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열외

By | 2016-10-06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논산훈련소와 달리 각 지역의 향토사단은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자체훈련소에서 신병을 모집한다. 수방사예하 5개사단이 구별로 서울을 5분하고 있었는데 이때문에 비슷한 연령대의 같은 지역에서 신병을 모집하면 거의 동문회 분위기였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중 하나정도는 걸려들거나 적어도 한다리를 건너면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우리사단도 3개중대 700여명을 매기수로 모집했기에 아는애들 천지였다. 내가 속한 소대만 해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선후배 동기가 무려 12명 정도 되었다.

우리는 그를 생새우라고 별명을 붙였는데 정말 새우같이 생겨서 누구나 그의 별명을 들으면 진짜 똑같다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처음 서로의 족보를 확인하지 않았을 때 왜소하고 나보다 어려보이는 외모때문에 당연히 나도 그에게 말을 깠다가 그가 고등학교 1년 선배인것을 알고나선 지난일을 사과하고 깍듯이 모셨다. 12명의 고딩동창중 그가 제일 선배였다. 그가 방위로 오게 된건 누가봐도 딱 알 수 있었다. 작고 말랐기 때문에 당연히 체중미달로 왔을거라 짐작했고 우리 내무반에서 체중미달은 그가 유일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전투복도 헐거워서 요대를 하고나면 허리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가 마치 허수아비 같았다.

훈련도 막바지에 접어들어 3주차쯤 되었을때 토요일인가 헌혈차가 왔다. 내무반장은 그제서야 헌혈에 대해 설명했고 단 한명의 열외없이 참가하라고 명령했다. 그 댓가는 의외로 달콤했다. 언뜻봐도 10여가지의 과자와 사탕, 쵸콜렛이 든 머리통보다 조금 작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나오며 즐겁게 봉투를 찢는 다른 소대 애들을 보고 우리는 복도에 줄을 서면서 환호했다. 일반 수퍼마켓에서는 잘 팔리지도 않는 그래그래 크래커 같은것만 잔뜩 들어있었지만 오랜만에 과자를 먹는다는 설렘은 그걸 넘어서고 있었다. 생새우 형이 조금 늦게와서 서성거리는걸 내가 얼른 내 앞에 세워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헌혈 거절체요건이 나에겐 전혀 문제되지 않았는데 50킬로그램을 넘지않는 생새우 형에겐 문제가 되어 문밖으로 쫓겨났던 것이었다. 난 그걸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웃으면서 ‘아휴~ 아쉬워서 어쩌나~’하면서 놀렸는데 복도로 쫓겨난 생새우 형은 다른 동료들의 가벼운 놀림을 계속 받았다.
10분쯤후 과자봉지를 들고 복도로 나왔는데 저편에서 생새우형이 복도에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누구나 그 모습을 묘한 심정으로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과자 못 먹는다고 울기까지 하는 어른이란 측면에선 웃겼지만 왜소한 체구에, 그렇게 서럽게 어깨를 들썩이는걸 보자니 측은한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난 그제서야 아까 놀린게 좀 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받아나온 과자봉투를 생새우형에게 줄까말까를 잠시 고민했다. 나도 너무 먹고싶었기 때문에

결국 난 형에게 과자봉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는 사양했다. ‘너도 먹고싶을텐데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 난 네껀 안먹을거야’ 그냥 나눠먹자고 해도 싫단다. 난 다시 의무실로가서 담당 행정병에게 경례를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과자봉지 하나만 더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는 딱딱하게 원칙을 말하며 안된다고 했다. 그 동안 복도에 있는 생새우 형에게 동기들이 몇 번이나 봉지를 내밀었지만 그는 울면서도 결코 봉지를 받지 않더랜다. 난 다시 의무실로가서 사정했다. 그 행정병은 답답할 정도로 완고하게 나왔고 결국 뒤에서 듣고있던 아줌마같은 적십자직원이 과자봉투를 웃으면서 하나 건냈다. 난 이왕 주시는거 복도에 앉아있는 생새우형에게 직접 주시면 안될까요 하고 부탁을 했고 그 분은 혼쾌히 그 부탁을 들어줬다. 의무실 문앞에서 저만치의 생새우형이 봉지를 받고 벌떡 일어서는 모습을 보니 복합적인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제서야 나도 봉지를 뜯고 처음에 뭘먹을까 고민하다 그래그래 크래커를 먹기 시작했다.

P.S – 사진은 땅콩그래 쿠키로 이전엔 그래그래 크래커로 나오다가 비슷한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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