?”  

“네, 진짜 너~~무 부러워요 여기서보니까 저 끝까지 한 두번에 가시는거 같던데요”


옥정초딩수영장 중초급반은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내가 제일 노땅이었고 나머지는 거의 20대 젊은이들이었다. 가끔 여고생도 있었는데(성인수영반인데 엄마랑 같이 강습을 받으러 왔었다. 나를 끌고간 바로 그 스위머말이다)  남녀비율이 거의 반반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 서있는 이 여성으로 말할거 같으면 우리반 젊은이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정말 모든것이 아찔한 친구였다. 남자들과 같이 샤워를 하다보면 남자애들 얘기가 자연스레 들리는데 매번 이 친구 몸매를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나도 그엔 동의했지만 선뜻 그들과 말을 섞진 못했고 그냥 아저씨답게 조용히 있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거 이상하게도 이 친구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해도 너무 야한느낌이어서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동네주민이라 밖에서도 종종 마주치고 눈인사를 하곤 했는데 옷을 다 갖춰입은 상태인데도 주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렇다고 옷이나 수영복이 특별히 야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거 참 신기할 노릇. 내가 이상한 놈인가 싶었는데 샤워실에서 애들얘기하는걸 들으니 우리반 남성 전체가 그런생각을 가졌던것 같다.  이건 뭐 모니카 벨루치의 느낌이랄까.  오히려 그때문에 범접하는이가 없었던것 같다. 차마 작업을 걸거나 수업중 말을 붙이는 이도 없었다.  그런 친구가 자유수영시간까지 남아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라니…


“저 평영좀 가르쳐 주세요 네?”

“네~~~~에~~~?”


아니 뭐 그렇게 중요한것도 아닌데 저렇게 절박한 표정으로 애원하듯 말하는게 말이 되는건가 싶었다. 


“아…네… 저도 사실 배우는 입장인데..어쨋든  한번 해보세요”

“네네~”


그 처자는 곧바로 평영을 시작했고 난 수경을 쓰고 물속에서 동작을 관찰하니 가관이었다. 내가 처음 허우적댔을때 아마 저랬으리라 생각했다.  몇 번 동작을 하고나서 나에게 어땠느냐고 물어왔다.


“타이밍과 밸런스가 전혀 안맞아요. 일단 발차기 동작이 틀렸어요.”

 “다리가 둥글게 옆으로 나가는게 아니라 발뒷꿈치가 엉덩이에 닿도록 오무렸다가 쭉~뒤로뻗어 차는거에요” 


도저히 교정되지 않았다. 난 계속 그게 아니고 발뒷꿈치가 엉덩이에 닿도록 오무렸다가 쭉 뻗어차는거라 얘기했지만 개선될 기미가 조금도 없었다. 결국 그 처자는 나한테 짜증을 냈다. 


“말로만 하지 마시고 좀 잡아주세요 그럼”

“네~~~~에~~?”


뭘 잡아달란거야. 잡긴 어딜잡아.. 이런 말도 안되는… 순간적으로 안절부절했다. 어딜잡고 발차기를 가르쳐야 하나. 그렇게 곤란한 상황은 처음이어서 뻘쭘하게 서있는데 그 처자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괜찮으니까 그냥 어디든 잡고 동작을 교정해 주세요”

“아…네…네”

“그럼 …아…일단…그… 저…저기… 그렇지… 벽을 잡고 발차기를 해볼께요”


보통 완전초보들이 하는 방법이었는데 자유영 발차기도 처음엔 벽을 잡고 연습시켰던 것이 떠올라 일단 벽으로 밀어부쳤다. 


“이렇게요?…”

“아…아니…다리를 더..”


어쩔수 없이 수면에 엎드려 벽을 잡고 발차기를 하는 그 처자의 뒤로 다가가 양쪽 발을 잡았다. 


“다리에 힘을 완전히 빼세요. 발목에두요!!”


양손으로 발을 잡고 엉덩이에 붙였다가 차는 동작을 손으로 잡아줬다. 아 그런데 그 광경이 너무 민망해 내가 계속 버벅대고 말았다. 생각해보라. 엎드려있는 멀쩡한 처자의 다리사이에 들어가 양손으로 발을 잡고 엉덩이 까지 밀어붙였다가 다시 그걸 벌려 뻗치는 동작을 반복하려니 숨이 차올랐다.  아마 같은반 남자애들이 그 광경을 봤다면 단체로 비명을 질렀을터.  

이 처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결국 내가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세를 전환하기로 했다.


“좋아요 이번엔 머리에요. 수면에 입수할때 그냥 턱부터 들어가면 안되요. 턱은 바짝당기고 손은 기도하듯 모은다음 어깨를 움추리고 가슴쪽으로 당겨요, 마치 물속의 작은 터널에 빨려들어가듯 단번에 몸을 수면아래로 밀어넣는거에요 그리고 나서 모은 손을 앞으로 쭈욱~”

 
“이렇게요?”


원래 이 동작은 기도하듯 팔을 모으고 양쪽 팔꿈치를 가슴에 닿도록 당기고 또한 팔꿈치끼리 닿도록 모으는 모양새여야 한다. 그 상태를 앞에서 보면 어깨라인과 팔꿈치를 모은 모습이 역삼각형 모습이 된다. 이 상태에서 손부터 작은 터널로 들어가듯 물속으로 밀어넣는 동작이다. 그 처자가 그 모양새를 취하자 역삼각형 안으로 가슴이 모이는 바람에 너무너무 야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아…안돼. 이건 더 위험해’


그 친구가 그 동작을 반복하자 수면이 출렁였다. 모니카 벨루치에게 평영을 가르치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 친구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배우고 있었기에 민망해하는 내가 더 대비되어 계속할 수가 없었다.  난 그 친구한테 계속 그렇게 상체동작과 발동작을 연습하면 된다하고 옆레인으로 옮겨 반대쪽으로 출발했다. 


몇 바퀴를 유유히 돌고왔는데 그 처자는 계속 혼자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반대쪽으로 출발하기 직전 그 친구가 또 말을 걸어왔다.  

“아까 가르쳐주신 발차기 동작을 까먹었어요. 시범을 좀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

“시범요?”


그렇지, 차라리 내가 시범을 보이는게 낫겠구나. 그거야 못할것도 없지. 


“아 물론이죠 수경을 쓰고 물속에서 제가 어떻게 발차기를 하는지 보세요. 관건은 두발이 물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거에요. 그쪽은 계속 물밖으로 발이 나오잖아요” 


난 몇 미터씩 발차기를 하면서 가는 시범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아 물속이라 잘 안보여요. 정확하게 어떤 자세인지 잘 모르겠어요”


보통 평영이 안되는 사람들은 강사들이 ‘지상훈련’을 시키곤 한다. 난 그 차원에서 풀밖으로 나가 수영장 바닥에 배를 깔고 발차기 동작을 시범보였다.  그러자 그 처자가 물밖으로 따라나왔다. 헉, 어쩌려고 나오는거야 ? 그 처자가 엎드려 발차기 동작을 따라했다. 


“아, 아니에요 지금은 물밖이라 다리를 평평하게 둘 수 밖에 없지만 물속에선 무릎이 수면아래로 살짝 내려가게 되요. 여기선 발을 엉덩이에 옆이 아닌 위로 붙이는 연습만 하세요”


“그니까 좀 잡아주세요”


아이구야… 물속에서보다 더한 광경이 펼쳐졌지만 다른 자유수영자들이 있었으므로 태연함을 가장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시간이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순간에 거의 9시가 되면서 호르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고선생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아~ 이제 그만들하시고 가세요. 너무 열심히 하면 내일 하드 트레이닝 힘듭니다”


살려주는구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 처자의 양발을 잡고 엎드린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얼른 양발을 놓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라고 하고 황급히 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뒤에서 감사해요~ 라는 인사가 들려왔다. 

다음 시간 수업시작 직전 모두가 모여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지난번엔 가르쳐주셔서 감사했어요. 오늘도 남아서 하실거죠? 오늘도 좀 잡아주세요” 


순간 모든 남자의 시선이 레이더가 돌아가듯 나에게로 모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하는 표정이었다. 아줌마들의 시선도 나에게로 모였다. ‘이 자식봐라?’하는 표정이었다.  아~ 이런 젠장…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렇게들 보지 좀 마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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