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내 칡냉면

By | 2017-07-03

수내칡냉면. 물냉면의 모습. 양많이고 8500원이다.

 

밍밍한 평양냉면, 분식집 냉면, 매운냉면은 대략 짐작되는 맛이 있지만 실제로 방문해서 먹어보면 맛이 판이하다.  그런데 칡냉면은 전국의 칡냉면집이 단하나의 소스를 공유하기라도 하는 듯, 예상되는 맛이 있고 일정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칡냉면’하면 난 유천칡냉면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동네마다 자리잡고 있고 비슷한 상호로 ‘육천칡냉면’도 있는 등 아무래도 어느 한 집에서 유래되어 계속 비슷한 맛으로 퍼져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시절인 7-80년대엔 거의 보지 못했으므로 80년대에 생겨 90년대에 본격적으로 퍼져나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풍납동 유천냉면의 홈페이지를 보면 1982년 생겼다고 하니 거의 그 즈음을 칡냉면 탄생기로 보면 되지 않을까

지난 금요일 새벽부터 강의를 나갔다 들어오면서 들른 수내동에서 소문난 수내칡냉면도 그랬다. 짙은색의 쫄깃한 면발, 먹는사람을 얼려버릴듯 살얼음으로 덮인 육수, 그 아래 강렬한 양념장, 넉넉하게 뿌린 깨소금, 배와 무우절임, 오이 고명 등이 어우러진 맛은 기대하던 바 그대로였다. 이채로운건 땅콩인데 이 동네에서 땅콩이 올라가는건 설렁탕 전문맛집인 감미옥에서 파는 칡냉면 정도인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교과서적인 맛을 내는 데다가 면이나 육수, 양념장, 고명 등에서 딱히 흠잡을 만한 요소가 없어 정말 맛있게 한그릇을 먹고왔다. 보통은 8천원, 곱배기는  8천5백원인데 난 배가 무척 고파 곱배기를 먹었고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워버렸다.  이 집에 도착한 것은 한 시가 넘어서였는데 번호표를 들고 서있는 팀이 아직도 여럿이라 이 동네에선 소문난 맛집이란걸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같은 라인 바로 옆집은 일본식 가정식을 잘하는 백식당이고 그 옆은 양푼 김치찌게 집으로 유명해 이쪽 라인 전체가 맛집이라  어느 식당이 차고 넘치면 자연스럽게 다른 선택권으로 넘어가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냉면을 주문하고 입추의 여지가 없는 다른 테이블을 주욱 둘러보니 참 다양한 메뉴들을 먹고 있었다. 냉면은 테이블 마다 빠짐없이 한 그릇 정도는 올라와 있었고 김치찌게와 탕수육이 인기인듯 했다.  혼자온 터라 그 두 메뉴는 차마 시키질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다가 결국 일요일에 가족을 데리고 다시 와서 기어이 그 두 메뉴까지 다 먹어보게 되었다. 탕수육은 이 집의 또 다른 대표메뉴였다. 다만 17,000원이란 가격이 좀 아쉬운데 두 명이 와서 메뉴 하나씩을 시키고 같이 먹는 사이드 메뉴로 주문하기엔 가격이 약간 애메했다.

수내칡맨면 외관. 한시가 넘었는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가게앞 도로는 12-2시까지 주차가 허용되어 좋았다.

그러나 주말에 간단하게 동네 외식을 나가기엔 좋은 식당이다. 깨끗하고 메뉴도 많은데다 기본 반찬도 훌륭해서 정후가 좋아하는 작은 굴비도 한마리 나와 속으로 환호했었다. 그리고 얼갈이 김치는 매우 훌륭했다.  난 냉면은 여름보다 겨울이 더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칡냉면은 한여름 음식이라 생각한다. 90년대 후반 한창 홈쇼핑 사업이 커나가면서 물류센터에서 야근을 밥먹듯 했는데 센터내엔 에어컨이 없어 작업자들이 더위를 먹기 딱이었다. 그때 가장 사랑받았던 배달음식이 칡냉면이었다. 우리가 그 해 여름 배달시켜 먹었던 칡냉면은 천그릇도 넘을거라 장담한다. (센터내 작업자만 80명이었다) 우린 그때 칡냉면에 감사했다.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알바들은 다들 너무 더워 웃통을 벗고 일했는데 살얼음 냉면 육수를 다 마시고나면 잠시 옷을 입어야 할만큼 우리를 시원하게 만들어준게 바로 칡냉면이었다. 수내 칡냉면에서 첫 젓가락을 뜨며 생각난게 20년전의 물류센터였다.  냉면집은 달랐지만 맛은 예전 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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