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지진아들

By | 2021-10-06

옥수동은 확실히 우리 부부에겐 전략적 요충지였다. 새로옮긴 우리집은 옥수역 부근의 아파트였다. 옥수동, 특히 옥수역 부근은 서울 지도를 펴놓고 보면 거의 정중앙에 해당되는데 언덕아래 한강가까이에 형성된 곳이라 마치 섬같이 고립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교통이 편리해 시내 중심부까지 전철을 타고 10분이면 나갈 수 있었고 직장인 양재역에도 16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내는 삼성병원의 3교대 간호사여서 직장생활 시작부터 차를 몰고 다녔는데 여기는 강북강변로를 따라 삼성병원 사거리까지 신호등 하나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잇점이 있었다. 결정적으론 역삼동의 부모님 댁에서 멀어져 간섭을 줄일 수 있었고 말이다.

그때가 30대 중반, 대략 2005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창 일에 몰두할 연차여서 운동은 안하고 매일 과로에 술자리에만 나가다 보니 이러다 일찍 죽나보다 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이 하라는 골프는 죽어도 싫었다. 그걸 시작하면 주말에도 회사 사람들과 골프치러 다닐게 너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마님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산토리니 여행을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도 하는수 없이 산토리니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그 후론 내가 더 산토리니에 가고 싶어졌다. 특히 산토리니 섬에서 목선을 타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온천 근처에 간 다음 다들 옷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어 온천물이 솟는 섬에 상륙하는 장면이 그리도 낭만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그래! 수영을 해야해’

남들은 다 맨 몸으로 뛰어드는데 나만 튜브에 바람을 넣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안그래도 살아가면서 수영은 배워놔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난 집과 가까운 수영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집에서 5분도 떨어지지 않은 옥정초등학교에 새롭게 수영장 건물이 완공되면서 강습회원을 모집한다는게 아닌가. 부랴부랴 달려가서 등록을 하면서 너무나도 착한 가격에 한번 더 놀라고 말았다. 한달 강습비가 32,600원이라니!

인터넷을 뒤져 멋진 수영복과 수영모, 수경, 수영가방 등을 신나게 사들였다. 우하하~ 나도 이제 수영의 도사가 될거다. 아예 나중엔 한강을 수영으로 건너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강습의 첫시간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수영 첫 시간은 여러가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몸이 같이 강습받는 젊은이들보다 훨씬 뻣뻣하다는 점. 같은 반 갸냘픈 여성들보다도 더욱 더 체력이 저질이라는 점. 끊임없이 발차기만 한다는 점이었다. 킥판잡고 발차기 두 바퀴도 돌기전 수영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체력도 잃어 강사의 잔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우리반은 대략 20명 한 레인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여성들이 훨씬 더 많았고 다들 왜그리들 젊은 사람들만 있는지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강사도 상황파악이 끝난거 같았다. 그때부터 난 대놓고 지진아 취급을 받았다. 한 두달이 지나 진척이 빠른 친구들은 중급반으로 월반했고 같이 시작했던 절반은 포기했으며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나는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나도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무렵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그러나 건장한 몸을 가진 친구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짧막한 신입회원 자기소개 시간에 자신을 해병대 출신이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가 그 얘길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바닥을 드러냈다. 스펙은 해병대였으나 관절없이 각목같은 뻣뻣함에 납을 달아놓은 것 같은 평형감각으로 지진아 레벨로 내려왔다. 이제부터 강사는 나와 그를 같은 부류로 묶기 시작했다. 난 그를 보고, 그는 나를 보고 수영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다. 우리 둘 과 같은 나이와 뻣뻣함을 가진 세 번째 아저씨가 다음달에 들어왔을 때 우린 내심 반가웠다.

우리 셋은 모든걸 포기하고 수영시간을 몸개그로 버텼고 나이로 강사를 압박해 농땡이를 피웠다. 해병대 아저씨가 자유영을 할 때 일으키는 물보라는 단연 수영장내 탑이었다. 고장난 모터를 수중에 던져놓은 듯한 몸부림은 고급반 사람들도 구경하게 만드는 재주였다. 우리는 초급반에 가장 오래 머물렀고 마지못해 올라간 중급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달이 시작된 어느날 초급반엔 또 다시 신규회원이 많이 들어왔다. 그들에게 있어 첫 시간은 수영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비루한 체력과 보잘것 없는 몸부림을 확인하고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옆레인의 초급반 젊은 여성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레인끝에서 여유있게 쉬고있는 우리에게 절망적인 멘트를 날려보냈다.

“저어…헉헉…원래 수영이 힘든건가요 아니면 저만 이렇게 힘든가요. 저도 중급반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해병대 친구는 진실을 담아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가씨 물론입니다, 아마 두 세달 뒤면 저희들을 뛰어넘으실 겁니다”

그의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우리 셋은 남들은 다하는 접영 연습을 아예 거부했다. 평영도 안되는 마당에 무슨 말도 안되는 접영이랴. 우리는 조바심 내지 않고 ‘언젠간 할 수 있겠지’모드에 돌입했다. 선생들도 굳이 우리를 터치하진 않았다. 물론 그런 나도 결국 감을 잡게된 날이 오긴 왔다.

Facebook Comments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