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 2021-10-07

성산국민학교 교문을 나서서 왼쪽으로 가면 작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똑바로 직진하면 계단을 올라 합정동 홀트아복지회 바로옆까지 주욱 이어지는 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학교담장을 끼고 가면 131번이 다니는 찻길과 건너편에 영진시장이 있었다. 오른쪽길을 따라 수십미터를 가면 조그만 약국이 나오는데 약국뒤로는 살림집이 딸려있었다. 그때의 건축양식은 거의 그랬다. 문방구 뒤에도 살림집이 딸려 있어 아저씨를 불러야 미닫이 문이 열리면서 아저씨가 슬리퍼를 신고 나왔고 내가 야구선수출신의 세탁소 아저씨를 야구하자고 부르러 들어서면 뒷방에서 가족들이 밥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쨋든 그 약국집 딸이 4학년때 우리반 회장이었다. 그리고 내 짝이었다. 
난 누구에게나 짖궃었지만 내 짝인 S에게는 감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S가 성질이 더럽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애들을 웃으면서 부드럽게 진정시킬 수 있는 마력이 있었는데 그렇게 소란스럽게 장난을 치는 녀석들도 S의 미소띤 만류엔 바로 꼬리를 내리고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4학년때 내 별명은 담임선생님이 지어준 꼴뚜기였다. 시골에서 한자루를 보내온 꼴뚜기로 어머니가 조림을 만들었는데 그걸 다 먹어치우기 위해 한동안 거의 매일 꼴뚜기 반찬만 싸갔기 때문이었다. 난 어쨋든 꼴뚜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맛있다고 좋아했고 S역시 좋아했지만 난 매일 이어지는 꼴뚜기가 창피해지기 시작했고 질려서 먹기싫어했다.  S가 싸오는 반찬은 늘 다채롭고 풍성했다. 소세지부침은 기본이고 계란후라이나 오이무침, 볶은김치까지 맛나지 않은 품목이 없었다. 어쩌다보니 S의 반찬을 거의 내가 먹어치우고 있었고 S는 내 꼴뚜기로만 밥을 먹곤했는데 그래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S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반찬통을 하나 더 꺼내놓았다. 집에가서 내 얘기를 했더니 걔네 엄마가 ‘그럼 내일부터 반찬을 한 통 더 싸주마’라고 하셨단다. 순간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S는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 밥을 다 먹고나자 S가 입을 열었다. 사실 여분의 반찬통이 없어 엄마랑 가까운 영진시장에 가서 나에게 줄 반찬통까지 새로 샀단다. 어쩐지..반찬통 그림이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그림이 아니라 남자애의 색깔이더라니…그 얘기를 듣자 더 무안해 졌지만 S는 정말 그러고 싶어 그리했다는 표정이었다.  거기에 대고 계속 무안한 표정을 할 수 없어 나도 그날부터 즐겁게 받아먹기로 마음먹었다. 
난 정말 1학기 내내 S를 위하는거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걸 했다. 심지어 S가 조용히 해달라고 하는데도 여전히 떠들고 있는 놈한테 가서 대신 진정시키기 까지하면서 말이다. 

날이 더워지고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S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시키면 웃어보이기는 했지만 고개를 돌리면 다시 쳐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방학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S가 나에게 몸을 돌려 조용히 얘기했다. 

“용석아, 내일 우리집에 가서 밥먹을래?”

윙~?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람? 난 얼떨결에 ‘그러마’대답했다. S는 그 시기엔 전과 달리 조용하고 차분하기만 했다. 1학기동안 관찰한 S는 확실히 우리들보다 정신적연령으로는 몇 년 위에 있는 누나 같았다. 아무생각없는 남자애들에게도 S의 말은 합리적으로 들렸고 S가 리드하는 학급회의는 물흐르듯 유연했다. 확실히 그는 군계일학이었다. 

다음날 4시간 단축수업이 끝나자 S가 앞장서서 나를 집으로 안내했다. 학교 교문에서 3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약국문을 열고 들어가자 온화한 표정을 한  S의 엄마가 나를 맞았다. 난 인사를 90도로 꾸벅했다. 

“안녕하세요”
“네가 용석이구나 우리 애 한테 얼마나 얘기를 많이 들었는지 꼭 한번 보고싶었단다 들어가자” 

S 엄마는 미닫이 약국유리문을 잠그고 커튼을 쳐 잠시 약국을 닫았다. 가게 뒷방엔 이미 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평소 내가 점심반찬으로 자주 먹는것들이었다.  딱 봐도 나를 위한 상차림인걸 알 수 있었다. S는 처음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 어린나이임에도 나는 울컥하고 올라오는게 있었다. 난 두 모녀를 위해서라도 그 상에 차려진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우는게 도리일것 같았고 S와 엄마는 거의 구경만 했다.  옆에서 밥알을 세면서 먹고있는 S는 아무래도 할말이 있는것 같았다.  S가 말을 못하자 S엄마가 얘기를 꺼냈다. 

“우리가 OO동으로 다음주에 이사를 가게 되었어. S는 가기 싫다고 했지만 어쩔수 없었단다. 가기전에 널 꼭 데려오고 싶어했어”

S가 옆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에게도 충격적인 선언이었는데다 S가 울기까지하자 난 어찌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방학식 전날 S는 정말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와서 선생님이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앞으로 불러내자 평상시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한채 나가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난 그저 멍하게 바라봤고 그냥 멍하게 S를 떠나보낸것 같다. 

그렇게 그 해 여름이 갔다. 

2학기의 시작은 내 옆자리가 비워진채 시작되었다. 한 명의 결원이 생겼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전학을 오는 애가 있다면 아마 우리반에 들어오게 될 거라 생각했다. 낙엽이 떨어지기 전 이윽고 전학생이 우리반으로 선생님의 안내로 걸어들어왔다. K양이었는데 그는 6학년때도 같은 반이된다.  내 옆자리에 비어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K를 내 옆에 앉으라고 보냈지만 난 그자리에서 K랑 앉지 않겠다고 반사적으로 일어나 선언해버렸다. 내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어쨋든 그런 일이 일어나 버렸다. 전학온 K가 냉랭하게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도 기분이 상했는지 맨 뒤 남은 책상 하나에 혼자 앉겠다고 가버렸고 K는 맨뒤에 앉을 만큼 키가 커서 선생님은 구태여 그걸 말리지 않았다. 전학온 첫 날부터 난 K와 앙숙이 되어버렸다. 

정말 놀라운 일은 한 달쯤 뒤에 일어났다. 4교시 수업을 하는 토요일 아침 등교시간에 S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교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출근해 S를 보고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날은 S가 다니는 학교의 개교기념일이었는데 S는 엄마를 졸라 우리학교로 등교한거였다. 엄마는 4교시가 끝날즈음 S를 데리러 온단다. S는 담임선생을 졸라 하루만 교실에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담임선생은 S요청을 혼쾌히 받아주었다. 다행인건 내 옆자리가 아직 비어있었다는 사실이었고 S는 당연한 듯 그 자리에 앉아 모든 아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뒤통수가 따가와 돌아보니 K가 모든 진상을 파악했다는 듯, 전 보다 두 배 냉랭해진 표정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어쨋든 난 아랑곳하지 않고 S와의 오전수업을 만끽했다. 하교하면서 S를 기다리는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했고 이번엔 발랄한 모습으로 웃으며 인사하는 S를 배웅했다. S와는 그게 마지막이었고 K와는 그게 시작점이었다.

 P.S – 5학년을 제외하고 난 국민학생 시절 짝에 대한 운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다들 나에게 잘 대해주었고 나 역시 그들에게 잘해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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