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냉면

By | 2017-06-29

수라냉면 상대원본점 물냉면 (클릭해서 크게한번 보시라)

 

성남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근로자들의 도시로 40년전 산업화가 한창일때 생겨난 위성도시다.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같은 외지인이 많았을 것이고 서울에서 주거지를 구하기 비싸 외곽으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집이 넑고 안락해야 한다는 조건보다 몸을 뉘일 수 있는 집이라는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성남은 언덕의 도시다. 가파른 언덕을 가진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빼곡하게 높이가 낮은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 버스에서 내려 언덕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려면 땀 깨나 흘려야 할 것이다. 상대원동은 과거 전형적인 성남의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한 동네다.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상대원 시장이 있는데 내 생각엔 처음부터 시장터로서 자리잡았다기 보다 골목어귀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시장을 형성했으리라 상상해본다. 아직도 골목시장의 모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시장 입구에서 큰길쪽으로 조금 가면 수라냉면이 있다. 겉모습은 전형적인 시장과 가까운 동네 분식점이다.  수라냉면은 여러개의 지점을 가진 냉면 체인이 되었는데 상대원동이 본점이란다. 그런데 본점이라 하기엔 너무 수수해보였다.

평일 낮 두 시가 가까운 시간인데 자리는 2/3가 차있고 어르신들부터 시작해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앉아 냉면을 먹고 있었다. 이 런집에 어르신들이 많다는건 대개 오래 드나들었다는 뜻인데 어르신들의 비율로 보아 이 집도 최소 20년에서 30년은 되었으리라 추정해 본다. 이집은 ‘진땀나게 매운냉면’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다. 아마 동아냉면이나 깃대봉냉면과 같은 매운냉면집 같은데 난 그중 가장 순한맛, 물냉면을 시켰다. 결국 모든 매운맛 냉면도 순한맛을 베이스로 만들어 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냉면값은 오천원으로 합리적이었다. 냉면이 나왔다. 기계로 뽑은 면이 아닌 면, 그위에 양념장을 크게 한스푼 올리고, 무우절임, 오이채, 계란, 깨로 마무리 했다.
이런 냉면은 가위로 반쯤 잘라야 맛. 가위로 자르고 겨자를 넣었다. 양념장이 잘 풀어지도록 젓가락으로 섞으니 국물이 빨갛게 된다. 그러면서 살얼음들이 거의 녹는다(내 생각엔 이게 노하우같다)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국물맛.  쫄깃한 면발. 내가 망원동 성산시장에서 늘 먹던 시장냉면의 다른동네 버전이다.

내가 먹던 성산시장 냉면이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나의 입맛을 길들였다면 오늘 먹는 이 수라냉면도 2-30년전부터 이 언덕위에 사는 아줌마, 아저씨, 바빠서 가게올 시간이 없어 배달시켜 먹는 시장의 노점상 아주머니, 할머니 손을 잡고 생애처음으로 냉면을 먹으러 아장아장 따라온 꼬마 아가씨, 철사라도 소화시킬 것 같은 고등학생들, 그외 이 동네 모든 이들을 길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은 이 동네에 살지 않더라도 ‘수라냉면’이라는 단어를 듣게되면 입에 침이 고일것이다. 적어도 그들에 있어 수라냉면은 냉면 맛의 기준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관점에서 이 냉면을 을지로의 을지면옥이나 필동면옥, 장충동 평양면옥과 비교해 별점을 매긴다는건 넌센스다. 시내에 있는 냉면집은 외식냉면집으로 매일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 뿐 더러 평양냉면의 정통성을 좆는 존재들이라 이렇게 매일 끼니 대신 생각나는 동네 어귀의 냉면집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난 아직껏 을지면옥의 냉면을 100그릇 이상 먹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성산시장 냉면은 자신있게 300그릇쯤은 먹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오래동안 길들인 음식은 평가가 불가능하다.  이화여대앞 분식점 냉면으론 가미냉면이 유명하다. 이대출신 친구들에게 가미냉면에 대해 물어보면 그들은 당장 입맛을 다시며 엉덩이를 들썩인다.  학창시절동안 정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먹은 냉면이었는데 졸업한 후 오래동안 못먹어봐서 지금 내가 얘기를 꺼내니 먹고싶어 환장하겠다는 것이다. 그중 한 친구랑 그 자리에서 가미냉면을 먹으로 간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먹는거 보다 ‘으응~’하는 감탄사를 더 많이 쏟아내고 있었고(얼마나 만족했으면 그랬겠는가) 난 그정도까지는 아니라 생각했다.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가미냉면은 친구를 수년간 길들인 냉면이었다. 나 역시 우리학교(국민대학교)의 열무김치냉면이 가끔 사무치게 그리울때가 있다. 7년간 학교에 있으며 점심-저녁으로 먹은적도 30번은 되었으니 아마 단일 냉면으로 내가 가장 많이 먹었던 냉면이 우리학교 냉면이 아니었나 싶다.

수라냉면은 작정을 하고 나와서 먹는 외식냉면이 아니다. 동네에 자리잡고 우리를 길들이는 그런 종류의 냉면이다. 처음먹은 나에게도 맛이 훌륭했다. 식당안의 모든 사람들이 냉면을 거의 남김없이 해치웠다.  나 역시 예전에 내가 먹던 성산시장 냉면을 떠올리며 정말 남김없이 그릇을 싸악 비우고 나왔다. 이제 이 집 냉면 맛에 대한 감이 잡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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