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 꿈꾸는 장난감

By | 2019-02-02

레고를 처음 만져봤던 것은 국민학생때였습니다. 동내에서 가끔 놀아주던 동생네 집에 갔는데 레고가 있었습니다. 70년대 후반이었죠. 그땐 레고가 아이들의 흔한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만 아이에게 레고를 사줄 수 있었죠. 아마 레고를 살 수 있는 곳도 거의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적어도 제가 자주 드나들던 문방구나 구멍가게엔 레고가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그땐 대형마트도 없었죠. 레고를 처음 본 저는 그 동생이랑 놀아주는 것도 잊은채 저 혼자 그 레고에 정신이 팔려 몇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브릭이 그렇게 많은건 아니었지만 창문도 있었고 색깔도 여러가지였는데다가 지붕을 꾸밀 수 있는 경사진 브릭도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레고의 기억은 딱 그 때 한 번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 성인이 될때까지 레고를 손에 잡아보지 못했죠. 그런데도 저는 지금까지 선명하게 레고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기때 가지고 놀던 듀플로

김돌TV 정후가 세상에 나오고나서야 전 레고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고를 그리워하던 것에 비해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죠. 레고는 정후와 제가 가장 즐기는 놀이입니다. 아빠와 아이를 연결해주죠. 다섯살까지는 주로 듀플로를 사줬고 이후엔 작은 레고브릭으로 넘어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의 기억때문에 레고는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는 장난감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레고는 좀 다르더군요. 설명서대로 만든 후 해체하지 않고 두고 보거나 장식장에 넣어두고 다른 레고를 또 사는거였습니다. 물론 설명서대로 다 만들어 놓으면 해체하기 아까울만큼 보기 좋았죠. 듀플로의 경우는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는게 기본이었습니다만 작은 레고는 좀 달랐죠. 정후도 만들어 놓은 레고를 해체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새것을 사달라고 졸랐죠. 그때쯤 정후와 저에게있어 레고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전 조립해서 장식장에 넣을거라면 차라리 프라모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레고는 브릭으로 이루어져있으니 브릭답게 계속해서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운명에 따라야 한다 생각했죠.

정후가 최근에 상상해서 만든 파인애플, 그럴듯 하다


설명서대로 따라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특정 부분을 구성하는 기법을 알게되죠 그리고 튼튼하게 만드는 구조로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걸 모방하고 다른 곳에 응용하기 까지 할 수 있으면 레고는 정말 좋은 창작도구가 될 것 같았습니다. 레고는 장난감이지만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여주는 교육교재이기도 하니까요. 재미있게 집중하면서 상상력도 키우는 장난감이면 그 보다 좋은건 없을겁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클래식’과 ‘시티’시리즈를 중심으로 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기차도요. 그리고 정후에게 설명서 밖으로 나가보자고 계속 권유했습니다.

32×32플레이트 4장을 이케아 탁자에 이어붙여 만든 놀이판


32×32 플레이트 4개를 정사각형으로 이케아의 가장 저렴한 탁자위에 붙였습니다. 64×64의 대형놀이판이 되었고 그 위에 우리만의 마을을 만들곤 했죠. 김돌TV 시즌2의 이야기가 바로 몇 년전부터 저와 정후에게 이어져 오는 놀이판위의 작은 세상만들기 입니다. 작년초까지 브릭들은 거대한 통 한군데에 몰아서 담아놓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브릭들을 찾기가 쉽지 않아 상상하던 것을 빨리 만들 수가 없었죠. 그래서 레고 정리함을 하나 구했습니다. 레고꾼들 사이에선 유명한 정리함을 아마존을 통해 사들였죠. 코스트코에서 저렴하게 파는 시스맥스 정리함도 하나 추가로 샀구요. 브릭 정리는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나름의 룰을 가지고 3~4일이나 걸려 모두 정리함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브릭들이 정리되자 정말 빠르게 모든걸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리하는 습관도 달라지게 되었죠.

레고 정리의 시작, 엄마까지 3명이 달라붙어 작업했다

그 후엔 레고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담긴 가이드북과 작품집을 사서 보게 되었죠. 그런 작품집들은 정말 훌륭한 자극제가 되었어요. 정후는 혼자서 간단하지만 멋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날이 갈 수록 진화하는 모습이 보였죠. 동물이나 사물의 특징을 브릭으로 표현하는 기술은 이미 선입견이 머리 한쪽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저보다 나은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말이죠.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그런 상상력입니다. 제가 기대했던 바였죠. 아직까지 정후와 실랑이를 벌이는 부분은 해체입니다. 힘들게 만들어 놓은 작품을 해체없이 계속 유지하려고 하거든요. 저는 자꾸 해체하고 다시 만들라고 설득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따라오고 있죠. 상상력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 기존것을 스스로 과감하게 버리고 전혀 새로운 걸 다시 만들게 되는 모습이 좋습니다. 그 대신 한번 완성한 것은 사진을 찍어 보존하자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브릭이 정리되자 생산성이 월등하게 높아졌다

레고는 김돌TV 시즌2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근에 레고아키텍쳐를 시작했고 아직 레고 부스트도 나오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클래식에서 머무르고 있지만 정후가 좀 더 크면 ‘테크닉’부품으로 까지 확장할 예정입니다.

Facebook Comments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