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만 하고 말것인가

By | 2016-04-23

thepolarpactw

이 생활을 시작하고 초기 1-2년간 강의경험을 쌓으면서 고민한건 교육생이 자건말건, 태도가 좋건 말건, 돌아가서 강의내용대로 해보건 말건 강의만 끝내고 강의료만 받아 챙기면 땡인가?..하는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답은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그럴수 없다’였다. 강단에서 신발을 벗고 내려가 할 수 있다면 그들과 나란히 앉아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때에 따라선 어조도 달라지게 된다. 얼마전 진행했던 SKT의 신입사원 강의에선 질의응답을 하면서 작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마치 내가 강사가 아니라 그 교육과정의 담당자인것 처럼 말이다. 논리수업을 위해 예제를 내주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한장 레포트가 인사평가에도 반영될 예정이었기에 신입사원들은 민감했다. 그리고 주어진 주제에 대해 잘 쓰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의 숙제를 모두 받아보곤(이메일로 모조리 받아 수업전에 읽고, 그에 대해 수업시간에 피드백을 했다) 획일적으로 작성된 자기소개서 같은 느낌이 들어 수업시간에 그에 대해 질타했다.
일단 치열하게 생각해서 다른 각도의 아이디어를 내볼 의지의 박약함을 질타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논리전개를 고민하는 부분이 적었다는 것을 질타했다. 사실 내 수업은 전자 보다는 후자로 점수를 주며 전자는 참신함에 따라 추가점이 있는 형태였다. 논리수업에서 예제를 받았으면 논리를 먼저 맞추는게 상식인데 그러질 않고 예제자체에 빠져 그저 채워서 낸다는 생각이 강했던 탓이다. 교육에 대한 의도를 전혀 읽지 못한것에 그리 화가 났었나보다.

지금은 월요일부터 이틀간 벌어지는 삼성전자의 강의를 준비중인데, 이 과정은 벌써 3년째로 올해부터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2배로 연중이어지는 과정의 초반전체를 내가 담당하는 형국이다. 지난 목요일 보안검색에 걸리는 등의 쇼를 해가면서 수원사업장에 들어가 그들이 작성한 과제계획서를 하나하나 보면서 갑자기 전투력 게이지가 상승함을 느꼈다. 그들의 업무에 대해 난 자세히 모르지만 3년째가 되다보니 제목만봐도 무슨 결과물이 나올지 뻔해보였다.  난 그들이 설정한 과제제목을 하나하나 손으로 모두 메모지에 쓰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돌아와서는 그걸 노트에 모두 다시 옮겨서 타이핑하고 월요일 아침에 강의를 시작할때 스타워즈가 시작하는 것 처럼 그들의 제목을 자막으로 올리면서 하나하나 따지기시작하려 한다.

사실 내가 제목을 적어가지고 나온 것 만으로도 삼성전자 보안 룰을 위반한 것일텐데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낸 제목들은 제목만봐선 전혀 내용을 상상할 수 없었으므로 (예를들어 ‘협력업체 관리강화를 통한 경쟁력강화’와 같은 제목이라)  난 이틀동안 그들의 제목을 ‘너무 구체적이어서 위험한 수준’으로 바꿔줄 예정이다. (사실 진짜 보안문제 때문에 제목에 일부러 구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건 교육이니 말이다.  (그나마 삼성전자나 SKT가 내가 강의하는 곳들 중 가장 수준이 높은편이다)

예전엔 거의 일방적인 강의와 내가 가져다준 예제를 풀어보고 마는 수준에서 그쳤는데 그것이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교육에 참가하는 개개인의 실전에 까지 침투하고픈 것이 내 욕심이다.  이때문에 요즘은 순수하게 강의로만 끝나는 ‘강의’는 절반이 안되고 대부분은 ‘코칭’을 겸하는 강의다.  3주전부터 1주일에 한번 진행하는 어느 대기업 기획팀의 보고서 코칭은 내가 가장 바라던 형태의 것이다.  현재 작성중인 보고서를 도마에 올려놓고 그 회사, 그 팀에 맞는 보고서의 표준 프로토콜을 만드는 것이다.  형식과 논리 두 부분으로 나누어 맞추는데 형식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지난주에 팀원 모두와 합의를 보았고 앞으로는 논리전개를 크게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각자 쓰고있는 보고서를 가지고 코칭과 피드백, 강의를 병행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5주 정도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내가 코칭한 결과를 나역시 피드백 받을 수 있다.  나에게 코칭받은 대로 보고서를 써서 올렸는데 상사에게 엄청 깨졌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여 재조정하는 것이다. 난 그렇게 세 번 정도의 사이클을 돌 수 있으면 최적화 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재미있는 시도가 아닌가?

뭐 그 덕택에 내 몸만 피곤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실제로 강의하는 시간보다 외적으로 검토하고 피드백하고 의사소통하는 시간이 강의시간을 훨씬 상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 나름대로는 분명 그 부분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먼저 그걸 어필할 수 있지만 그 보다는 고객이 그 가치를 인식하고 나에게 말해줄때가 되었을 때 내 방식이 어느정도 완성된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이다.

p.s – 팀으로 코칭을 진행하는 그 곳의 열성적인 차장님이 토요일임에도 메일을 두 통 주셨다. ㅜㅜ 하긴 주말에 하려고 하긴했다.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푸념을 잠깐 늘어놓는다는 것이 블로그 포스트 하나로 나와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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