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타자들

By | 2021-10-09

망원구락부의 탄생시기는 확실치는 않다. 어쨋든 동도중 2학년 같은반 멤버인 나-종영-쌍목-재영에 고1때 멤버인 성훈을 더하고 가끔씩 보현-채희-태식-정규 등 동네친구까지 가세해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즐겼다.  축구와 농구가 기본이었고 야구와 배구가 더해졌다. 고1때 같은 반인 합정구락부의 동희가 무쇠엉덩이 등 자기동네 애들을 끌고 내려와 망원대 합정의 대결이 자주 이어졌고 특히 어쩌다 한번씩 대결하는 11:11의 축구시합은 시합 자체가 재미있어 시합벙개가 뜨면 다들 만사를 제치고 중간지대인 성산국민학교에 모였다. 

여러종목중 끝까지 확고하게 자리잡은건 야구였다. 속시원하게 야구할 장소를 찾던 우리들은 한동안 새로 개통한 성산대교 인터체인지 중간의 풀밭(정말 절묘한 장소였다)에서 우리만의 리그를 운영하다 찻길로 공이 넘어갔을 때 위험한 상황이 몇 번 연출되자 회의끝에 장소를 망원국민학교로 옮겼다. 

동교국민학교는 장소는 넓었지만 보통 5~6명이 한팀으로 하는 동네야구라 외야까지 공이 날아가면 주으러 가는 길이 멀었고 홈플레이트가 애매해 포수가 없으면 공이 저멀리 뒤로 빠지기 일쑤였다.  우리는 여러구장을 탐색한 끝에 망원국민학교가 가장 동네야구 친화적이라 결론내렸다.  학교 입구에서 맞은편 축구골대를 홈플레이트로 삼았다. 바로 뒤가 철망이쳐진 담이 있어 담벼락을 포수삼아 경기가 가능했다. 공인구는 처음엔 많이들 가지고 놀던 중경식 야구공을 사용했는데 이 공은 유리창 친화적인 놈이라 유리창에 맞으면 유리가 100%깨졌다.  결국 좀 애들같긴해도 테니스공이 가장 안전한 공인구란 결론에 도달했다.  반발력도 적당해서 홈런이 많이 나오지 않는 점도 좋았다.  테니스 공은 발사각도가 높으면 바람의 저항때문에 무조건 평범한 외야플라이가 되었다. 

이 야구리그는 공고했다.  특히 이렇게 포맷이 정해지고 난 뒤엔 여러명의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리그가 대폭 활성화 되었다. 특히 종영이네 집에선 이제 아기티를 벗어난 남동생 종신이와 김봉연이란 별명을 가진(딱 그렇게 생겼다) 대학생 형(동시에 경성고 선배)등 3형제가 한 경기에서 뛰기도 했다.  고3이 되어서도 이 경기는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린 주말만 되면 칼같이 모여 야구를 하면서 공부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데 몇 년이나 리그가 계속되자 서로의 투타스타일을 잘 알게되었고 수비와 타격, 투구 등 전부문에 걸쳐 실력향상이 있었다.  특히 타격 부문에 대한 성장은 눈이 부실 지경이어서 적어도 컨택하지 못할 공은 없었다. 게다가 테니스 공 특성상 강속구를 뿌리기 어렵고 배트가 공에 밀릴수도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타고투저 현상이 생겼는데 날이 갈수록 이 현상이 심화되어 리그의 존립자체를 위협했다. 

우리는 일단 반발력이 낮은 공에 먼저 주목했다. 종영이가 짬뽕에 사용하는 고무공을 가져와 경기를 해봤는데 반발력면에선 훌륭했지만 기본적인 투구와 수비가 되지 않았다.  공에 대한 리서치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쨋든 모두가 1할정도 타율이 하락한다면 이상적인 리그로 돌아갈거라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가 황당한 제안을 했다. 

“반대쪽 타석에서 치면 그렇게 될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왼손잡이인 재영이를 제외하고 모두 왼쪽타석에서 치자는 건데(물론 재영인 오른쪽 타석에서) 아마 경기 자체가 안될거였다.  그 말도 안되는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을 때 우리는 서로의 우스꽝스런 반대편타석 타격실력에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경기는 엉망이었지만 재미는 있었다.  양팀 모두 점수를 내지 못했고 공에 컨택하는거 자체가 힘들었다. 다음 경기에서 종영이는 왼손으로 타격하면서도 배트를 오른편으로 쥘때랑 똑같이 하고 나왔다. 즉 왼손이 배트하단으로가고 그 위에 오른손을 놓고 왼쪽에서 타격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컨택을 위해서였다.  사실 그게 잘 될리가 없었다. 된다해도 결국 그렇게 오랜시간 타격을 하면 주화입마에 빠질테니까. (헌데 그녀석은 끝까지 그 폼을 고수하게된다) 

우리의 예상대로 타고투저 현상이 일소되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타격은 아니었다. 서서히들 볼에 컨택이 되긴 했지만 수비 역시 고도화되어 내야땅볼이나 플라이는 거의 100% 수비가 되는 수준이었다. 경기는 언제나 한점차 승부가 되곤 했다. 고3이 지나고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듯 모두 재수를 했는데 야구경기는 재수시절에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양상이 바뀌었다. 1년쯤 반대편 타석에서 경험을 쌓자 서서히 모든 타자들이 양쪽 모두에서 비슷한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연습을 위해 대일학원앞 야구연습장에서 매일 양쪽 타석에 서서 타격연습을 했는데 나의 왼손 타격 레퍼런스는 MBC청룡의 김상훈이었다. 
재수시절에도 우리의 구장은 여전히 망원국민학교였다. 다들 반대편 타격에 불편함이 없어지자 다시 타고투저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스스로 내 타격을 생각해보면 장타력은 오른쪽보다 왼쪽이 좋은 느낌이었다. 왼손타석에서 잡아당겨 망원국민학교 건물 유리창을 맞추는 홈런은 참 짜릿했다.

어느날 구장에 도착해보니 구장사용에 대한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른 동네애들도 야구를 하러왔는데 우리랑 운동장을 겹쳐 사용하다보니 플레이 하는데 서로 걸리적거려 서로 기다렸다가 나중에 사용하라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걸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며 구경하던 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너네끼리 맞붙으면 되겠구만”

그랬다. 어차피 두 동네 총원이 20명 정도였는데 9명대 9명으로 대결하면 될 일이었다.  저쪽팀엔 고1때인가 같은반이었던 ‘인간’(별명이 인간이다)이 투수로 있었다.  우린 타석에 구애받지 않고 타격을 할 수 있었다. 저팀에서 인간이 먼저 등판하자 우리는 9명 전원이 왼쪽타석에 들어섰다. 

인간이 좀 놀란 표정이었다. 공을 던지면서 내가 타석에 들어서자 한마디던진다. “너네 다 왼빼였어?”
내가 싱긋웃어보였다.  인간이 좌타라인을 버티지 못하자 그쪽에서 왼손투수가 나왔다.  우리쪽은 그에 따라 애들이 몽땅 오른쪽 타석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까 뒤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놀라서 소리쳤다. 
“너네 팀 전원이 스위치타자였냐? 너넨 뭐하는 애들이니?”

P.S – 사진은 메이저 리그에서 전설이 된 스위치 타자 치퍼 존스. 난 그때의 영향으로 지금도 야구연습장에서 양쪽을 번갈아 타격할 수 있다.

Facebook Comments

2 thoughts on “스위치 타자들

  1. 야간비행

    망원초등학교 건물이 교문을 들어가서 왼쪽에 있기 때문에… 정문 반대편 방향 골대가 홈플레이트였다면 왼손 타석에서 당겨치면 건물 유리창을 맞추게 되는게 맞네요. 건물 맞은편 길 건너편의 모범세탁소는 아직도 있더라구요.

    그렇습니다. 망원초 후문 바로 앞 골목 진선맨션에 살았던, 망원’국민학교’ 1회(1985년) 입학생이었습니다. 🙂

    Reply
    1. demitrio Post author

      반갑습니다 ^^ 오랜만이에요. 맞아요 그래서 당겨쳐도 테니스 공이 유리창을 깨지 못했어요. 이전에 한 두번 유리창을 깬적이 있었죠. 일요일이라 아무도 쫓아오질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ㅋㅋㅋ 저희가 한창 야구하던 시절에 다니셨군요 ㅋㅋ

      Reply

demitrio 에 응답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