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 파괴력

By | 2015-08-18

자신이 설정한 주제가 파괴력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기획은 시작한다. 파괴력이란 ‘어필할만한 주제인가’를 말하는 것이고 그 주체는 청중이다. 내 생각엔 파괴력의 정도는 이분법적으로 ‘높다’와 ‘낮다’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기획자 본인의 생각에 ‘평이하다’, ‘그저 그렇다’라고 판단된다면 그건 ‘낮다’라는 소리와 다를게 없다. 어쨋든 청중은 프레젠테이션이 시작하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서도 그런 생각을 갖기 시작한다.
그런데 기획자의 생각은 좀 다를 수 있다. 자기 생각엔 꽤나 혁신적인 아이템인데도 불구하고 청중이 ‘별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별다른 것이 없는데 청중의 기대치는 하늘을 찌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주제의 파괴력은 아래와 같이 ‘내 생각’과 ‘청중이 생각’으로 나누어 경우의 수를 도식화 할 수 있는데 ➊~➍의 네 가지 경우가 있다. ➊은 내 생각에 주제의 파괴력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며 청중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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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난 고등학생이었다. 학교가는길에 벽에 주욱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난 보고싶은 영화를 결정하곤 했는데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메이터’의 포스터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총을 들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서있는 포스터였는데 람보2와 비교하면 전혀 파괴적이지 않았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개봉 초기엔 누구도 그 영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영화를 우연찮게 보고온 친구가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면서 그 영화를 보게되었고 나 역시 침이 마르도록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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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터미네이터는 주제의 파괴력면에서 현저하게 저평가받아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음에도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몇 년후 나온 터미네이터2는 달랐다. 관객들의 기대감은 어느때보다 높아진 상태였고 처음부터 매진행렬이 이어졌다. 제임스 카메론은 관객들의 기대치까지 충족시킴으로서 매진행렬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보고서나 프레젠테이션도 이러한 관객의 선입견을 초반에 제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어느 대기업에서 코칭을 진행하는데 매년 수십명의 선발된 엘리트들이 개인적으로 업무 혁신에 대한 주제를 잡아 업무외 시간에 개인 프로젝트를 6개월간 진행하여 그 결과를 최종 프레젠테이션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주제만 잡아 브리핑을 하고 중간점검 과정을 거쳐 최종발표까지 이어지는 3단계 과정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주제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지 못했다. 문제는 과정을 운영하는 측에서도 초반에 올라온 주제들을 취합해 놓고 마땅히 눈에 띄는 파괴력있는 주제가 없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는데 자칫하면 그 때문에 과정 자체의 존립여부를 놓고 경영진들이 네거티브하게 생각할 수 있다며 참가자들을 닥달해 세팅된 주제를 좀 더 임팩트 있는 것으로 바꿔줄 것을 주문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주제를 다른것으로 계속 교체해가며 시간을 소비한 것 같고 그 때문에 절반의 시간이 지나도록 모두 원점 근처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해당 주제에 대한 생각이 무르익기도 전에 해당 기획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직장생활에선 이런 저런 이유로 이와같은 일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내 생각엔 그들 자체의 고유업무가 있으므로 주제는 결국 그 근처에서 결정될 터였다. 관건은 발표 초반에 자신이 설정한 주제가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내는 것이다. 그를 통해 청중을 ‘들을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주제’로 생각을 돌려놔야 한다. 여기 네 가지 형태의 나와 청중의 기대치 모델이 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대기업의 사례는 아마 ➍번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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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파괴력은 본론에 등장할 문제-해결 논리구도와는 또 다른 독립적인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프레젠테이션 초반에 빠르게 종결지어야 할 문제다. ➋,➍와 같이 청중의 기대치가 낮을 때는 대략 아래와 같은 생각들을 갖게 된다.

  • 그건 너무 마이너한 아이템인데 그래
  • 너무 원론적이고 큰 스케일이군, 타겟을 좀 좁혀보면 어떤가
  • 이미 그에 대해선 몇 번이고 시도해서 결론을 못낸거 아니었나
  • 거기서 더 파격적으로 개선될것이 있을지 의문이로군

이러한 생각을 갖는 이유의 대부분은 청중이 해당 주제에 대해 직간접 경험을 통해 과거를 알고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➋의 경우라면 청중들이 몰랐던 것을 알려주는 뉘앙스로 파괴력을 높이는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본인 생각엔 파괴력이 높은데 청중은 그렇지 않으므로 나와 청중사이의 갭(gap)을 좁히는 것만으로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➍의 경우라면 좀 더 어렵지만 ‘이 부분을 살펴보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뉘앙스로 접근해야 한다.

➊의 경우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청중의 높은 기대감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무기가 뒤에 준비된 경우엔 그대로 가는 것이다. 이건 스티브 잡스가 잘하는 방식이다. 청중의 흥분을 더 조장해서 부흥회의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청중의 기대감이 지나치게 높은 경우엔 몇 가지 제약사항을 대면서 분위기를 조정할 수도 있다. 이 경우는 ➌에 가깝다.자칫하면 ‘사기’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목차에 ‘범위’에 대한 부분을 넣어 한계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지나친 비약을 경계해야 한다.

얼마전 잠깐 코칭에 참여했던 SBS 창업스타는 최고의 스타트업의 순위를 매기는 경쟁 프로그램이었는데 최종 6팀 정도가 남았을 때 경쟁의 관건은 각 아이템의 사업성과 함께 아이템 자체의 매력도라 판단이 되었다.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컨테스트에 나서는 경우 태생적으로 아이템 자체의 매력도는 심사위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다.
주제의 파괴력 문제는 특정 상황에 처해있는 기획자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기획자 모두의 문제이다. 나는 언제나 주제의 파괴력을 고려해 프레젠테이션의 도입부를 설계한다.

아 참,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다.  보통 목차의 맨 앞을 장식하는 ‘배경 및 목적’이라는 챕터는 바로 내가 설정한 주제가 참으로 흥미있을 것이니 잘 들어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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