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 웰컴냉면

By | 2021-10-06

그 당시엔 몰랐지만 작은 외삼촌네는 정말 가난했다.  우리집은 양남시장 안쪽 골목을 따라들어가다 오른쪽으로 난 또 다른 골목 중간쯤에 있었다. 골목입구에서 보면 맞은편 끝엔 철제책상을 만드는 붉은 벽돌로 된 동양강철 공장(현재는 목화예식장)이 거대하게 서 있었고 그 바로 앞을 해자처럼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지금은 복개공사가 되어 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영도중학교(지금은 자리를 옮겼다)와 당산동 성당으로 가는 길이 나왔고 왼쪽으로 가면 큰 길이 나왔다(지금의 코스트코 앞길이다) 

외삼촌 집은 양남시장앞 광장에서 길을 건너 조금만 들어가면 있었다. 외삼촌은 근처에 있던 공장근로자였다.  사실 외삼촌의 집은 집이라 할 수 없었다. 다락방에 세들어 살았는데 너무 가난한 동네라 다락방엔 따로 칸막이조차 없어 (사실 방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그 다락위에서 보면 주인집 식구들이 밥을 먹거나 생활하는 모습이 그대로 다 보였다.  그 때 당산성당의 유차원에 다니던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나면 종종 외삼촌 집으로 도망갔고 전화가 없어 엄마가 발품을 팔아 어렵게 나를 외삼촌 집에서 발견하곤 했다. 

사실 우리집도 외삼촌네 보단 나았지만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하숙을 들였고 우리 네 식구는 방 하나에서 생활했다. 툇마루가 딸린 사랑방은 신혼부부가 와서 살았고 신발을 신고 마당을 건너가 있는 건넌방엔 근처 해태제과에 다니는 공장 누나들이 방 하나를 4~5명이 같이 쓰고 있었다.  그 때 외삼촌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숙모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동네가 가깝다보니 나와 형은 거의 피난처 처럼 외삼촌집을 들락거렸고 거기서 밥을 얻어먹고 자고오기까지도 했다.

그 후 몇 년뒤 우리집은 망원동으로 이사를 하게되었고 삼촌도 착실하게 돈을 모아 드디어 양남동을 벗어나 신정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땐 사촌 여동생도 생긴 후 였다.  집이 멀어지자 출입도 뜸해지게 되었다. 특히 신정동으로 외삼촌이 집을 옮긴 후로는 갈 기회가 없어 전화통화만 하고 말았었는데 어느날 엄마가 주말에 외삼촌집을 한 번 다녀오라고 해서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간신히 신정동에 내렸다.  내 기억으론 지금의 목동역 근처였던 것 같은데  70년대 말이어서 도로는 거기까지 나있었다. 그 다음부턴 엄마가 손으로 그려준 약도를 보면서 현재의 진명여고 근방을 두리번 거렸다.  그 끝은 아직 도로나 집이 다 들어서지 않은 황무지였다. 그러나 여기도 사람이 막 모여들기 시작한 동네여서 골목이 생기고 큰길 초입엔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골목시장을 지나 좁은 골목을 모두 뒤져 결국 외삼촌집을 찾아냈다.  열려있는 대문이란 대문은 한 번씩 모두 들어가본 끝에 외삼촌이 툇마루에 앉아있는 집을 발견했을 때 우리의 탐색은 끝이 났던 것이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오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삼촌이 반갑게 우리 형제를 맞아주면서 한 맨 첫 마디가 이거였다. 

“삼촌이 냉면 시켜줄까?”

“네에~!!”

우리 형제는 일제히 크게 대답했다.  냉면집에 전화가 없어 삼촌이 골목시장에 있는 냉면집에 가서 주문을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삼촌이 돌아오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냉면집 아저씨가 커다란 양은 쟁반에 냉면 두 그릇과 찬육수 주전자, 냉면 김치를 들고 마당에 들어섰다. 그 쟁반을 그대로 쪽마루에 내려놓고 휑 하니 사라졌고 우리 형제는 쟁반의 양쪽끝에 신발을 신은채로 걸터앉아 냉면을 먹기 시작했다.  삼촌은 마당에 서서 아기를 안고 있는 숙모와 함께 그 모습을 지켜봤다. 
크리스탈같이 투명한 얼음이 아기주먹만하게 냉면에 들어있었고 티끌하나 없이 잘 삶아진 계란 반쪽이 수북한 사리와 냉면김치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대체 이렇게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국물은 어떻게 만든건지  아저씨가 가져온 냉면육수를 계속 추가하며 그릇에 머리를 박고 계속 냉면국물을 들이키고 냉면을 흡입했다. 

“맛있지 ?  나도 먹어봤는데 이 동네에서 제일 잘하는 냉면집이라더라”

삼촌이 마당에 서서 정신없이 먹고있는 우리 형제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는 냉면을 그 자리에서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우고 나서야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갔다.   형은 계속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우리 형제는 이사온 새집도 구경하고 사촌동생과 놀아주다 딱지와 구슬을 들고 그 동네 애들과 오후내내 놀다 들어와 다시 외삼촌을 졸라 그 냉면을 한 번 더 배달시켜 먹었다.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형과 나는 꼭 다시 그 냉면을 먹으러 다시 오자고 버스안에서 결의를 다졌다.

외삼촌은 우리들이 놀러간다고 하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음식을 잘 먹냐고 미리 물어봤던 모양이다.  그때 엄마는 단호하게 ‘냉면’이라 대답했고 삼촌은 냉면에 자신감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어쨋든 그 냉면집때문에 우리는 외삼촌댁에 몇 번 더 갔었고 삼촌은 아예 우리 도착시간에 맞춰 냉면을 주문해 놓았었다.  안타깝게도 그 냉면은 항상 외삼촌집 툇마루에서 먹었기에 우린 그 냉면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분명한건 거의 인생냉면이었다는 것.  그리고 커서도 사무치게 그리운 냉면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정말정말 그리웠던 신정동의 골목시장 냉면을 추억하며…

P.S – 사진은 그나마 신정동 시장통 냉면과 가장 가까운 맛을 보여주는 성남의 수라냉면의 모습. 이 냉면집도 상대원동 시장통 바로앞에 위치하는데 아마도 성남시민들을 수십년간 위로해주는 역할을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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