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록의 역사적 변화

이제 잠시 후면 난 쉰 살이 된다. 내 평생의 절반 이상은 휴대폰이 없던 시대였다. 나에게 1980년대는 국민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를 아우르는 학창시절이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멋진 다이어리를 장만해 다음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다이어리 뒷 부분에 있는 주소록에 이전 다이어리의 주소들을 옮겨 적는게 가장 큰 일이었다. 기계적으로 쓴다면 하루만에 다 적을 수도 있었지만, 옮겨적다 만나는 각각의 이름 앞에선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보통 ㄱ~ㅎ까지 구분된 각 단락 첫머리엔 해당 자음으로 시작되는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이 올라갔다.  주소록을 정리함에 있어 가장 키가 되는 데이타는 집전화번호였다. 그리고 친하거나 왕래가 있는 사람들은 집주소까지 빠짐없이 적었다.  집주소는 편지나 소포,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아마 5~60년대엔 전화번호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주소만이 유일한 키였을것이다. 주소록을 옮겨적다보면 내 주위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평가하게 된다. 내년 주소록에서 탈락한 사람, 순위가 올라간 사람, 번호가 바뀐사람이 꼼꼼하게 관리된다. 나의 이런 연례행사는 결국 어머니의 전화번호부 옮겨적기에서 유래되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PC통신 아이디와 삐삐가 유행한걸 제외하면 이런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변화가 찾아온건 인터넷이 급속하게 전파되고 휴대폰 서비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90년대 말부터였다. 갑자기 이메일 주소가 생겼고 개인별로 휴대폰을 가지게 되면서 우선순위는 휴대폰과 이메일로 넘어갔으며 주소는 다이어리에서 사라져갔다.  21세기로 넘어오자 상황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AOL과 MSN메신저 등이 대유행하면서 이젠 메신저ID도 챙겨야했다. 전화번호부가 휴대폰 속으로 들어가면서 다이어리내의 주소록은 찬밥신세가 된다.  곧바로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나 칼렌더마저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 버리자 이제 다이어리를 쓸 일이 없게 되었다. 90년대말부터 10여년간 일어난 이 변화는 이전 50여년간의 변화보다 훨씬 드라마틱 하다. 그 변화를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기록매체의 변화다. 다이어리는 없어지고 스마트폰의 앱이나 서비스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두 번째는 Key-Data의 변화다. 현재에 있어 사람과 접촉하는 주된 경로를 알려주는 데이타는 집전화와 주소가 아니라 휴대폰번호와 이메일주소다.  세 번째는 접촉경로의 변화다. 이전엔 직접만나고, 집이나 회사로 전화를 해서 바꿔달라고 하고, 우편을 보냈다면 이젠 그 세 가지를 포함해 직접 휴대폰으로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고, 메신저로 메시지를 날리고,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메신저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사람과의 접촉(contact)과 관련된 위의 세 가지가 바뀌면서 일하는 모든 방식이 바뀌었다. 아날로그 방식은 모두 디지털화되었고 스마트 기기에서 정보를 꺼낸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스마트워킹의 시대’가 된것이다. 그러한 세상의 기조가 나의 불안감을 촉발시켰다.  겉으론 안그런척했지만 사실 난 90년대에 비해 생산성과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계속 허둥댔기 때문이다. 어딘가 저장된 필요한 연락처를 결국 찾아내지 못해 일을 잠시 중단해야 했던 경험을 세 번쯤 하고나자 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컨택정보에 대한 장악력이 90년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날로그 다이어리가 가지는 파괴력은 명확하다. 모든 정보가 다이어리 단 한곳에 집중되어 있고 어디든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막바로 열어서 찾기쉬웠다. 심지어 다이어리 뒤엔 최근에 받은 명함을 꽃아두는 클리어화일까지 있어 새로 받은 명함은 항상 그곳에 보관하는 습관이 있었다.  스마트워킹의 시대엔 모든게 통합되어 보이지만 사실 지속적으로 분산되고, 중복되고, 업데이트 없이 새로 쌓고, 누락되고 있다.

2018년을 기준으로 난 지난 4년쯤 컨택정보를 거의 방치해온것 같다. 말하기도 창피하지만 주소록은 애플의 아이클라우드(iCloud) 미국과 한국계정, 구글, 리멤버, 집에 있는 아이맥과 스마트폰 기기 자체에 각각의 데이타세트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하나로 합치자 4,800명의 주소가 되었다. 중복을 일일히 손으로 제거하고나자 2,200명으로 줄어들었다. 너무 오래되어 016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도 있는, 지금은 연락이 끊긴 오래된 거래처도 제거하고나자 1,900개로 줄었다. 어떤 친구는 15년정도 된 번호를 포함해 전화번호가 5개였다.  데이타를 완전히 잃게될까봐 두려워 너무 여러곳에 복사본을 남겨놓고 그걸 하나의 스마트폰에 묶다보니 모든 데이타가 꼬여버린 것이었다.

내 경우는 그래도 좀 나은편에 속한다. 자신의 주소록이 스마트폰 기기자체에 저장된 것인지 구글 주소록을 이용하는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폰을 분실하면서 주소록 전체를 잃는 분들도 있다. 아마 자신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분들이 대다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스스로 그런부류중 한 명이라 판단된다면 당장 주소록 정비에 돌입하자.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구체적인 방법까지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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