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844058.mp3(My Road by Lee Osk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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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제주:도로와 구름이 잊혀지지 않는다.

1998년 여름날…
아마도 그때를 전후 5년간을 통틀어 가장 우울한 나날이 아니었나 싶었다.   97년의 뜨거운 여름을 극복해 내면서 난 뒤늦게 운전면허를 따냈었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흐른시점이었으니 아직도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운전자였다.

97년과 98년엔 정말 타이틀도 모두 적지 못할 만큼 많은 크고작은 일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회사를 때려치운 시기이기도 했고, IMF사태가 일어났으며, 뉴욕에 가 있었기도 했고,  티셔츠 장사도 했으며, 실연을 당하기도 했고, 취직하기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는 해였으며, 난생 처음으로 프리랜서를 해봤고, 다시 취직하기도 했으며,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기도 했다.  물론 그 시기에 운전면허도 땄다.

98년의 여름은 어쨋든 우울했다.
지난 몇 개월전까지는 일요일도 없이 회사에서만 거의 20시간씩을 지내야 했다.
그러나 98년의 여름은 이상하리만치 한가했다.  어마어마하게 바쁘게 지냈다가 일순간에 한가해지니 마치 인생에서 정적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했었는데  집에 일찍 도착하면 도대체 할일이 없었다.

목동에서 역삼동으로 퇴근을 하자면 보통 올림픽대로를 타고 가다가 성수대교 아래에서 들어가곤 했는데 어느날 퇴근길에 나는 그 법칙을 어기고 말았다.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정처없이 가다보니 미사리도 지나고 팔당대교를 지나 양평어귀까지 와있었다.
양평휴게소에서 일단 차를 세우고  차가운 캔커피를 사와 담배를 피우며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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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길. 영화에서나 보던길이었다.


다람쥐 챗바퀴에서 탈출했다는 묘한 성취감이 전해졌다.
그 날은 거기까지였다.  집에 돌아오니 이미 10시가 넘었고 나는 잠을 자야했다.
 
그 다음날에도 나는 성수대교 아래로 우회전 하지 않고 다시 미사리를 지나쳐 양평휴게소에 도착했다.  아예 이날은 휴게소에 앉아서 우동도 먹고 호도과자를 비롯한 주전부리와 캔커피등의 음료,  담배까지 여벌로 사와서 옆좌석에 놔두고 더 가보기로 했다.
내 기억으로 이날은 아마 양평대교인가…까지 진출한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역시 10시가 넘어있었다.

그 다음날에는 좀 더 멀리갈 수 있었다.   토요일에는 드디어 양평에서 청평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를 완전히 넘어서서 유명산입구를 지나 청평댐까지 갈 수 있었다.    난 가로등도 거의 없는 깜깜한 국도를 거의 매일 달렸다.  그리고 영역을 점차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평일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퇴근 후 길을 나서서 다시 37번 국도를 따라 유명산으로 넘어가는 고개길 정상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도착하니 이미  정상의 양쪽에 서있던  포장마차들도  영업을 끝내고  정말 나 혼자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물론 가로등도 없었다.
조수석 검정비닐봉지에서 아직도 차가운 물기가 가득맺힌 캔커피를 꺼냈다.  그리고 시동과 조명을 껐다.  자동차의 문을 ‘쿵’하고 닫고 돌아서는 순간 자동차 문닫는 소리가 메아리쳐서 다시 돌아오고 사방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담배를 피워물고 캔커피를 땄다.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어 캔커피 따는 소리가  주위 10킬로미터 반경내에서 나는 소리중 가장 큰 소리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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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명불허전이었다.


아직 여름이 다 지나가지는 않았지만 나의 오감중 가장 먼저 열린 것은 코로 느껴지는 대기의 상쾌함이었다.   이윽고 어둠에 익숙해진 나의 눈이 열리자 저 멀리 어두운 하늘에 겹겹히 늘어서있는 산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그리고 곧 쏟아질듯한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그렇게 어둠속에서 서있었던 30여분간 나의 지난 수년간 근심이 절반쯤은 날아간듯 하다.    맑은 계곡물이 비가 오고나면 흙탕물로 변했다가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모래와 먼지가 침전되어 다시 맑아지는 듯한 그런기분 말이다.

이전까지는 양평인근의 고요한 어둠속을 달리면서도 온갖 상념으로 머리속이 뒤죽박죽이었는데 이윽고 그런 모든 생각들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던 것이다. 
갑자기 저멀리 어렴풋하게 들어오는 산줄기의 실루엣들이 장엄하게 다가왔다.  달은 이미 높이 떠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차는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처음 차의 시동을 껐을때의 어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채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그러나 피곤하지 않았다.  나는 최근에도 머리속이 혼탁해 지고 있다고 느껴지면 그때의 그 기분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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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제주도 비자림숲길


유명산 자락에서의 감흥에 훨씬 앞서 사실 내 앞에는 항상 ‘길’이 열려있어서 그 ‘길’이 나에게 먼저 영감을 제공했다.    길옆에 늘어선 나무와 건물, 강안개와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 ‘길’이 어디로 어떻게 이어질 지 모르는 것에 자극을 받았고 그길을 따라 끊임없이 달렸다. 

어떤경우는 내가 가만히 있고 길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유명산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도 그렇지만 길은 음미해 볼만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뭇가지와도 같다. 

이제부터는 머리속의 복잡한 상념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길을 따라 나섰지만 길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도 길을 나서게 되었다.   양평대교에서 퇴촌으로 이어지는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주 루트중의 하나였는데 어느날 퇴촌으로 넘어가는 갈림길에서 남종면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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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나만의 길...거기에서 바라본 남한강의 섬


그 길은 퇴촌방면으로 가기위한 우회로 였는데 포장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군데군데 비포장 도로가 있었다.(물론 지금은 공사가 끝났다)   거의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도로였다.  


건너편의 6번국도와 달리 이 도로 주변은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았고 모든것이 그대로였다.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이 도로를 백번도
넘게 오간것같다.   밤과 낮, 아침과 새벽, 봄과 가을, 여름과 겨울, 비가 올때와 맑을때, 흐린날과 눈오는 날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이 도로가 좋았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목적지뿐만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길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고 나는 여행에 나설때 항상 어떤 길로 가야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 제주도의 비자림로, 충주호를 둘러싼 국도와 LA와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산길은 정말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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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My Road... 강건너 조그맣게 보이는 도로가 6번 도로다


길은 열매가 달려있는 나뭇가지와 같다고 했다.  적어도 난 그 시절 밤낮으로 양평 인근을 뒤지듯 다니면서 많은 열매를
음미했었다.   처음엔 길 주변의 나무, 강기슭, 산, 쉼터를 찾아 다니다가 아내를 만나고 부터는 찻집, 음식점,
명소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는 항상 붐비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막히지 않는길로만 빠져나가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나만의 길’은 지금 현재에도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막히지 않는 길로 남아있다.
봄에는 아내와 지나다가 할머니가 다듬어 놓은 냉이를 사기도 하고, 멋진 장독대를 가진 집에서 된장을 구해오기도 한다.

아마도 길은 나에게 있어서는 여행의 목적 자체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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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팔당대교에 접어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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