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돌이 : 더 비기닝

By | 2021-10-12

내가 대학교 3학년때 과대표도 아닌데 불구하고 제주도 수학여행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기억이 안나는데 집에서 분명 졸업여행비를 받아내서 그걸로 몽땅 술을 마셔버렸다는 것. 그래서 난 수학여행비를 낼 수 없었고 여행을 기획은 했으나 가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집에선 수학여행을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3박 4일인가를 짐을 싸서 다른 곳에 가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기에 누군가의 집에 얹혀 지내야했다.  난 수학여행을 기획하면서 계속 얹혀지낼 곳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그때 학과장인 이땡땡 교수가 내 소식을 듣고 나를 연구실로 불렀다.

“야~ 네가 안가면 어떡하냐? 왜 못가는데?”
“집에서 돈받아서 다 술마셨습니다”
“우리가 의논해봤는데 우리과 장학기금있지? 그 돈 빌려줄테니 갔다오고나서 갚아”
“저 말고 두 명 더 있는데요. 그 친구들도 돈없어서 못가거든요. 그 친구들거 까지 빌려주십쇼”
“알았어 그렇게 해”

결국 그렇게해서 극적으로 가게되었다.  고교때 경주 수학여행과 마찬가지로 대학 수학여행은 현지 여행사가 내놓는 저렴한 패키지가 있었다.  어차피 학생이라 돈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왕복 비행기를 타는 것도 사치여서 갈 때는 배, 올때는 비행기를 선택했고 숙소도 제주시 외곽의 수학여행 전문 여관에서  6~7명씩 모여서 자는 걸 택했다.  그 여관엔 식당까지 있어서 몇 끼는 그 식당에서 먹기로 되어 있었다.  제주에 도착하는 시간이  밤 여덟시쯤이었는데 시간이 애매해 그냥 여관에 도착해서 밥을 먹기로 계약사항에 넣었다. 

그 때 우리 3학년은 여러 학번들이 두루 모여있었다.  군대를 안간 91학번 애들이 주축이었고 나중에 떼거지로 복학한 88학번이 비슷한 수였다. 그 다음엔 84, 85, 86, 87, 89, 90학번에 이르기까지 소수민족(?)들이 끼어서 나름 재미나게 노는 학년이었다.  나는 크고작은 술자리에서 항상 멀쩡하게 술값을 걷어 계산하는 사람이었으므로 항상 애들이 얼만큼 먹는지 그 양을 잘 알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많이들 먹는데다가 서너명은 앉은 자리에서 밤을 3~5공기씩 먹는 놈들이 있었다.  그래서 여행사에 간곡하게 밥을 많이 달라 부탁을 했고 여관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애들이 거의 산도적같이 먹는 놈들이니 반찬은 신경 못쓰시더라도 밥이라도 좀 많이 해달라고 정말 3,4번 전화를 걸거 간곡 또 간곡하게 부탁드렸다.

배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탄 후 여관앞에 도착하자마자 난 91학번 부대표를 델고 제일 먼저 내려서 여관의 식당으로 갔다. “사장님 배고픈데 밥 준비하셨어요?”  짙은 제주사투리로 아줌마 사장님이 자신있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충분하니까 걱정하지들 말어”
“죄송한데요 밥이 얼만큼 있는지 봐야겠어요”

밥솥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사장님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것보라니까 업소용 50인분으로 한통했어.  30명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랑 따라간 91학번 과대표놈이 절규했다.

“형~ 이걸론 택도 없어요. 이대로면 난리날거에요 저만해도 4그릇 먹는데 이걸로 어떡해요 이제”

난 빠르게 상황판단했다.

“사장님, 지금 쌀 씻으세요. 이건 다 다른데 퍼놓을께요.”

그날 저녁은 맛있는 생선조림이 반찬이었다.  애들이 벌써부터 들이닥치고 있었고 각자 냉면그릇 등에 자기가 먹을 밥을 퍼담기 시작했다.  딱 한 번씩 퍼가자 밥은 그대로 끝장났고 5분 정도 지나면 애들이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칠 것 같았다.  사장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무슨 총각들이길래 이렇게 많이 먹어?”

사장님은 쌀을 씻어서 하기엔 늦었다고 판단했고 인근 식당에가서 공기밥을 사오겠다며 황급히 나갔다. 사장님이 돌아왔을 때 우리 애들은 이미 모든 음식을 다먹고 식당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나간 사이에 계속 애들이 나를 보챘다.

“용석아~ 밥 안줘?  벌써 열신데…”

결국 그날밤 밤 10시를 넘겨서까지 식사와 밥 공수가 계속되었고 100인분 가까이의 밥을 소비한 다음에야 만찬이 종료되었다.  아마 그게 졸업여행의 서막이었을거다.

 

P.S – 대문사진은 수학여행 당시의 사진. 93년 4월 8일로 날짜가 찍혀있다. 성산일출봉에 오르면서 찍은걸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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