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By | 2016-03-10

부대평정

1991.7월초 헌병대에 자대배치를 받고 다음날 한 일은 아침부터 인사계와 내무반에 앉아 장기를 두는 일이었다.  첫 판은 백중세로 가는 듯 했으나 나를 얕잡아 본 인사계의 ‘포’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승부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 본진이 완전히 털리면서 인사계는 항복을 선언했다. 인사계는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가 남아있는 말투로 20대 초반에 불과한 내가 어디에서 장기를 배워왔는지 물었다. 그리곤 곧바로 두 번째 판이 이어졌다. 이번엔 인사계도 신중했다. 서로 졸과 마와 상을 맞바꾸며 접전으로 중반까지 이어졌고 서로의 공격진이 각각 상대의 반대편 측면에 공세를 집중하면서 누가 먼저 무너지느냐의 후반전이 이어졌지만 결국 근소하게 궁으로 먼저 밀고 들어간 내가 항복을 받아냈다. 두 번째 판이 끝났을 때 먼저 혀를 찬 것은 인사계가 아니라 어느새 내 뒤에 서서 보고 있었던 수사관이었다.(보통 헌병대 수사관은 중사-상사같은 하사관급)

세번째 판은 장 수사관과 두게 되었다. 이전에 구경하던게 있어 포석을 인사계와 달리해서 나왔는데 나는 그에 맞게 상과 마의 위치를 바꾸어 시작했고 이전 두 판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양 진영의 졸들이 대치하고 있는 회랑으로 장수사관의 마와 차가 올라왔고 중앙에 두겹으로 포진한 나의 상과 포의 견제에 걸려들어 전열이 무너지면서 세가 내쪽으로 기울어버렸고 그 이후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나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항복했다. 또 어느새 와서 구경하고 있었던 남수사관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나는 하루 종일 장기만 뒀다.  인사계와 수사관들은 내가 상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한 다양한 포석을 가지고도 항상 견고하게 두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날 내가 장기를 두게 된 것은 전날 작성한 자기소개서의 특기란에 ‘장기’라고 써넣은 덕분이었다. 부대 간부들의 최대 오락거리가 바로 장기였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출현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사병들 중 맞수가 될만한 고수는 하나도 없었다. 근무를 마친 몇 몇 고참들이 달려들었지만 난 예의를 지키며 최대한 근소하게 이기려고 수를 쓰는게 고역이었다.  원래 장기란게 같은 사람과 수백판씩 둬보면 서로에 적응하면서 실력이 백중하게 흐르게 된다. 그날 이후 우리부대 간부들과 나는 거의 페넌트레이스를 벌이듯 장기를 뒀고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되었지만 결국 내가 모든 사람과의 상대전적에서 앞서 있었다.

어느날 의무대 인사계가 찾아왔다. 그 분은 우리 인사계보다 한참 고참이었는데 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참이었다. 거수경례로 인사를 하고 의무대 인사계를 내무반으로 안내했다. 첫 판은 내가 졌지만 두번째 판은 이겨서 의무대 인사계도 상당히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장기를 둘 만한 맞수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기쁜일인가. 이겨도 져도 말이다.

비기닝…

난 일곱살쯤 아버지와 친척들이 장기를 두는 걸 어깨너머로 보면서 장기의 룰을 익혔고 그 바로 옆에서 형과 사촌들과 함께 우리끼리 장기를 두면서 서로의 실력이 늘어갔다. 방학때마다 시골에 가 오래 머무르면서 수많은 사촌들과 수를 교환했는데 언제나 백원 이백원 짜리 내기 장기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장기인생에 있어 최대 라이벌은 형이었다. 일평생을 50:50 으로 호각세를 이루었는데 밀물과 썰물처럼 어떤 시기는 형이 계속 승리를 거두었고 어떤 시기엔 내가 더 많이 승리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느 한 시기를 완전히 형에게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때가 있었다. 우리 형제는 장기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싸워서 어머니가 중간에 싸움을 말리러 방에 들어오는 때도 잦았다. 주로 장기두다 물러주지 않는다면서 내가 맞았고 승리 후 약을 올리다 맞기도 했다. 사촌형이 우리집에 와서 머물때는 접이식 장기판을 휘두르는데 맞고 얼굴이 찢긴때도 있었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장기알을 던지거나 판을 엎는일은 다반사였다. 어쨋든 내가 형에게 거의 항상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을 무렵의 어느날 형이 갑자기 생전 처음보는 포석을 들고나왔다. 왕을 맨 아래 구석으로 빼고 포를 중앙아래와 중간에 배치하여 마치 요새같이 만든 후 공격하는 진법이었는데 첫 몇 판은 아직 미숙한 터라 중간에 나에게 털려서 깨졌고 점차 그 진법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기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불안한 예상은 적중했다. 생소한 포진이 익숙해지자 승률이 뒤바뀌었다. 난 대책을 마련할때까지 털렸고 형을 그동안의 굴욕을 씻으려는듯 승리후엔 특유의 비아냥이 이어졌기 때문에 우리 형제는 매일 싸웠다.  파해법을 시험해야 했기 때문에 난 그 동안의 포석을 유지할 수 없었다. 새로운 공략법을 시도하다가 속절없이 털렸다.  도저히 파해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난 파해법 연구를 놔두고 갑자기 형이 그 포석을 어디에서 들고나왔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계속 깨지면서도 형의 행동이 어디부터 달라졌는지 살폈다. 그 주말쯤 형이 방안에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후닥닥 책을 덮는 일이 있었다.

오호라… 책이로구나. 책을 찾아야 하는구나. 며칠동안 형이 없을 때 온 방안을 뒤져 결국 복잡한 책장 맨 아래칸에 오래된 책들을 쌓아두는 칸 저 안쪽에서 책 두 권을 찾아냈다. 하나는 포석에 대한 책 하나는 박보장기책으로 박보장기는 특정한 (까다로운)시츄에이션에 대한 타개책이나 공략법에 대한 문답식(그래서 박보장기) 책이었는데 확실히 그 동안 사촌들과 대결하면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상황들이 나와있었다. 난 그 책 발견한 걸 모른체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꺼내서 나 역시 그에 대해 공부했다. (학교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아마 전교 1등을 했을지도…ㅜㅜ) 그때의 나로서는 굴욕을 되갚아 줄 수 있는 비급이었기에 그 책을 보는 순간은 정말 무서운 집중력이 발휘되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형의 노림수는 사전에 철저히 차단되었고 형은 나의 대응에 대해 드디어 책을 훔쳐본게 아니냐며 분개하면서 판을 엎었다. 그날 또 싸운걸로 기억한다. 어쨋든 그날 이후 장기판은 다시 난전으로 이어졌다. 형이 군대를 갈때까지 그렇게 되었고 난 대학에 입학해서 한 동안 장기둘 일이 없어졌다. 한 집에 대학생 두 명이 있기는 너무 부담스러우니 정책적으로 형이 군대를 갔을 때 내가 입학하고 형이 제대를 하면 내가 군대를 갈 예정이었다.  20세를 즈음한 나의 장기 실력은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나았었다. 오히려 군대에 갔을 무렵이 약간 소강국면에 접어들었을 때라 첫날 인사계와 둔 장기가 참 오랜만에 둔 거였다.

사실 내 장기실력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형이나 가족들, 사촌들과의 가두리 양식장에서만 두어봤기 때문에  그런것이었는데 동네 가게앞의 평상에서 아저씨들이나 할아버지들끼리 두는 걸 몇 판 구경하면서 서서히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그 후로 그 판에 끼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친구네 삼촌, 친구 아빠들하고 두어 연전연승하면서 스스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어쨋든 난 동네 장기에선 거의 무적의 수준이다.’

허무한 패배

인사계는 그래서 나를 헌병대의 대표로 내보내며 우승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고 수사관 두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연령대의 장기 실력으로 나를 넘어서기 힘들다고 단정지었고 의무대 인사계도 그렇게 전망하더란다. 사단 장기대회가 열리는 날 아침 인사계는 ‘저녁때 보자’고 돌아서 나가는 나에게 말을 던졌다. 그건 저녁때까지 살아남아 우승하고 돌아오라는 얘기였다.

첫판의 상대가 공병대인지 연대에 소속된 친구였는지 기억은 잘 안난다. 어쨋든 사단 직할대 소속은 아니었다.  일단 시작하기전 나의 상태는 내 스스로도 일단 가볍게 4강정도까지는 가지 않겠느냐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첫 상대가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난 ‘이렇게 미숙한 친구가 대표로 나오다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우습게도 초반 몇 수 만에 노림수 한 방에 외통으로 몰려버렸다. 그 친구는 진짜 아마추어적으로 나왔다. 초반이라 너무 긴장했고 치사하게 극 초반에 그런 노림수로 허무하게 끝내면 어떻게 하냐고 사정을 해왔고 물러달라고 했다. 난 어이가 없었지만 거만하게도 그 시점에서 재갈량이 세번 놓아주었다 다시 잡은걸 생각해 내곤 그 수를 물러주었다.

사실 그건 물러줘서는 안될 거였다. 난 상대가 미숙한 걸 보고 평소의 포석에서 벗어나 극초반에 특공대를 보내 기습적으로 왕궁을 포위섬멸하는 작전이었는데 물러줘버렸으니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간 특공대들이 위험해질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걸 타개할 수 있으리라 자만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수들이나 쓰는 함정, 보통 차나 포를 잡기 위해 벌이는 양동작전에 방심하다 내가 당해버린 것. 나는 자존심상 물러달라고 하지 못했고 이후 승부가 기울어져 버렸다. 그리고 허탈하게 졌다. 난 인사계의 예상과 달리 오전에 내려왔다.

내 기억엔 가볍게 빠따를 맞은거 같다.

보통 처음두는 사람이나 생소한 동네에 가서 장기를 두면 처음보는 수가 많이 나와 상당히 고전한다. 그리고 몇 판 후 적응하여 슬슬 정상을 찾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간에 한번씩 패하게 된다. 상대가 잘 둔다기 보단 생소함 때문에 그런것 같다.

그 옛날 아저씨들이 어린 나를 상대하면서 패하게 되는 순간을 돌이켜 보면 그들은 내 시력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고 그 기대와 어긋나자 당황하면서 연속적으로 패착을 두는 수가 많았고 여러판을 두면서 비로소 평정을 찾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특히 하수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둘 때가 그렇다. 내 예상보다 너무 완강한 모양새로 나올때 난 당황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감탄은 하지만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무리수를 두거나 넋놓고 당하게 되는 그런 형국 말이다. 실제 전쟁에서도 그런 경우는 나온다. 그건 실제 실력의 차이하고는 좀 다른 얘기같다.

어제 오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보면서 해설진들의 해설은 알파고를 3살짜리 바둑신동 다루듯 했다. 계속 설마~설마가 이어졌고 아마도 이세돌의 심정도 그랬으리라.  두 번 모두 완패했으니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알파고의 출현이 절망적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도전도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정말 꺾을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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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장기

  1. 박인식

    그렇지 않아도 바둑 이야기겠다 싶었습니다.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란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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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재미나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전 바둑도 못두면서 이상하게 이번 대결이 신경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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