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노트, 습관안으로 끌어들여야 성공한다 

By | 2015-09-21

지난 5년간 기획력, 보고서쓰기, 프레젠테이션 강의와 코칭을 진행해오면서 수 백만 샐러리맨들이 생산하고 있는 보고서의 최대 약점을 한 마디로 지적하라면 ‘논리 전개능력’ 이라 단언할 수 있다. 본인들 역시 자신의 최대약점을 ‘논리력’으로 답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직장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일 수록 더 그렇게 대답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먼저 변화를 가해야 할 곳은 문서작성 습관이다.

샐러리맨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촉박하다. 이러한 다급함으로 인해 그들은 상사의 보고서 작성 오더를 받아들자마자 작성하려 든다. 오늘날의 직장인들은 이런 경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겠지만 이런 현상은 최근에서야 가능해졌다. 컴퓨터의 보급률이 낮았던 시대엔 이것이 불가능했다. 타자기를 이용해, 볼펜과 손으로 작성하는 보고서는 수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완벽한 문서의 모습을 머리에 두거나 따로 적지 않고 작성에 돌입하기는 어려웠다. 그 시대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획과 작성이 완전히 분리된 형태로 존재했다. 결국 오늘날의 문서는 ‘작성’이 주가되는 상황에서 ‘간헐적 기획’이 시녀가 되는, 기형적인 습관의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이 습관은 순도높은 문제점 몇 개를 만들어냈다.
첫번째로 작업의 비효율성이다. 너무나도 쉽게 인터넷에 접근해 검색하여 자료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필요한 로고나 그림은 작성중에 번번하게 찾으러 나간다. 한 장의 슬라이드를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집중력은 분산된다. 찾아내는 자료에 의거해 슬라이드의 구도마저 바뀌게 된다. 이는 필요한 자료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일거에 찾아내고 구조화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요한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원하는 소득을 얻지 못할 때 보고서 자체가 거기서 막혀버리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는 어느정도 작성을 진행했는데 전체 방향을 재수정했을 때이다.
두번째 문제는 논리구조의 취약성이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얽개를 설계하고 이를 전체적으로 몇 번씩 검증해 얽개를 수정하고 최종단계에서 작성에 돌입하지 않은 탓에 앞뒤의 맥락이 맞지않고 논리설계상의 노림수(가령 초반에 복선을 넣는다던가 하는)를 기할 수 없는 등 설계도없이 되는대로 집을 지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결과는 언제나 참혹하다)
세번째 문제는 좁은 시야이다. 결론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두괄식으로 갈 수도 있고 미괄식으로 갈 수도 있으며 스토리텔링 형태를 취할 수도, 질의응답같은 단순구조로 갈 수도 있다. 처음부터 시야를 넓혀 논리전개의 여러가지 대안 중 최선책을 선택하지 않고 작성에 돌입하였기에 필연적으로 시야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위의 세 가지 이유로 대부분의 문서들은 단순나열의 형태로 정리할 수 밖에 없게된다. 어쨋든 올바른 내용이 어딘가에 들어있기만 하다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구조없이 산개된 내용은 늦은가을 거리에 깔린 낙엽더미처럼 전체적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문서작성 습관부터 변화를 가해야 한다.

변화의 핵심은 ‘생각’에 있다. 작성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생각정리 도구들로 80%의 시간을 기획으로 보내야 승산이 생긴다. 먼저 단순한 논리를 세우고,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어 낸 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임팩트있는 내용을 만들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라. 그리고 작성은 맨 뒤에 기계같이 신속하게 해버리고 끝내자는 것이 내 주장이다. 문서를 기획함에 있어 주된 도구는 파워포인트같은 표현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80%의 시간을 함께할 습관의 동지들(도구)을 선택해야 한다.

습관은 수십년간 이어질 수 있지만 환경의 변화가 습관의 변화를 재촉한다. 스마트기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 역시 전통적인 폴더와 화일정리를 기반으로 생각을 정리하던 습관을 변화시키려고 스마트폰과 타블렛, 노트북, 데스크탑 컴퓨터를 연결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앱을 사용해보기 시작했다. 에버노트 역시 여러가지 도구와 함께 비교적 빠른 2008년 7월 사용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시행착오에 직면했다. 기존의 아날로그적인 습관과 메모를 디지털로 전환하려다 오히려 메모를 편하게 하지 못하게 되었고, 너무 많은 종류의 앱 사용으로 생각은 한 곳에 모아지지 않고 분산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앱의 기능을 (강박적으로) 최대한 사용하려 노력하다 포기하기도 여러번이었다. 생산성도구가 유행할 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생산성은 더 떨어져버린 것이었다. 전형적인 생산성의 함정에 걸린 꼴이었는데 이를 탈출하는 것도 쉬운 노릇은 아니어서 모든것을 정리하고 에버노트의 기본 기능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습관이 정리된 것은 4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였다.
이전까지 에버노트를 단순히 내가 즐겨 사용하던 맥저널의 대체품으로 여기던데서 벗어나 자료를 한곳에 모으는 플랫폼으로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난 에버노트를 기획의 지하실(Basement)로 삼고 그 위에 내가 가장 편한 도구를 최소한으로 올리기로 했다. 도구의 중심은 나의 손과 미도리사의 A4크기 무지노트였다. 어떠한 스마트도구도 손과 노트만큼 자유롭고 빠르지 못했다. 빨리 펼쳐들 수 있고 빠르게 넘기며 탐색할 수 있었으며 여러가지 색상의 펜을 빠르게 바꿔가며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그걸 사진으로 찍어 에버노트에 집중시킬 수 있었고 모든 디지털 노트는 에버노트의 기본기능만 사용했다. 수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기획습관에 대한 내 원칙을 네 가지 정도로 다음과 같이 정립할 수 있었다.

  1. 한 군데로 집중한다
  2. 기본기에 충실한다
  3. 도구를 단순화 한다
  4. 가벼운 에버노트를 지향한다
  1. 현재 생각중인 모든 사안은 되도록 한군데 모여있어야 종합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그것도 한눈에 보여지도록 말이다. 단순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안이다. 에버노트는 현시점에서 가장 유능한 도구다. 버스, 화장실, 길거리에서도 자료를 모으거나 읽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니 말이다. 게다가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기에 서로 다른 기기에서 한군데로 집중시키는 것이 쉽다. 게다가 도구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손으로 쓴 노트라도 촬영을 하면 되니 말이다. 장소, 플랫폼, 도구면에서 에버노트는 현존하는 최고의 플랫폼인건 분명하다
  2. 자료를 스크랩하고 노트를 타이핑하는 기본 기능을 말한다. 에버노트내엔 태그정리나 워크챗 등 여러가지 부가기능들이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를 모으고 뭔가를 적는 일이다.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코칭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육생들 모두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스크랩이나 노트적기 등이 기본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에버노트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귀찮아서 안하는게 문제라는 얘기다. 고급기능을 다음문제고 일단 스크랩하고 적는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3. 투수가 모든 구종을 모두 마스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난 내 습관에 가장 잘 맞는 도구 몇 가지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이를테면 마인드맵과 같은 도구도 말이다. 예전엔 ‘가끔 마인드 맵도 사용해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그 생각을 버리자 효율이 오르기 시작하더라. 몇 가지의 노트앱들도 모두 버렸고 지금은 에버노트의 노트북으로만 만족하고 있다.

  4. ‘기획은 가벼운 에버노트, 작성은 무거워도 상관없는 드롭박스’가 기본적인 나의 접근방법이다. 난 에버노트가 언제나 빠르게 동기화되고 열리고 작동되길 원한다. 이 역시도 시행착오끝에 깨달은 것인데 이전엔 나의 모든 작업이력은 모두 기획플랫폼내에 들어있어야 하며 나를 따라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데본씽크같은 플랫폼을 채용하기도 했었지만 너무 방대하고 무거둔 자료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인덱스DB만 4GB에 이르렀다)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샐러리맨들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안 3-4개 정도를 항상 들여다볼 뿐 그 이전의 방대한 자료들은 굳이 들고다닐 필요가 없다.

예상컨데 에버노트 사용자들의 대다수는 내가 말하는 용어로 정의한다면 ‘간헐적 사용자’일 것이다. 소문으로 듣자하니 에버노트가 좋다고 해서 한번 사용해 보는 사람, 어떻게든 에버노트로 패턴을 바꿔보고자 하는 사람, 사용해보니 별다른 느낌이 없던 사람, 특정한 분야를 시험적으로 에버노트로 정리해 보고자 하는 사람 등.. 이 모든 사람들은 아직 습관내에 에버노트를 접착시키지 못한 분들이다. 에버노트가 일상으로 들어오려면 에버노트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의 습관을 중심으로 어떤 부분을 에버노트에 맡기면 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문서기획의 습관 중 자료수집과 정리를 한번 에버노트로 바꾸어보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일상적인 문서기획은 말은 대수롭지 않게 했지만 나의 직장생활 전체를 가늠해볼때 상당히 비중이 큰 시간이다. 파워포인트만 늦게 집어들기로 마음먹는다면 말이다.

 

  • 이 글은 2015 에버노트 유저컨퍼런스에서 발표했던 ‘프레젠테이션 기획, 80%의 해설판격인 포스트이다
  • 슬라이드에 등장하는 ‘에자이 코리아’의 프로젝트는 실제 수행했던 프로젝트로 에자이의 양해를 얻어 공개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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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에버노트, 습관안으로 끌어들여야 성공한다 

  1. Sungchul

    대박! 자료네요~ 귀한 경험을 이렇게 잘 정리 해주셔서 공유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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