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을 설계하라

By | 2015-11-02

기획은 판단이다

난 ‘기획은 판단이다’라고 정의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에 대해 판단이 내려졌으면 ‘그렇게 하기로’ 계획을 잡는 것이 기획이다. 그런데 기획엔 대개 대상체가 존재한다. 대상체는 보통 여러 명이다. 어느 의류 쇼핑몰의 전사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기획자가 다음달 프로모션의 방향을 기존 고객의 재구매 확대로 잡고 할인쿠폰과 캐쉬적립 이벤트를 하기로 판단했다면 이 기획의 최종 대상체는 고객이 된다. 그러나 이 기획안이 마케팅 임원의 승인이 필요하다면 그 임원은 중간 대상체로 1차적인 설득 대상이 된다. 기획은 본래 무형의 것이지만 문서와 프레젠테이션으로 실체를 만들어 중간 대상체를 설득해 내야 실행력을 가지게 된다. 이 때 그 기획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결과는 계획의 승인권한을 가진 중간 대상체의 반응에 따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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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모든 동료가 기획안을 잘했다고 칭찬했어도 의사결정권을 가진 대상체가 기획안을 거절했다면 그 프레젠테이션은 실패한 것이다. 그렇기에 프레젠테이션은 일면 불합리하고 주관적이며 많은 변수를 내포하고 있다. 한 마디로 프레젠테이션의 현실엔 정해진 답이 없다. 만약 프레젠테이션에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면 우린 대상체의 반응을 신경쓸 필요없이 항상 객관적인 기준대로 만들어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대상체의 반응’, 즉 ‘청중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중은 무색무취한 자료의 더미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청중이 반응한다는 것은 그들이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그 자리에서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기획자는 청중이 쉽게 판단을 내리도록(= 반응하도록) 자신들이 대신 판단을 내려 보여주고 그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처음에 기획을 판단이라 정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판단하지 않으면 기획자라 할 수 없는 것인가?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난 기획자 자신이 판단하지 않고 그것을 청중에 전가하는 것을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청중 스스로 특정한 대안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수준 높은 기획과는 구별된다. 판단은 시시각각 일어난다. 위에서 기획자가 할인쿠폰과 캐쉬적립 이벤트를 하기로 한 것도 판단이지만 프로모션의 방향을 기존 고객의 재구매 확대로 잡은 것도 판단이며 문서의 초반부에 지난 수개월의 프로모션을 분석해 보여주는 것도 판단이다. 그러나 주어진 주제를 검색해 있는 그대로의 결과를 나열하여 보여주는 문서라면 그건 판단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게임회사 강의에서 신작 경쟁게임의 지난 몇 주간 동시접속자 추이를 보여주는 슬라이드가 있었는데 별다른 해설없이 꺾은선 챠트만 놓여있었다. 난 강의에 참석한 모두에게 이 챠트로 우리가 설명하려는 바가 무엇이며 경영진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지 질문했다. 여러명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중론은 ‘아직 경쟁게임의 성공을 판단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며, 생각보다 평이하게 가고있다’였다. 난 챠트 자체는 기획이라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굳이 판단하지 않아도 경험많은 경영진이 우리의 중론대로 의미를 파악해 낼 것으로 대답했지만 그 대답이 나의 더 큰 비판을 사게되었다.
난 과거에 크게 성공했던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 등 여러개의 참조지표를 달아 그를 기반으로 우리의 판단을 명확하게 얘기해야 그것이 비로소 기획이 되며 경영진의 반응도 확실해 질 것이라 설명하자 그들도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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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설명을 정리해보면, 프레젠테이션은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표현이며 이를 위해 철저히 청중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하고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 전제하에서 프레젠테이션의 매커니즘을 판단과 반응을 기반으로 구체화 할 수 있다.

 

반응의 설계 : 프레젠테이션의 매커니즘

청중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 선입견이나 기대감, 고민을 기본적으로 가지게 된다. 이건 비단 주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걸 발표하는 프리젠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청중이 프레젠테이션 이전, 주제와 프리젠터에 대해 가지는 고정관념을 ‘A’라고 하자. 우리는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고정관념 A를 우리가 의도하는 바람직한 반응인 B로 바꾸어 놓는 것이 목표이며 이것이 프레젠테이션의 기본 매커니즘이다. 따라서 프레젠테이션은 ‘반응을 설계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고, 80%의 기획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 책에서 사고의 근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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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의 기본 매커니즘 : 프레젠테이션을 통하여 청중이 가진 선입견 A를 우리가 의도한 반응인 B로 바꾸어 놓는것.

2010년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에이전트를 선언한 후 난 운동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흥미로운 종목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때 아내가 제안한 것이 승마였는데 내 첫 반응은 뭔가 의구심에 가득찬 어조로 “뭐? 승마~?”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이 대답에 내포된 나의 불안감은 대략 승마가 비싸고, 위험하며, 운동효과는 적고, 거리도 가깝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란 동물에 대한 흥미는 있었다. 이것이 나의 A였다. 아내가 나의 몇몇 선입견을 제거할 수 있다면 난 승마를 하게될지 모른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고, 운동효과도 좋으며, 거리가 멀지 않다면 난 승마를 ‘이젠 대중화된 멋진 스포츠’로 여기게 될텐데 그것이 B다.

  • A : 승마는 비쌀거 같아, 운동효과가 있을까, 멀리 나가야 할 수 있겠지
  • B : 오! 이젠 대중 스포츠가 되었군

매커니즘은 정말 간단하다. A란 생각을 가진 청중을 주어진 프레젠테이션 시간안에 B로 생각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은 것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해 본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고방식의 기본은 청중을 중심에 두는 것이지만 이것은 또 ‘청중에 맞춰주는’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내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웍안으로 청중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러자면 당연히 청중을 알아야 한다. 앞서 설명한 ‘문서작성 5단계’의 첫 단계 ‘스탠스’가 주로 A를 조사하고 B를 설계하면서 온전히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기획에 80%를 할애하는 작성습관으로의 전환보다 청중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의 전환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A는 다양한 요소가 종합된 사고이다. 앞에서 난 ‘승마는 좀 아닌거 같은데..’란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안엔 경제적요소, 위험요소, 거리 등이 모두 녹아 들어가 그런 선입견을 형성하게 된 것이었다. 그 다양한 요소중 A를 구성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대표적인 것은 주제에 대해 청중이 가지는 ‘고민’(Pain-Point)이다. 이 고민은 드러나 있기도 하고 감추어져 있기도 한데 확실한건 프리젠터가 이 고민거리를 끄집어 낼 수만 있다면 일단 쉽게 청중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선입견, 기대감, 궁금증이 있고 프레젠테이션 환경에 영향받아 A가 형성되기도 한다. 만약 15명중 13번째로 발표한다면 청중은 기본적으로 ‘지루하다’라는 요소가 새로 A안에 자라나게 될 것이다.
같은 승마라도 청중에 따라 A는 달라진다. 빠듯한 예산을 걱정하는 샐러리맨들의 첫번째 걱정은 ‘비용’이겠지만 돈걱정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항목이 A를 채우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청중이 가진 A에따라 B도 달리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승마를 권유한다는 우리의 목적엔 변함이 없다.

 

반응을 설계하는 몇 가지원칙

 

1) B는 결과가 아닌 그 이유다

B는 A를 파악한 후 그를 고려하여 기획자 스스로 설계하는 프레젠테이션의 목표점이다. 우리가 설계할 B는 ‘승마를 시작해야겠다’가 아닌 ‘대중화된 멋진 스포츠’이다. 즉,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행동이라기 보다는 그 행동을 유발하는 결정적 이유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니 B의 바로 뒤에는 진짜 우리가 목적하는 결과가 위치한다. 다음 그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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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기전 궁극적인 결과는 사격장의 타켓처럼 자동적으로 맞은편 끝에 고정되어 붙게된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아이폰을 발표하려 한다면 궁극적 결과는 청중이 아이폰을 사는 것이다. 보험설계사가 새로운 고객을 만나 보험에 대해 얘기한다면 궁극적인 결과는 그 고객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며, 변호사가 피고를 변호할 땐 피고가 무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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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결과가 먼저 맨 오른쪽에 붙어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청중의 처음상태인 A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청중들이 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호의적이라면 A는 결과와 가까운 곳에 위치할 것이다. 정확한 A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기획자의 능력이다. 기획자의 오판으로 실제와 달리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A와 결과간의 거리가 멀 수록 우리의 프레젠테이션여정이 험난한 것을 뜻한다. B는 어쨋든 A와 결과 사이 임의의 지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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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지점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획자의 판단이다. 현실적으로 도달가능한 목표를 잡아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의 실제 여정은 앞서 말한대로 청중의 A를 B로 이끄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두 가지 상반된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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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나는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엑스포 행사장인 모스콘 센터를 방문했다. 그 때 애플은 껌 모양의 손가락보다 약간 더 큰 아이팟 셔플을 처음 발표했는데 키노트가 끝난 직후 많은 사람들이 모스콘 센터와 가까운 애플 매장에 몰려들어 아이팟 셔플을 매진시켜버렸다.(궁극적 결과) 이전까지의 아이팟과 다르게 가격이 저렴한데다 작고 가벼우며 디자인 역시 깔끔했던 탓이다.(목표점 B). 맥월드 엑스포에 참가한 관중들은 어차피 애플에 우호적이었다 (처음상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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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키노트를 표시해본다면 위의 그림과 같을 것이다. 청중들은 애플에 우호적이므로 A는 거의 절반정도의 지점에서 시작한다. 또한 B는 거의 결과와 맞닿아 있어 최종구매로 막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프레젠테이션의 기획자도 A에서 B로 가는 길이 험난하지 않음을 처음부터 직감했을 것이다.
아래는 보험설계사가 고객을 처음 만나는 상황을 표시한 것이다. 결과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고, 고객의 처음생각 A는 차갑기만하다. 따라서 A와 결과간의 간극이 아주 넓다. 프리젠터인 보험설계사가 이 간극을 인지하였다면 첫번째 만남에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예상할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목표 B를 아래 그림과 같이 A와 가까운 오른쪽 1/4지점으로 잡고 보험얘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고 ‘유용한 정보를 주는 사람’ 정도로 B를 설계하는게 어떨까 싶다. 이 보험설계사는 여러번 고객을 만나 신뢰를 쌓아가면서 차츰 B를 결과쪽으로 옮겨 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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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A와 B를 설정하는 나의 원칙이다. 위의 그림과 같은 세가지 상황을 정하고 나면 앞으로 설계할 논리와 이야기엔 자연스럽게 말하는 뉘앙스와 어조 등 느낌이 생겨나면서 내러티브가 형성된다. 내러티브는 청중에게 어떻게 접근할까를 고민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2) 가는길은 다양하다

A를 B로 이끄는 것은 논리구조와 전개, 스토리텔링인데 그 길은 한 가지가 아니다. B에 이르기 위한 루트는 대단히 다양하며 우리는 그 중 유력한 몇 가지를 찬찬히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하나의 루트를 선택한다. 이것이 앞서 강조한 기획중심의 문서작성의 강점이다.
한번은 기업용 캘린더를 제안하는 프로젝트에 3개월간 참여했는데 a.힐링, b.새로운 시작, c.삶의 여유라는 세 가지 방향의 시나리오를 작업의 중반까지 각각 면밀하게 검토했다. 각 테마에 따라 논리와 이야기 전개는 판이했다. 예를들어 새로운 시작은 매너리즘에 젖지않고 제로 베이스에서 모든걸 다시 생각한다는 파격적인 안으로 목차도 Restart-Redefine-Redesign같이 접두사 ‘Re’를 붙이며 그에 걸맞게 나간다는 방법이었고, 삶의 여유는 캘린더라기 보다 도록을 갖는다는 느낌을 주는 다소 온건한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는 온건함과 파격을 두루 갖췄지만 처음 정한 B는 ‘지금까지와의 캘린더 제안과는 완전히 다른느낌’으로 같았다. (최종적으로는 ‘삶의 여유’ 시나리오를 채택했고 원하는 정확한 반응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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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이 다양하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굳이 원칙으로 언급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강의나 코칭을 통해 만난 기획자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어서 명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앞서 설명한 기획자의 생각정리 역량 세 가지 중 ‘생각의 폭’에 해당된다.

 

3) 반응은 여러단계를 거친다

A에서 B로 청중의 반응이 넘어갈때 어느 순간 갑자기 B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보통 두 세 차례의 변곡점을 통과하면서 B로 굳어지게 된다. 따라서 그림을 더 정확히 그리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영화나 소설의 경우 작가는 좀 더 세밀하게 독자의 심경변화를 유도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은 주로 논증에 따른 반응의 변화이므로 2~3단계면 충분하다. 그 이상을 넘어간다면 내용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어 청중의 집중력을 유지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 단계가 너무 단촐하다면 논리의 비약이 생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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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들어 20장의 슬라이드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한다 가정해보자. 1번 슬라이드의 설명을 시작하기 전 청중의 상태는 당연히 A에 머물러 있게 되고 마지막 20번 슬라이드의 설명이 끝나면 청중은 B로 바뀌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청중은 어디에서 B로 전환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15번 슬라이드가 문서 전체의 결론이 자리잡고 있다면 청중은 14번 슬라이드까지 A를 유지하다 15번 슬라이드 이후 바로 B로 바뀔까? 아마 절대 그렇지 않을것이다. 15번 슬라이드 이후 B로 바뀌었다면 분명 그 이전 A가 어느정도 누그러질만한 내용이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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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실제로는 아래와 같이 몇 단계의 변곡점을 거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반응의 변곡점을 되도록 정확하게 설계해 놓을 필요가 있다. 8번 슬라이드에선 청중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을 짓게되고, 12번 슬라이드에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하며, 18번 슬라이드에선 내가 제시한 해결책에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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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세 변곡점은 허들경기와 같아서 반드시 순서대로 통과해야 B3에 다다를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변곡점의 형태는 문제 및 해결의 2단계 구조다. 청중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해결책은 아예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문제-해결 구조에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도록 하는것이 해결책보다도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접하는 복수극은 3단계 구조로 비극-준비-복수로 보통 진행된다. 주인공 자신이나 주변인물이 악당에 의해 희생되는 부분이 비극인데 청중은 이때 악당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주인공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악당에 비해 힘이 약한 주인공은 기이한 인연으로 자신에게 힘을 줄 스승이나 유력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 부분이 준비이다. 청중은 주인공이 힘을 길러가는 과정을 응원하며 다음으로 이어질 복수에서 주인공처럼 통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청중의 반응이 변곡해 가는 과정이다. 반응의 변곡점은 우리가 흔히 작성하는 목차보다 더 선이 굵은 개념이다. 영화로 따지면 플롯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문서작성의 기획단계에서도 이러한 플롯개념으로 전체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레젠테이션과 영화가 다른점

우린 영화나 책을 보면서 반응을 보인다. 난 코엘류의 연금술사를 읽고나서 형언하기 힘든 감동을 받았다. 다른 많은 독자들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감동은 모두 같지 않다. 코엘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나면 정확히 어떤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인지 적시하지 않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노장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나오는 ‘인턴’은 보는 사람마다 감정이입의 포인트가 달랐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앤 해서웨이가 겪는 어려움에 동병상련을 느꼈고 은퇴를 앞둔 분들은 로버트 드니로에 동화되었다. 아마 감독이 의도한 것 이상으로 많은 공감의 포인트들이 생겨났을 텐데 이는 감독이 모든걸 정해주지 않고 나머지는 관객에 맡겨버린 덕분이다.
난 프레젠테이션을 기획하고 만드는 것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여기지만 청중의 반응은 좀 더 세밀하게 제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젠테이션은 대개 특정 주제에 대해 청중 모두를 특정지점까지 정확히 데리고 가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가져야할 반응을 문서상에 정확하게 적시해 주는 것이 오해와 참사(?)를 피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00명의 청중이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내가 전달한 메시지를 명확하게 같은 글자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정밀한 설득이 필요치 않은 대중강연이라면 그런 노력은 필요치 않다.

반응을 설계하는 작업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작업이어서 이 장에서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은 충분치 않지만 여기서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인 매커니즘을 설명한 것으로 만족하고 더 자세한 내용들은 뒷 장에서 상세한 예제와 함께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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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houghts on “반응을 설계하라

  1. yeo_hwi

    게시물을 통해 늘 큰 도움 얻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A,B상태에 대한 개념과 간극을 표로 소개해 주신 부분이 새로운 인사이트를 줍니다. 혹시 파워포인트 블루스 이후 새로운 책을 준비중이신지요? 업무할 때 옆에 두고두고 보아야 할 책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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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aro

      반응 설계에 대한 객관적인 구조화 형성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획단계의 고민을 대변해 주시는 것 같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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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garo 이해해주시는군요 ^^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이에요

    2. demitrio Post author

      네 지금 보시는 글이 책을 만드는 원고를 정리하는 글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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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rad7000ft

    이번 포스트도 어김없이 제 뒷통수를 치시는군요. 각골하여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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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 뒷통수라뇨 ㅎㅎ 계속 지켜봐주세요 앞으로 몇 번 더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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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ad7000ft

        음…몇 번 더라면…뒤통수로 철사장이라도 수련해야겠네요~~~~ㅋ 기대하겠습니다!

  3. 이보영

    파워포인트 블루스를 1주일 전에 구매하여 읽는 중입니다.
    블로그에서 알게 되어 책을 읽게 된 케이스인데 신간도 크게 기대되네요.
    기획과 발표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진한 동료감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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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격려감사해요~ 공을 들이는만큼 잘나와야 할텐데 제가 게을러 걱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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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라인

    책 언제 나오나요?

    꼭 사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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