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타냥의 탄생

By | 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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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엔 자타가 공인하는 껄떡쇠 3인방이 있었다. K군, L군, G군이 그들이었는데 어쨋든 괜찮은 여성 직원들에겐 어떻게든 들이댔다. 그렇지만 그들은 스토커도 아니었고 성희롱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 의견으론 그들만큼 점잖게 들이대는 남자는 또 없었다. 그저 시간있으면 맥주나 한잔 하자, 오늘은 진짜 이쁘네 정도가 최고 수위였다. 우리회사 여자들은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이 껄떡대면 언제나 즐거운 표정으로 단번에 거절했고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면 밝은 웃음을 띠며 그들에게 부탁하러 왔다.

물론 그당시 그들에겐 여자친구가 없었고 언제나 소개팅이나 미팅자리를 기쁜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쨋든 껄떡쇠 삼총사는 그렇게 살고있었다. 우리 회사는 여성:남성비가 3:2정도로 여성이 많았다. 그것도 다들 젊은 여성들이. 껄떡쇠 삼총사에겐 최고의 서식지가 바로 우리회사였다. 길을 지나던 다른 회사 친구가 놀러와서 밥을 먹다가 지하 아케이드에서 나랑 아는체하면서 지나가는 동기나 후배 여자애들을 보고 당장 이쪽으로 회사를 옮겨야 겠다고 한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날 K군이 퇴근이 임박한 시간에 나에게 헐레벌떡 달려왔다. 오늘 약속없으면 맥주나 한 잔 하자는거였다. 난 뭐 그러마 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S양, L양을 발견하고 사태를 짐작했다. 그때 S양이 다가와 살짝 귓속말로 나한테 얘기했다.


“오늘 우리 둘은 들러리에요”

오~ 왜 아니겠는가. L양으로 말하자면 우리회사 최고의 미녀로 복도를 지나가기만 해도 남자들 입에 물려있던 담배가 우수수 떨어진다. (그땐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 K군은 L양과 대화라도 나눠보고 싶었는데 둘이 만나자면 안될것 같으니 들러리로 만만한 나와 S양을 붙여 4명을 만든것이었다. 어쨋든 그 맥주자리는 L양이 예의만 지키고 한 시간 만에 빠져나가는 바람에 금방 김이 샜고 K군도 그로부터 30분 후 맥주값을 계산하고 자리를 떠서 결국 나랑 S양이 나머지 안주와 피쳐에 남은 맥주를 비우기 위해 남았다. L양은 S양의 부사수로 우리게엔 5년쯤 후배였다. 그래서 K군은 처음부터 S양에게 L양을 끼워서 맥주자리를 만들라고 부추겼던 것이고 착한 S양이 소원한번 들어준 것이었다.

껄떡쇠 삼총사의 문제는 너무 눈이 높다는데 있었다. 내 생각엔 그 S양만 하더라도 엄청 괜찮았는데 (정말 객관적으로 따져도 말이다) 말이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저 맥주집 에피소드같이 난 이상하게 엮여서 그 삼총사랑 같이 다녔다. 그도 그럴게 L군, G군은 우리팀이었고 K군은 바로 옆팀, 그것도 내 파티션 맞은편이라 거리상으론 가장 가까웠으니 내가 항상 들러리로 어디에든 끼게 되었다. 어느날 나랑 친한 옆팀 후배 K양이 우리회사 껄떡쇠 얘기를 하면서 그 명단에 나를 집어 넣어서 얘기를 하길래 내가 펄쩍 뛰었다.


“야~ 난 아니야. 내가 언제 너나 다른 애들한테 껄떡대디?”

K양은 깔깔거리며 그건 자기 생각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얘기들을 하더란다. 결국 난 껄떡대는 자리마다 거의 다 끼어있었다고 말이다. 억울했다. 그럼 삼총사는 저 셋이고 난 달타냥이란 말인가? 오우 그건 저알 아니지.

껄떡쇠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3년후배 H양이 나랑 친하다는 사실이었다. 아까말한 2년후배 K양과 H양, 나 셋은 프로젝트 하나를 같이했던 인연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정기 맥주 멤버였다. H양은 내 입장에선 전형적인, 오빠 삥뜯는 얄미운 여동생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H를 미워할 수 없었던 건 그래도 녀석이 일 하나는 꼼꼼하게 잘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을 구워삶는데 능해서(특히 남자) 뭔가를 얻어오는덴 천재적이라는 것(나도 가끔 그 서비스를 이용하곤 했다), 그리고 깍쟁이 답지 않게 가끔 섭섭치 않게 챙겨주는 모습이 있어서 평소 90% 마음에 안들게 행동해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난 나중에 H양이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H양은 군것질을 좋아해서 과자를 입에서 떼지 않고 살았는데 한번은 밥도 못먹고 야근을 하며 H양 옆을 지나치다(그 녀석도 야근을 밥먹듯 했다) 과자를 얻어먹게 되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날따라 친절하게 나한테 자기 책상 열쇠 하나를 떼어 주면서 자기가 없어도 오른쪽 맨아래칸이 과자서랍이니 열어서 먹으라고 했다. 이럴땐 꼭 누나같이 군다니까 그래서 이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
H양은 우리팀에 올 일이 많았는데 마케팅팀이라 데이타 뽑아달라고 부탁할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팀이 껄떡쇠 천지라 오기전엔 한번 심호흡을 하고 왔다. 복도 저앞에서 우리팀에 가고있는 H양을 발견하고 잠시 불러세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H양이 처음듣는 얘기를 했다. 우리팀장도 사실 껄떡쇠라는거다. 그리고 그 증거를 얘기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복도옆의 문에 활짝 열리며 우리팀장이 계단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H양을 보더니 ‘오~! 오늘은 어제보다 200%이쁘네’하고 지나갔다. 그 잠깐의 코미디같은 상황에 우리는 엄청 웃었다. 그리고 같이 우리팀에 들어서자 일제히 껄떡쇠 삼총사가 달려들었다.

OLAP을 도입하면 우리팀 출입이 줄어들 것 같았던 H양은 오히려 더 뻔질나게 우리팀을 드나들었다. 난 솔직히 H양에게 가혹했다. 친하다고 룰을 어겨가면서 빨리해주거나 혜택을 주는 일이 없었으며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H양은 내가 없을때를 노리고 드나들었는데 한번은 그 장면을 나한테 걸려 혼이나고 쫓겨났다. 그런데 얼마후…H양은 정말 드나드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럴리가 없는 H양이었으므로 음모의 냄새가 났다. 공교롭게도 그 음모는 작은 실마리로 들통났다. 그 주 토요일은 농구팀 연습이 있었는데 LG CNS의 우리회사 SM파견팀 Y군이 나한테 참지못하고 H양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날렸던 것이다. 난 Y군을 추궁하여 CSR없이 맨날 밤새가며 H양의 일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이 계속해서 나왔는데 그 비슷한 일로 Y군에게 일을 맡기는 이쁜 여사원들이 몇 명 더 있더라는 것이다.
Y군은 시간외로 그녀들의 일을 해주느라 피골이 상접해 있었지만 그렇다고 밥한끼 얻어먹은 것도 없이 이용만 당하고 있었다. Y군을 조용히 불러 얘기했다.


‘이 병신같은 자식아~ 이용만 당하는데도 좋아?’

Y군이 바로 대답했다.

“네 전 좋아요!”

순간적으로 할말이 없더라. 그날 퇴근길을 우연히 Y군과 같이 나서게 되었다. 난 Y군에게 이런저런 선배로서 조언할겸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입을 열려는 순간 나와 Y군이 동시에 저 앞에 가고있던 H양을 발견했다. 난 그래도 하려던 얘기를 마저 이어가려고 입을 여는데 Y군이 어깨에 올려진 내 손을 털어내며 눈길도 안주고 전방에 이렇게 외치며 용수철 같이 튀어 나갔다.

“H씨~~ 같이가요”

‘저…저런 개새끼…’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내 뒤엔 삼총사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Y군을 소년 껄떡쇠로 부르기로 했다. 이제 정식으로 삼총사에게 달타냥이 생긴것이었다. 난 좀 빼주라..제발

P.S. 실제 인물들로 쓰려니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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